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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11/26 글 옮김, 스켑틱의 의사(擬似)과학 판별법
  글쓴이 : kopsa     날짜 : 00-12-02 04:32     조회 : 5314    
게시판을 정리하며 99/11/26 글을 이곳으로 옮깁니다.
이 내용은 2000/12월 출간될 "과학과 초과학"에 정리돼 있습니다.
..........................................................
<< 스켑틱의 의사(擬似)과학 판별법 >>

요즈음 과학인지, 미신인지 구별하기가 애매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상의 시신이 자손과 연결되었다고 누군가 말할 때 그 동안 누
구나 미신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갑자기 박사들이 나타나서 이것저것 말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선대로부터 동일한 인체 전자기장을 유전 받는다.
수맥에 의해 훼손된 시신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이 후손에 감응되어 불구를
만든다." 웬만큼 과학을 알지 못하고는 누구나 아마도 이것이 사실일지 모
른다는 쪽으로 기운다.
 
이것은 미신이 의사과학화(擬似科學化)되어 과학처럼 여겨지는 또는 받아
들여지는 무서운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앞서 '웬만큼 과학을...'이라는 표
현을 했지만 이때 과학은 사실적 과학지식을 의미하는 것이기보다는 좀 더
핵심적인 과학의 근본인 '비평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의미한다. 의사
과학을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근본적 이유가 비평적 사고의 결핍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비평적 사고를 가진 스켑틱스의 시각에서 의사과학을 가려내
는 비교적 손쉬운 5가지를 소개한다. 그것은 그 주장에 1)논리성, 합리성이
있는지, 2)일화적인 내용을 증거로 말하는 것은 아닌지, 3)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증거로 말하는 것은 아닌지, 4)철저하게 확인 않고 사실이라
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5)이들의 주장이 애매한지, 특
히 정의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는지 살피는 5가지이다. 

그러나  손쉬운 방법만으로 의사과학을 가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
6)반증성, 7)객관성, 8)재현성, 9)이론상 간격, 그리고 10)대등한 과학자에
의한 심사 다섯 가지에 대한 판별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첫 번 경우
보다 좀 더 과학적 방법과 과학적 사고에 대한 지식에 입각한 것이나 과학
적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므로 특별
한 것은 아니다. 

1. 논리성, 합리성

과학의 기초는 논리성이다.  어떤 학자든지 학술 연구 논문에서는 논리적
오류를 엄격히 배제한다. 그러나 일반인이건, 학자이건 일상 생활에서는 비
논리적 사고나 주장을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를 발견하다. 이때 비평적 사
고란 최소한 논리적 오류가 포함된 주장을 피함과 동시에 어떤 주장에 논
리적 오류가 있는지를 발견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창조론, 진화론과 관련하여 누군가 "창조론을 믿는 교사는 생물
교사로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자. 논리적으로 보아 이 주장에는
애매성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창조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과학 외적인 종교적 믿음인지, 진화론과 대비시켜 창조론이 더
근거가 있다고 믿는 것인지, 그런 믿음을 단순히 학생들에게 말하는지, 아
니면 진화론을 가르칠 때 진화론은 틀렸고 창조론이 맞다고 가르치는지 등
모든 것이 애매하다. 따라서 이런 주장을 제기할 때에 또한 주장의  평가
에 앞서 우선 애매성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논리적 사고
이다. 논리오류의 문제는 다른 곳에 체계적으로 정리, 게시할 계획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1998년 10월 16일 필자는 풍수지리에 관한 프로그램을
계획한 모 방송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묘자리를 잘못 쓰면 자손이 불행
해진다"는 내용을 이야기로 꾸미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이런 믿음은 감응
마술에 속한 미신이라고 알려주자 방송사 작가는 이미 인터뷰한 유명 공대
교수(이름을 밝혔으나 전화내용이므로 생략)는 "수맥에 의해 훼손된 시신
에서 자손에게만 감응되는 전자기파가 방사될 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확인
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 공대 교수가 말했다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분석해 보자. 일상
생활에서 연구는 무엇을 의미할까? 정원의 나무가 시들어 간다. 이 때 시
드는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 연구이다. '시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연구가 필
요하다는 말에는 논리성, 합리성이 없다. 수맥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면 자
손이 불구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 할 경우는 수맥에
의한 시신의 훼손과 자손의 불구 사이에 관계성이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 증거를 재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면 자손에게만 감
응되는 전자기 탓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밝히기 위해 연구가 필요하다
고 말하는 것이 순서이다.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수맥에 의해 훼손된 시신이 가져오는 자손
의 불행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전자기파가 나와 묘지를 뚫고
공중에 방사되어 자손을 추적할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절
염을 앓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등의 인간사 불행으로
나타날 것인가? 또한 묘지를 잘 쓰면 자손에게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인가?
전혀 합리성이 없는 생각이다.  계속 의문으로 남는 것은, 어째서 논리적
합리적 사고에 누구보다도 익숙한 학자들이 이런 것을 미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광고하며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인천의 모 방송사는  1998년 10월 20일에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정신과학
진흥법'의 찬반양론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의사과학을 과학기술진흥의 대
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필자의 견해를 듣고는, "기나 정신이나 과학적
검증과 판별을 합제화함으로써 그것이 사교화(邪敎化)하거나 부정직한 축
재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법안추진 측의 말에
도 일리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다시 말해서 '정신과학진흥법'을 만들어
연구해야 사이비 풍수가, 사이비 점술가, 사이비 기공치료사, 사이비 초능
력자가 사라진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풍수에 의해 자손의 행, 불행이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분
명히 하기 위해 연구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묘자리가 자손의 운명을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닌 데도 그렇다고 광고하는 풍수가,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데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 점술가, 기공에너지란 없는 것인데도 병치
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기공치료사,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
이란 존재하지 않는데도 있는 것처럼 속임수를 쓰는 초능력자가 이미 '사
이비'인데 이들 연구해야 '사이비'가 근절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어째서 정신과학을 한다는 학자들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
는 것일까?  풍수가, 점술가, 기공치료사, 초능력자와 함께 따라 다니는 모
든 것을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확신해서가 아닌가? 그럴 리가 없다
고 반신반의하면서도  한국정신과학회의 전세일 부회장이 조선일보의 뇌호
흡과 관련된 기사(1998년 10월호)에 "텔레파시, 차력, 염력, 투시 등 특별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우리 나라에 약 1천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한 것
으로 인용된 것을 보아서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것이 옳다면
"정신과학진흥법"을 통한 적극적 지원 하에  이들 초능력자들이 가진 과학
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연구하여 노벨상을 몇 개건 받을 업적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2. 일화적 증거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특이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없다. 미신의 세계에
서는 그런 이야기가 비일비재하지만 실제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초능력자가 있다면 어째서
과거 100여 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현재 세
계를 통틀어 100명 이내의 초심리학자가 의미가 없다는 비평을 받으면서도
간츠펠트 실험이니, 자동동전튀김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가?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다면 우리의 생물학, 물리학은 전혀 달라졌어야 한
다. 그러나 분명히 과학에서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그
런 능력에 대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과학자들은 "그래서 진
위를 가리기 위해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터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러한 연구주장보다 더 비합리적인 것은 없다. 확실히 인정받
는 단 한 개의 증거라도 있어야 그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맥에 의해 훼손된 시신이 자손에 미친 영향을 보면 "가족의 이야기로는"
으로 시작하여 손자 중에 관절염으로 다리를 못쓰게 된 첫째,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를 못쓰게 된 둘째, 그리고 교통사고로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낫지 않아 애를 먹는 막내에 관한 증거가 적혀 있다. 이런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일화적 증거'를 내세운 주장은 의사과학이라고 알아차려야 한
다. 과학에서는 이런 일화적 증거를 모아 비약적으로 일반화하는 법이 없
다. 

