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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문화재단 문제, 페미니스트의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글쓴이 : kopsa     날짜 : 05-10-23 21:20     조회 : 5315    
(2007년 12월 22일 확인했습니다. 이 내용은 2006년 "흥이있고 진지한 과학이야기"에 좀 더 상세히 분석하여 넣었습니다. )

과학문화재단 문제, 페미니스트의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과학문화재단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우선 주변 이야기를 적고 언제 후에 과학문화재단 사업에 대해 분석하겠습니다. 우리의 과학문화를 위하는 심정에서 글을 쓴다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참조 1로 2005년 8월 영국 문화원에서 “사이언스 카페”가 열렸다는 기사와 참조 2로  2005년 9월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라는 책 소개 기사를 첨부합니다. 과학문화재단의 “사이언스 타임즈“ 기사입니다.

1. 사이언스 카페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참조 1은 주한영국문화원이 한국과학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사이언스 카페”를 열었다는 기사인데, 사이언스 카페는 영국문화원이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과학에 관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열리고 있고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한국의 최초의 카페에 영국 캠브리지대 세포생물학자인 낸시 레인(Nancy Lane) 교수를 초청하였습니다. 영국에 유명 과학자들이 많은데 어째서 낸시 레인을 초청하였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낸시 레인 교수라고 했지만 그는 research fellow 내지 senior research associate로 표기되는 여성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과학기술의 여성의 역할과 권익 반경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그의 강연은 페미니스트의 주제인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입니다. 이것은 과학문화 강연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떨어지고 더욱이 최초의 “사이언스 카페”의 주제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는 과학문화재단 나도선 이사장과의 관련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이사장은 여성과학기술 반경의 인물이고 그는 2002년 매독스가 지은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라는 책의 역자입니다. 참조 1 기사에 의하면 “사이언스 카페”에 나도선 이사장도 참석하여 자신의 책을 서명하여 증정하는 등의 행사를 했고 참조 2에는 이 책을 다시 광고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2. 페미니스트와 프랭클린의 업적 도난?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발굴한 책은 1975년 세이어의 책과 이번 사이언스 카페의 주제가 된 2002년 매독스의 책이 있는데 세이어와 매독스는 페미니스트 작가입니다. 세이어는 남성에게 억압받는 여성을 흑과 백으로 그리고 매독스는 통틀어 회색으로 부각시켰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이언스 타임즈” 기사에는 “프랭클린 박사는 20세기 과학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다. 그러나 부당하게 지워져 버린 불행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생명과학의 혁명은 왓슨과 크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프랭클린에서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로 그가 20세기 과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가요? 그리고 정말로 생명과학의 혁명은 왓슨과 크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프랭클린에서입니까?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연구 업적을 도난당하고, 그래서 과학자에게 최고의 명예나 다름없는 노벨상을 도난당했던 천재 여성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고 하는데 우선 노벨상을 도난당했다는 표현은, 프랭클린은 1962년 왓슨, 크릭, 윌킨스의 노벨상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과장됐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프랭클린이 생존했다면 왓슨과 크릭은 몰라도 윌킨스 대신에 프랭클린이 상을 받을 수 있었겠는지,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하는데 이런 추정은 불필요합니다.

또한 기사에는 반복하여 “프랭클린의 자료와 사진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거기에 자신들의 지식을 약간 보태어 왓슨과 크릭은 생명의 비밀인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했던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사진이 그렇게 의미가 있었다면 어째서 프랭클린 자신이 이중 나선 구조를 발표하지 못했는지, 이중 나선 구조란 왓슨과 크릭의 창조적 능력에서만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랭클린 사진의 기여 부분은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한데, 여하튼 윌킨스가 프랭클린의 동의를 받지 않고 왓슨과 크릭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부분도, 그러한 사진은 자연스럽게 공개되었어야 할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의 공개와 토의는 과학자의 윤리에도 규정돼 있는 것입니다. 
 
