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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전하는 메시지” 틀렸다고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글쓴이 : kopsa     날짜 : 05-10-11 17:22     조회 : 4584    
“물이 전하는 메시지” 틀렸다고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아래 2005년 10월 10일 “사이언스타임즈”에 실린 이덕환 교수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신
비주의”라는 글을 첨부했습니다.  언젠가 이곳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물은 답을 알고 있
다”(물이 전하는 메시지)와 관련된 것인데, 이런 유형의 비과학을 틀렸다고 설득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결정이 나타난다는 “우리의 소원은” 노래보다는 “사랑, 감사”라는 문자가 더욱 허
황된 것 같은데 이 경우도 글자를 적는 사람의 마음이 물에 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
에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노래나 말이나 마음이나 모두 어떤 에너지의 형태로 물에 전해진
다는 것인데, 이때 애매한 진동이라는 용어를 쓸 수도 있고 텔레파시 유형과 같은 미지의
에너지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물이 전하는 메시지”가 틀렸다고 반증하는 방법은 실제 실험이 재현되는지 확
인해 보는 것인데, 이 경우도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경우에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건 진정
한 마음이어야 한다고, 결과가 재현이 안 되는 이유가 있다고 할 경우에 난감해 집니다. 아
마도 가장 효과적인 과학적 반증은 얼음의 결정과 결정 모양이 정해지는 과학을 알려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물이 전하는 메시지” 실험과 같이 얼음의 결정 모양이 온도나 기타 조건
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단순히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
기에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
간에게는 이성과 과학뿐만 아니라 신앙과 믿음이 있으며 “물이 전하는 메시지”가 신앙적 측
면에서 엄청난 무게를 갖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성과 과학이 신앙과 믿음을 물리치기는 어렵게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 “물이 전하는 메시지”가 틀렸다고 이해시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강박사는
이런 유형의 비과학을 한 묶음으로 하여 어떤 방식으로 틀렸다고 설득하는 것이 최선의 효
과적인 방법일지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덕환 교수의 글도 유심히 보고 있고 또
다른 비판 글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Korea Skeptics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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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0 사이언스타임즈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신비주의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물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책이 3년 가까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물이 사람의 말과
글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물이 담겨 있는 유리병에 여러 나라의 글을 적은 쪽지를 붙여두
고 적당히 숙성을 시킨 후에 냉장고에 넣어 얼음을 만들면 그 표면의 모양이 글의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좋은 내용의 글을 적어두면 깨끗하고 멋진 육각형의 무늬가 만들어
지고, 나쁜 내용의 글을 붙여두면 헝클어진 모양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이들
이 호숫가에서 ‘우리의 소원’을 합창해도 물이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얼음과 같은 고체의 표면에 대해 약간의 상식만 가지고 있으면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고체의 표면은 생각처럼 깨끗하지 않
다. 고체 표면에 흡착된 분자들이 온갖 모양의 ‘결함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 분자만
외롭게 흡착된 경우도 있고, 많은 수의 분자들이 모여서 기묘한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나
선형 모양도 있고, 계단처럼 생긴 모양도 있고, 강원도의 산악 지방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멋진 모양도 있다. 표면에서 볼 수 있는 무늬를 이해하는 문제는 요즘 유행하는 나노 과학
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물이 얼어서 만들어진 얼음 표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음 표면의 모양은 물을 담은 병에
붙여놓은 쪽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온갖 모양의 결함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물이
답을 알고 있다는 책에서 사용하는 ‘비법’은 간단하다. 현미경을 이용해서 확대한 얼음의 표
면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을 선택해서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비록 손톱 크기의 작은 얼
음이라도 그 표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운동장처럼 넓게 보인다. 좋은 의미의 쪽지를
붙여놓았던 물로 만든 얼음에서는 육각형의 깨끗한 부분만을 골라서 찍고, 나쁜 의미의 쪽
지를 붙여놓았던 물로 만든 얼음에서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부분만을 선택한 것이다.

물이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주장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물이 굳이 사람
의 마음을 알아서 그에 따라 표면의 모양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사람은 지구에 존재하
는 수많은 생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가장 늦게 태어난 막둥이일 뿐이다. 물이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주장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극도로 과장하는 과대망상
의 결과다. 굳이 물이 마음을 알아야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물과 함께 살고 있는 물
고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구상에 살고 있는 65억 명의 사람 중에서 누구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가도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딜레마가 된다.

사람의 마음이 물에게 전달되는 방법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하필이면 물이 수많은 문
자 중에서 한글과 일본어와 영어를 배워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문자를 다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그렇다. 그 노래에 담긴 절실한 소망은 우리
민족만의 소망이다. ‘사랑’이나 ‘미움’과 같은 감정도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 땅에 존재하는 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을 이해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
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경제학의 유명한 이론이 이런 엉터리 주장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얼음과 눈송이의 모양을 신비화하는 주장 탓에 정작 눈송이의 성장에 대한 물리학적 실험과
설명을 담은 책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 캘리포니
아 공과대학 물리학과의 케네스 리브레흐트 교수가 쓴 「눈송이의 비밀」이 바로 그런 책이
다. 눈송이의 신비스러운 모양은 16세기 케플러가 처음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던 대표적인 과
학 문제였다.

우리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신비의 현상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런 핑계는 우리
의 이성(理性)을 현혹하려는 신비주의자들의 대표적인 핑계다. 결국 우리에게 ‘이성적인 이
해’가 아니라 ‘감정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이유는 명백하
다. 그런 믿음을 이용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신비주의의 폐해는 단순
히 경제적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강을 대가로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더
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절대적인 복종을 뜻한다는 것이다. 민주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인 개인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물이 답을 알고 있다
는 허황한 주장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신비주의에 맹종할 것을 요구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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