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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擬似)과학의 문제, 과학자의 윤리적 접근
  글쓴이 : kopsa     날짜 : 99-11-28 22:23     조회 : 5075    

 의사(擬似)과학의 문제, 과학자의 윤리적 접근

  윤리와 관련하여,  2000년 전에 소크라테스가 말한 '한 사람에게 좋은 것은 만
인에게 좋고, 내 이웃의 의무는 나 자신의 의무라는 것과 같은 보편적인 유효성
을 가진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는 윤리개념은 이상적일 뿐이다.  종교집
단과 같이 비교적 좁고 균일한 사회에서조차 윤리가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보
아도 알 수 있다. 

1. 과학자의 윤리

  전문집단의 윤리를 논할 때에 우선 그 전문집단인 사이에 인식되는 원칙이 있
을 것이며 또한 사회 속에서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준수해 주기를 바라는 윤리
적 요소가 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어느 한쪽만을 강조할 수도 없
다. 따라서 개개 전문집단에서 공통적으로, 개개인은 집단 내에서 그리고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어떤 책임과 능력을 가져야 가질 것인지, 전문인의 행위를 규
정한 것이 윤리이다.
  과학자라는 총체적인 집단의 윤리 설정은 어렵게 보이지만 필자는 미국 국립
과학아카데미의 과학행위위원회(Committee on the Conduct of Science National
Academy of Science)에서 1989년 학회지에 발표한 '과학자가 된다는 것(On
Being a Scientist)'에 기술한 '과학에서의 사회적 메커니즘'이 과학자의 윤리에
해당된 것이라고 보았다. '사회적'이란 과학자간에 그리고 과학자와 사회 일반간
의 관계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는 "과학은 고립된 가운데 이뤄질 수 없으며 동료와 관계 학자들과
아이디어와 비평적 견해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개개 과학자는 오류와 날조
가 개입된 결과가 지식으로 전파되지 않도록 최선의 연구, 날조의 금지, 동료과
학자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두 가지 과학자간의 윤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
리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성과 관련하여 "과학자는 사회의 관심사에 부응할 책
임을 가지며, 사회에 해가 될 연구를 하지 않으며, 과학의 가치를 대중에게 계몽
할 책임을 갖는다"고 규정하였다.
  필자는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이라고 하는 과학자의 문제는 과학 집단 내의
윤리를 적용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성은 광범위한
과학 외적 사회적 인자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지식인, 대중과의 합의
하에 설정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사회의 관심사에 부응하며 사회에 해가
될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사회를 염두에 둔 총론적 윤리라고 볼 수 있
으며, 각론에서는 과학자와 사회간에 '과학의 정치'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문제,  핵에너지 문제, 유전공학 문제 등등
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의 관심사에 부응하기 위해 과학자는 사회와 합의하며
필요할 경우 최선의 설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의사과학의 억제의 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의 가치 계몽'이다. 이것은 과학의 비정당화 세력의 증가와 과
학무지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를 향한 과학자의 노력이며 사회와의 타협이 아닌
설득 노력이다. 
   