다만 어째서 왓슨과 크릭이 이중 나선 구조 논문에 그리고 노벨상 수상 강연에 프랭클린을 적절하게 인용하지 않았는지(실제는 케임브리지의 페루츠가 갖고 있던 보고서로부터 자세한 프랭클린의 사진 자료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잘못이 있었다면 과학자 개인의 문제이지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비약시킬 필요가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3. 50년 전의 이야기

더욱이 로잘린드 프랭클린 이야기는 50-60년 전 일입니다. 여성의 지위 면에서 지금은 다르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영국의 한 연구 그룹 속의 일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세이어의 책이 나왔을 때 이미 많은 논쟁이 있었고 정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중 나선 발견(1953년) 50 주년을 기념하는 직전 해인 2002년 매독스의 책이 나왔고 이에 맞추어 낸시 레인 등  페미니스트 과학 반경에서 이 주제를 강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이야기인가” 하는 반응을 받으면 페미니스트 반경에서는 “달라진 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기사에도 “로잘린드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은 자신이 경멸했던 그 학교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 한 건물의 이름에 그녀의 이름을 새기게 된다는 것, 그것도 그녀를 영원히 '다크 레이디'로 낙인 찍은 적의 이름과 나란히 새기게 된다는 것이었다”라고 있듯이 이들은 남성인 윌킨스를 “적(enemy)"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왓슨에 대해서는 “평생 여성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던 왓슨”이라고도 하는데 이들 페미니스트들이 무엇 때문에 남성을 이렇게 대립적으로 부각시키는지 알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면서 로잘린드가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그녀와 윌킨스) 절대로 함께 일할 수 없어요. 제가 여기 머무는 것은 불가능해요"라고 짐을 싸서 떠났다고도 하는데 실제 부드러운 성격의 윌킨스는 프랭클린의 매사 공격적이고 싸우려는 태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4. 다크 레이디 

과학문화재단 나도선 이사장이 번역한 책의 이름은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라고 돼 있지만 원제는 ”Rosalind Franklin: The Dark Lady of DNA“입니다. 이때 나 이사장은 “원제에서 'dark lady'는 머리와 피부 빛이 검은 여자, 예쁘지 않은 여자를 말하며, 차별 받는 유대인 프랭클린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고 하고 부언하여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주위의 남성 과학자들은 프랭클린을 ‘dark lady’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도 이상한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주위의 남성 과학자들은” 식의 표현이 있는데, 주위의 남성들이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리고 비하하여 “다크 레이디”라고 했다고 보는 것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일 것입니다. 외국의 서평을 보면 매독스는 세이어와는 다르게 프랭클린의 성적인 측면 등 다른 면을 많이 기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책이 이제까지 가려져 있던 프랭클린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는 의미의 “가려져 있던 여성”의 “다크 레이디”를 제목에 표현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5. 결론

우리의 과학문화재단에 대해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있는데 이전 과기부차관 출신 이사장은 새마을운동 식으로 과학문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도선 이사장은 교수 출신이어서 무엇인가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아이디어가 나올까 기대했는데 그런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구성원의 수준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향상된 과학문화재단이 되지 못한다는 느낌인데, 이번에 적은 “사이언스 카페,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나도선 이사장의 문제와 구성원의 문제가 복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제는 국민에게 과학과 과학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과학문화의 목적과도 맞지 않고 또 나 이사장과 관련된 이 주제와 광고는 과학문화재단의, 과학문화의 객관성을 위반했다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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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사이언스타임즈
 2005.08.28 17:28

“잊혀진 프랭클린 업적 다시 생각하자”
영국문화원에서 사이언스 카페 열려 
 
“로잘린드 프랭클린 박사는 저를 바이러스 연구에 입문시켰으며, 크고 어려운 과학문제를 공략하는데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프랭클린 박사의 삶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짧게 끝나지 않았더라면 이 노벨상 수상대에 더 일찍 설 수 있었을 겁니다.”

1982년 핵산과 단백질이 결합된 입자와 바이러스의 3차원 구조에 관해 연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영국 화학자 아론 클루그(Aaron Klug) 박사의 수상 소감이다.

가장 사랑했던 연구 업적을 도난당하고, 그래서 과학자에게 최고의 명예나 다름없는 노벨상을 도난당했던 천재 여성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 박사. 그동안 소외됐던 여성과학자 프랭클린의 명예가 되살아나고 있다. 진실은 미처 피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마감한 이 순수하고 정열적이며 용기가 넘쳤던 아름다운 과학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위대하면서도 불행한 과학자, 프랭클린

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과학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사이언스 카페’(Cafe Scientifique) 프로그램을 지난 26일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사이언스 카페는 영국문화원이 여러 나라에서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과학에 관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행사에 초청된 영국 캠브리지대 세포생물학자인 낸시 레인(Nancy Lane) 교수는 프랭클린 박사의 암울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입을 열었다.

“프랭클린 박사는 20세기 과학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다. 그러나 부당하게 지워져버린 불행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생명과학의 혁명은 왓슨과 크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프랭클린에서다.”

“우리는 잊혀졌던 프랭클린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남녀평등을 이야기 할수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남녀 모두가 사랑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음료와 다과 즐기며 자유로운 질의

레인 교수는 참석자들과 음료와 다과를 즐기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DNA 이중구조 발견에 지대한 공헌을 한 프랭클린의 숨겨진 이야기를 했다.

레인 교수는 참석자들과 질의 응답시간도 가졌다. 이 시간을 통해 그녀는 가장 위대한 발견자이면서 부당하게 지워져 버린 프랭클린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 좀 더 많은 여성들이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레인 교수는 “과학기술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분야이며, 그만큼 대우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서 “프랭클린과 같은 위대한 여성 과학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프로그램에는 나도선 과학문화재단 이사장도 참여해 직접 번역한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원제 The Dark Lady of DNA)'를 레인 교수와 함께 서명하고 참석자들에게 한 권씩 증정했다.

나 이사장은 “원제에서 'dark lady'는 ‘fair lady’의 반대 개념으로 머리와 피부 빛이 검은 여자, 예쁘지 않은 여자를 말하며, 차별 받는 유대인 프랭클린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프랭클린은 실제로 검은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주위의 남성 과학자들은 프랭클린을 ‘dark lady’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 이사장은 참석자들과의 토론에도 참가해 특히 과학기술계 여성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 과학자의 길을 밟아 온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선택이 결국 옳았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나 이사장은 여성이 과학자가 되는 일은 가장 적절한 사회참여의 한 방법이며, 또 어떤 다른 분야보다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사이언스 카페 프로그램에서 레인 교수가 언급한 소외 받은 과학자 프랭클린의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내용은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의 간추린 내용이기도 하다.

위대한 발견, 그러나 부당하게 지워진 프랭클린

로잘린드 프랭클린 박사만큼 엇갈린 평가와 숱한 논란이 뒤따르는 여성과학자도 드물다. 많은 과학 사학자들은 그녀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음에도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그녀가 노벨상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은 생물학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사건이다. 유전자의 복제가능성을 열어 주어 생명과학의 발전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유전자 암호해독, 복제양 돌리, 그리고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줄기세포연구 모두가 여기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혁명적 발견이라고 부른다.

‘DNA 이중나선구조는 프랭클린의 업적’

미국의 유전학자인 왓슨(James Watson)과 영국의 물리학자인 크릭(Francis Crick), 경쟁자였던 윌킨스(Maurice Willkins)는 1962년 DNA가 이중나선구조로 돼 있다는 주장을 발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DNA의 나선구조 발견은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사진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더구나 이들은 프랭클린의 허락 없이 사진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져 오랫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표지는 이렇게 말한다.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던 프랭클린의 경쟁자들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그녀의 연구와 그녀가 찍은 훌륭한 DNA 사진을 한참 전에 보았다. 프랭클린의 자료와 사진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거기에 자신들의 지식을 약간 보태어 왓슨과 크릭은 생명의 비밀인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놀라운 집념을 보여줬던 프랭클린의 솔직하면서도 폭풍처럼 맹렬한 추진력을 갖고 있었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열여섯에 이미 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그녀의 이름은 20세기 과학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에서 부당하게 지워져 버렸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사실 노벨상이 아니라 생명이었는지 모른다.”