2. 최선을 다한 연구, 탈리도마이드 비극의 예

  과학의 공개성 윤리와 관련하여. 과학은 고립된 가운데 이뤄질 수 없으며 동
료와 관계 학자들과 아이디어와 비평적 견해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과
학 색채의 과학자도 대부분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토의하는 것을 마다하
지 않으므로 이 점에서 의사과학의 억제에 새로운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최선의 연구' 문제는 의사과학의 판별법에서 언급했듯이 거짓 과학의
뿌리이다. 이들은 실제과학을 하고 있는 과학자이지만 초정상에는 최선의 연구
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언론, 방송을 통해 광고하는 많은 내용, 자신들
의 학술회의에 발표하는 많은 내용은 쓰레기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족한
연구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최선의 연구'라는 과학의 윤리가 몸에 밴 정통과학
자가 초정상 연구에 어떻게 이런 이중적인 과학연구를 할 수 있는가 의아해 한
다.
  과학자에게 '최선의 연구'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최선의 연구'에는 오
류를 제거할 책임성 강조가 크다. 과학에서 인간의 오류는 어쩔 수 없으며 가장
책임성이 강한 과학자라고 정직한 과오를 저지를 수 있지만 과학자들은 오류를
극복할 최선의 연구를 수행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런 연
구를 수행하는 과학자의 능력에 의심을 초래하며 또한 과학자의 평가에 중요한
논문의 발표에 영향을 미치므로 '최선의 연구'는 당연하다.
  이보다 과학의 메커니즘에서 '최선의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그렇지 못한 연구
가 과학지식에 포함될 때의 혼란 때문이다. 그것이 수정되기까지 불필요한 연구
를 요구하는 때문도 있지만 그것이 상업적 프로파간다로 이용될 경우 허위사실
을 믿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입힐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직접적
으로 인간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을 탈리도마이
드의 비극으로 살펴보자.
  진정 수면제 탈리도마이드 비극은 그뤼넨탈 과학자의 엉성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독일 기준으로 신약허가 조건에 적합한
것으로 판정 받아 1957년 10월 독일에서 발매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처방이 없
이도 살 수 있는 약으로 정해져 발매 4년 후인 1961년까지 1백만 명의 독일인이 
복용하였다. 전세계적으로는 50개국에서 발매되었다.  1961년 문제가 발견되어
아마도 1962년까지 전세계적으로 탈리도마이드가 철회되기까지 독일에서만 5천
명, 전세계적으로 1만명의 기형아가 출산하였다. 
  후에 밝혀진 것이나, 탈리도마이드의 전임상 동물실험에 문제가 있었다. 미국 
식품의약청의 여성과학자 켈시는 그뤼넨탈의 동물실험 결과를 검토한 바 신빙성
이 없다고 결론지어 발매허가를 내주지 않아 미국에서 탈리도마이드 비극을 막
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는 안전성, 효능성에 대한 동물실험이 엉성하게 수행
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탈리도마이드의 최초의 부작용은 1959년 11월 독일 의사에 의해 보고되었고
이어 곧 학술잡지에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철저한 임상시험을 했다면 이런 부
작용을 발견하여 탈리도마이드의 문제를 좀 더 세심하게 판단했을 것이나 그뤼
넨탈은 문제가 나타나서도 적절한 조처를 취할 생각을 않고 공개적인 보도를 막
기에 급급하였다. 이것은 기업체의 간부과학자, 경영진의 영리추구 때문이었다. 
  실제 탈리도마이드와 기형아 출산의 관련은 한 변호사가 의심하기 시작한 것
이며 그는 의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의사도 조사하여 관련성을 확신, 그뤼
넨탈의 연구소장에게 알려 철회를 요구하였으나 이 요구는 묵살되었다. 이것이
1961년 11월 15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1961년 11월 26일에야 독일 발매가 철회
되었으나,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1962년 여름에야 철회된 것으로 보아 탈리도마
이드의 문제를 서서히 인식한 것이다.
  과연 탈리도마이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뤼넨탈을 상대로 한 소송에
서 사주와 경영진 그리고 의사인 연구소장이 피고로 앉았다. 엉성한 안전성, 효
능성 시험을 한 과학자들은 아마도 그 자체 피고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러나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은 그대로 안전성, 효능성 판단에 형편없는 과학을 적
용한 과학자들, 문제를 날조하고 덮는데 급급했던 경영진에 대한 과학과 기업의
윤리에 귀착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약의 역사를 보면 1800년대 처음 현대 약을 생산하던 때부터 제약기업체에
는 약 연구 자체를 철저한 과학적 연구로 보는 기풍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는
기업경영자와 과학자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이런 전통을 가진 제약기업과 달리
그뤼넨탈은 약 연구를 그 자체 영리목적의 상품으로 취급하였으며 이런 기업 분
위기에 맞춘 것이 그곳의 과학자라고 생각된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문제를 말하는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철저하지 못한 연
구가 가져올 해악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과 관계된 분야에서 인간에게
미칠 해악 때문이다. 이것은 의학 연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식품뿐만 아니
라 공해유발과 관련된 에너지 개발, 기타 기술 연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직접 인간의 활용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신과학자들이 철저하지 못한 연구결과
를 만들어 프로파간다로 이용한다면 분명 과학자의 윤리위반임을 말해야 할 것
이다.
   