죽기에는 너무 바쁜 시간 보내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4년 전인 1958년 4월, 프랭클린은 암으로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만약 독신인 프랭클린이 그 때까지 살아있었다 해도 3명까지만 공동수상을 허용하는 규정과 여성을 차별하는 풍토 때문에 당시 분위기로는 노벨상 대열에 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프랭클린은 ‘말 없는 살인자’라고 불리는 난소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는 자궁적출까지 했지만 태연하게 연구를 계속했다. 죽기에는 너무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자신이 이룩한 발견과 삶이 뿜어낸 생명력이 그녀의 원천이었다.

1958년 4월 16일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사망신고서에 적힌 짧은 기록은 몇 마디로 아주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연구과학자. 독신녀. 은행가 엘리스 아서 프랭클린의 딸.’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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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2 사이언스타임즈
2005.09.22 16:48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눈에 띄는 이주의 과학책 
 
DNA의 이중나선 발견에 결정적 단서가 된 X선 분석 자료를 제공하고도 연구 업적을 도둑맞았던 비운의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평전. 심지어 그녀의 자료로 노벨상을 받은 왓슨은 유명한 '이중나선'에서 그녀를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으로 부당하게 묘사하여 그녀의 명예에 2번 상처를 입혔다.

세계적인 학자였지만 여성이라는 조건 때문에 세상의 편견과 힘들게 싸워야 했고, 끝내 37살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사망한 그녀의 삶을 꼼꼼하게 복원한 책이다.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윌킨스와의 파트너가 됨으로써 DNA 구조 연구에 뛰어들게 된 사건부터, 윌킨스와 왓슨에 의해 프랭클린의 연구기록이 유출된 경위, 평생 여성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던 왓슨에 의해 '다크 레이디'로 폄하되는 안타까운 과정,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되는 중에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험실을 떠나지 않았던 강인한 의지의 생애를 숱한 오해로부터 되살렸다.

책 속에서 한 문장

로잘린드는 사진사 티체허스트에게 그동안 그녀를 위해 해준 모든 일에 감사한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로잘린드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그녀와 윌킨스) 절대로 함께 일할 수 없어요. 제가 여기 머무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고는 짐을 싸서 마침내 런던의 킹스칼리지를 뒤로 하고 떠났다.

로잘린드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은 자신이 경멸했던 그 학교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 한 건물의 이름에 그녀의 이름을 새기게 된다는 것, 그것도 그녀를 영원히 '다크 레이디'로 낙인 찍은 적의 이름과 나란히 새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본문 257쪽에서

저자 소개

지은이 - 브렌다 매독스 (Brenda Maddox)
전기작가. '노라: 노라 조이스의 전기 Nora: A Biography of Nora Joyce'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우수전기상, 국제작가협회(PEN) 은상을 수상했다. D.H. 로렌스의 전기는 1974년 화이트브레드 전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 지은 책으로 '예이츠의 유령들 Geoge's Ghosts' 등이 있다. 2004년 현재 '이코노미스트'의 국내 사정부문 편집장, 영국과학저술가협회 회장, 영국왕립학회의 과학사회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옮긴이 - 나도선
서울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생약학을 전공했다. 미국 북일리노이대학교 화학생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앨라배마 의과대학 연구원, KIST 생화학연구실장,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며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다. 2002년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생물정보학'과 '생화학' 등이 있다.

옮긴이 - 진우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Texas A&M University에서 평생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현재 인터넷 불교대학의 기획실장으로 있으며, 대한불교진흥원 불교문화센터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달마, 서양으로 가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유전, 운명과 우연의 자연사', '힘', '일곱 봉지 속의 지혜', '이 세상은 나의 사랑이며 또한 나다', '깨달음의 길', '고통의 바다에서 ‘하하하’ 웃으며 헤엄치는 법', '머니테라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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