3. 날조의 문제

  < 진리의 배신자(Betrayers of the Truth) >는 뉴욕타임스의 브로드(William
Broad)와 웨이드(Nicholas Wade)가 1983년 펴낸 책의 제목이다. 저자는 여러 역
사적 사례를 들어 어떻게 날조가 자행되었으며, 발각되지 않고 믿어졌는지를 말
했다. 또한 과학자들의 목표가 세계의 이해에 있지만 노력에 대한 인정을 추구
하므로 날조가 자행될 소지가 있으며 이에 관심을 갖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과학자는 날조문제를 그리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이
들이 예로 든 날조도 실제는 과학 메커니즘으로 밝혀진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에서는 평가기능이 있는 학술지를 통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평가 단계에서
날조가 있었다면 밝혀질 성질의 것이다. 설혹 평가를 통과하여 학술지에 게재되
었을 때라도 그것을 읽은 많은 학자들이 실험을 재현해 볼 것이기 때문에 날조
를 포함한 문제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날조가 문제가 된다면 과학의 사
회적 메커니즘을 엄격히 하여 또한 위반자에 대한 윤리를 엄격히 적용하여 예방
하는 길이 최선이라는 것이 현재 과학계의 입장이다.
  이러한 과학자의 입장은 이마니시-카리(Thereza Imanishi-Kari)사건으로 불거
져 나온 과학자의 날조문제에 대하여 일부 정치인이 취한 행동과는 상당히 다르
다. 1986년 MIT에서 수행한 이마니시-카리와 노벨 의학상 수상자 볼티모어가
공저자로 된 논문이 < 셀(Cell) >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생쥐에 유전자를 이
식시켜 항체생산의 유도가 가능했다는 결과였다. 논문이 나온 지 1개월도 되지
않아 그 때 터프츠 대학에 있던 이마니시-카리의 연구원 오투울(Margot
O'Toole)은 이 논문의 이마니시-카리가 수행한 부분에 실제 증명되지 않은 것을
증명된 것처럼 하여 포함시켰다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연구비를 지급한 국립보건원 등에서 이 문제를 검토했으며 실험결과에
오류가 있기는 했으나 주요 결론에 위협을 주는 정도는 아니며 날조 혐의는 없
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89년 오투울은 좀 더 강도를 높여 이마니시-카
리의 연구는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딩얼(John Dingell) 의원과 같
은 정치인도 가세하였다. 딩얼은 수사당국에 의뢰하여 실험노트를 검토하게 하
여 날조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마니시-카리를 지지한 볼티모어는 록펠러 대
학 총장직을 사임하게 되었으며 국립보건원에서 문제는 HHS(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로 넘어갔다. 1996년 최종적으로 날조혐의가 없다
는 결론이 내려져 문제는 일단락 되었으나 10년간 계속된 아미니시-카리 문제는
언론에 널리 보도되어 과학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과학자도 그렇고 그런 인
물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다시 말해서 과학자의 세계에서 날조는 과학에 불신을 심어 주는 가장 파괴
적인 행위이지만 과학에는 이를 방지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엄격한 평가기능이 있는 잡지에 발표하여야 일차적 인정을 통과한 것이라는 개
념이다. 그러나 의사과학 판별법에 게시한 대로 대부분 초정상 내용은 그렇지
못한 때문에 문제가 된다.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거나 자신들만의 학술적 규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잡지에 발표된다. 사실상 과학이라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
이 거의 전부이지만 일반인은 그것을 과학으로 오인한다. 
  필자는 우리의 신과학 연구에 '철저하지 못한 연구'는 있다고 하더라도 날조는
없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날조란 자료자체를 조작하지 않고도 증명된 것이
아닌 것을 알고도 증명된 것처럼 말하는 의도적인 속임수도 포함되므로 연구자
의 날조가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예를 들어 알 만한 과학자가 텔레비전에
서 꿈연구를 통해 텔레파시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하자. 이때 그 실험이 철저하
지 못한 것을 알고서도 적당히 보여주며 결론적으로 텔레파시가 존재한다고 말
할 경우에 이것은 마찬가지로 날조이다. 만일 어떤 과학자의 행위가 분명한 날
조라는 것을 입증한다면 그는 과학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윤리위반, 아니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4. 타인의 공로인정과 인용, 뉴에이지 작가의 수법
 
  다음에 과학의 윤리 중에 중요한 것이 타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다.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결과는 잡지에 발표된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들은
사항일지라도 반드시 인용하여 나타내어야 한다. 인용은 이와 같이 타인의 공로
를 인정한다는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과학의 형식을 갖추어
주는 중요한 사항이다. 인용된 문헌을 보고 실험방법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연구
의 가설과 결론의 정확성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세계에서 대부분 인용의 문제는 타인의 연구결과를 인용하지 않고 도
용하는 경우이며 이 때 과학자는 윤리위반으로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또
한 과학의 형식을 위반한 잘못된 인용은, 자신의 가설과 결론을 합리화하려는
과정에서 잘못된 인용이 있더라도 심사과정에서 걸러진다.
  그러나 거짓 인용으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나타낼 경우에, 프로
파간다를 목적으로 한 낮은 수준의 연구가 이런 경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날조
에 버금가는 윤리위반으로 간주되어 경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는지도 모른
다. 타인의 공로 인정 위배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 날조에 해당될는지도 모른다
는 것이다.
  초정상 내용을 다루는 뉴에이지 책에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의 1981년 < 새로운 과학 생명(A New
Science Life) >에는 약 200개의 학술문헌이 인용되어 있다. 웟슨(Lyall Watson)
은 1979년  < 생명의 파동(Lifetide) >에 정확히 600개의 문헌을 인용하였다. 이
들이 인용한 자료는 대부분이 인정받는 학술논문 및 저서였다는 점에서 특이하
다. 
  그러나 이들의 인용은 많은 경우에 단지 이야기 구성 참고일 뿐, 실제 책의
내용은 스스로 각색한 것이다. 이러한 정확한 인용을 중시하는 학술서의 인용과
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하는 과학자인 이들 저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렇
게 하여 소위 유명과학자인 저자의 유명 학술서의 인용을 본 사람들이 그대로
그 내용을 사실로 간주하는 문제에 이들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이에 관한 내용을 유명한 '100마리째 원숭이 이야기(Hundredth Monkey
Phenomenon)'가 등장하는 앞의 웟슨의 책 부분을 갖고 분석해 본다.  웟슨은
이 현상의 설명에 5개의 중요한 일본 영장류학자의 논문을 인용하였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이 카와이(Masao Kawai)의 1965년 논문이다. 이곳에는 추모리(Atsuo
Tsumori)의 1967년 논문도 언급한다.  웟슨이 이런 문헌을 인용하여 무엇을 말
하고자 한 것인지 살피기 위해 100마리째 원숭이에 관한 개괄적 설명으로부터
시작하자.
  일본 마칵 원숭이(Macaca Fuscata)가 일본의 몇 개 섬에 무리 지어 살고 있
었다. 1952년에서 1953년 사이 영장류 동물학자들은 이 원숭이 무리에 고구마와
밀과 같은 식량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들 원숭이들이 농가를 침입하는
것을 막고 일면 자세한 관찰을 할 기회를 얻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식량은 공지
에 놓아두었고 때때로 해변가에 두었다.
  그런데 식량공급을 계기로 원숭이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1953년 코시마
섬에 사는 이모(Imo)라는 18개월 짜리 암컷 원숭이가 고구마에 붙은 모래를 냇
물이나 바닷물에 씻어 먹는 법을 발견했다. 이모의 친구와 어머니가 이를 이모
로부터 배워 그 무리의 다른 원숭이들에게도 이 행동이 퍼졌다. 다른 음식 습관
과는 달리 이 새로운 방법은 어린 원숭이로부터 나이 먹은 원숭이가 배운 것이
었다. 
  그런데 웟슨에 의하면 1958년까지 이 고구마를 씻어 먹는 습관이 점차 퍼져
1958년 가을에는 코시마 섬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100마리
째 원숭이 이야기로 알려진 웟슨이 그려 놓은 집단의식의 전파와 관련된 내용이
다. 웟슨은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예를 들어 99마리에서 한 마리가 보태지자
즉시 거의 모든 무리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그
습관은 자연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섬에 그리고 본토의 무리에까지 순식간에 나
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러한 웟슨의 집단의식의 전파를 지지해 줄 내용이 문헌에 있다면 이것은 실
험적 근거를 가진 셈이다. 정말로 그런 것일까? 가장 중요한 문헌이 1965년 카
와이의 논문이다. 그곳에는 실제 코시마 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상
세한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 의하면, 1952년 코시마 섬의 원숭이
무리의 수는 20마리였다. 그러던 것이 1962년에 59마리로 늘어났다. 웟슨은 1958
년 코시마 섬의 원숭이 수를 미상이라고 표현했으나 실제 카와이의 논문에는 원
숭이 숫자와 고구마를 씻어 먹는 법외의 다른 두 가지 습관의 획득까지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카와이 논문에 의하면 1958년 3월 2-7살 사이의 원숭이 19마리 가운데 정확히
15마리가 고구마를 씻어 먹었고 7살 이상의 원숭이 11마리 가운데 2마리가 이
습관을 가졌다. 따라서 비유아 원숭이 30마리 중에서 17마리가 습관을 가진 셈
이 된다.  실제 카와이 논문에는 웟슨이 1958년 가을 발생하였다고 하는 그런
현상을 말해 줄 아무 내용도 없다.
  단지 1962년까지 49마리의 비유아 원숭이 중에서 36마리가 이 습관을 획득하
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1958년에서 1962년 사이 4년간에 19마리가 새로이 습관
을 획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웟슨이 급작스런 습관의 전파와 관련지
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1958년 가을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카와이의 논문에는 고구마 씻어 먹는 행동의 획득을 두 기간으로 나누어 1958
년 전후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1953년에서 1958년까지의 기간은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 기간이었으며 1958년 이후는 정상적인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1953년부터 원숭이 무리는 새로운 먹이자원을 발견하였고 어린 원숭이가 이
자원을 처리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1958년까지 이 원숭이는 성인이 되었다. 그래
서 이전의 어린 원숭이로부터 나이 먹은 원숭이로의 행동 전수는 없어지고 거꾸
로 이후 어린 원숭이가 어미원숭이의 무릎에서 먹이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카와이가 1958년 전후로 나누어 원숭이의 행동획득을 기술한 데
에는 아무런 이상한 것이 없다. 실제 카와이에 의하면 1958년은 가장 흉작인 해
였다. 자본, 노기라는 단지 두 마리의 원숭이가 이해에 고구마를 씻어 먹는 법을
배웠다. 그 이전에는 1년에 3마리가 배운데 비해서 이것은 흉작인 것이다. 웟슨
에 의하면 이 중 한 마리가 100마리째 원숭이가 되는 셈이지만 그 한 마리가 어
떤 특별한 기여를 한 것도 아니다. 
  또한 웟슨은 이 행동이 자발적으로 자연장벽을 뛰어넘었다고 했다. 이것은 코
시마를 뛰어넘은 다른 섬에서 행동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카와이
의 1965년 논문 그리고 추모리의 1967년 논문에 나타나 있다.  논문에 의하면
다른 섬에서의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동은 독립적인 원숭이 몇 마리에서 나타났
으며 한 무리가운데 전파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
는지에 관한 언급도 없다. 이것은 1953년에서 1967년 사이임이 틀림없지만 정확
한 해는 명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웟슨은 이야기를 꾸며내며 일본학자들의 논문을 단지 이야기 구
성에 참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는 이 논문을 인용했다고 나타내어 독
자들은 웟슨의 이야기가 과학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신과
학계는 웟슨의 꾸며낸 이야기를 계속 전파한다. 외국의 책, 잡지에 실린 여러 같
은 원숭이 이야기가 있으나 생략하고 우리 나라에도 방건웅 박사에 의해 < 신
과학은 세상을 바꾼다 >에 소개되었다.
  이런 비평이 제기되자 웟슨은 자신의 인용문헌이 과학적인 논문인용이 아니라
단지 도구로 사용한 문헌의 인용이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이 변명은 앞서 말한 대로 과학자로서 부끄러운 변명이다. 속임수에 가깝기 때
문인다.  그리고 자체 넓은 의미로 과학자의 윤리위반이라고 보아야 한다. 뉴에
이지 책이지만 그 내용은 과학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작가는 과학자이기 때문이
다. 책 광고에 항상 '저명한 과학자'로 이름이 나기 때문이다.         
 
5. 과학의 가치 계몽

 '두 문화와 과학, 반과학 갈등'에 게시한 것과 같이 우리 인간에게 과학의 중요
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증가하는 인구의 식량, 에너지, 보건 문제해결은 과
학의 몫이다. 사회에서 객관성, 합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과 이성에 의한 인
간성의 회복의 중요성도 말할 필요도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과학 교육의 중
요성은 또한 말할 필요성도 없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세계 경제에
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목적이 이것 하나라도 해도 어
린 학생들에게 생명, 자연, 우주에 대한 경외감을 일깨워 주고 호기심을 만족시
켜 주지 않고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학의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윤리가 과학자에게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주위의 과학자 그리고 과학반경의 작가 들 중에는 이러한 윤리를
위배하고 과학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과학을
전망한다고 하지만 그 목적은 과학의 비정당화, 부정이다. 어째서 이들은 밝은
과학전망을 적어도 균형 있는 과학비평을 제기하지 못하고 과학을 총체적으로
부정, 비평하는 것일까?  스스로 과학자라고 한다면 이들은 과학자의 윤리에 위
반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세한 예는 생략하며 필자의 저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6. 참고

1) 강건일, 이야기 현대약 발견사, 까치글방, 1997.
2) 강건일, 신과학 바로알기, 가람기획, 1999.
3) On Being a  Scientist, Proc. Natl. Acad. Sci. USA, 86, 9053(1989).
4) Dealing with Scientists Who Cheats, C&EN, June 13, 1983, p. 68-70.
5) Ron Amundson, The Hundredth Monkey Phenomenon, in The Hundredth 
  Monkey and Other Paradigms of the Paranormal, Kendrick Frazier, ed.,   
  Prometheus, Amherst, New York,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