'일화적 증거'에는 개인적 체험 그 자체를 주장하기 위한 것도 있다. 우리
주위에도 예를 들어 우주인과 심령적으로 교통했다거나 유체이탈을 경험했
다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개인적 체험을 우주인이 존재하고, 영혼이 육체
와 분리되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심리학적  연구결과
개인의 정신적, 감각적 경험이 얼마나 믿기 어려운 것인지 밝혀졌다. 심령
적 교통이나 유체이탈은 환각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유리 겔러의 마술을
본 사람은 그가 정말로 스푼을 구부렸다고 증언한다. 이것은 인간의 감각
적  착각에 기인한 것이다.

물론 개인적 경험을 완전히 도외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
기전에는 그 개인적 경험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
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몇 사람이 경험한 것이라면 이 세상에는 동일한
경험을 한수백, 수천의 사람이 있다. 이것을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룬다고
하자. 우주인이 존재하고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처럼 보이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화적인 내용을 각색하여 그
렇게 보이도록 한 것이지 과학이 아니다.   

3. 우연적 사건
     
마음의 에너지를 방사하여 이상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심령술
사가 있다. 그는 텔레비전에 나와 시범을 보이며 이상 현상이 정말로 일어
나는지 전화로 확인해 보자고 한다. 그 순간 전구가 깨지거나, 전기가 나가
거나, 벽에 걸린 물체가 떨어졌다는 등 무수히 많은 전화가 걸려 온다. 이
것이 심령술사의 마음의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일까?
 
심령술사가 아니라 아무라도 텔레비전에 나와 같은 시범을 보이며 이상한
현상을 전화로 받아 보면 된다. 전구가 깨지는 등의 현상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흔히 일어나는 것이다. 우연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연적 사건을
과학적 근거로 주장할 경우에 그것을 의사과학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의학 분야의 예를 들어보자. 피부와 눈이 황색으로 물드는 황열병은 모기
가 매개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런 병인이 나오
지 않았던, 18세기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 이 병이 유행했을 때에 사혈요
법이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유명의사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은 사혈이 오
히려 체력을 약화시켜 병을 악화시켰으리라고 말한다. 실제 환자의 회복은
인체의 면역기능이 감당하여 자연적으로 나았을 뿐 사혈과는 관련이 없었
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당시 사혈 효과를 믿게 되었을까? 사혈이라는 치료방법과
우연적 회복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사혈요법이 아닌 심령적
방법이건, 약초요법이건 마찬가지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사실상 원시주술사의 행위가 믿어진 것은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진정한 능
력으로 인정받은 점이 많다. 또한 민간요법뿐만 아니라 고대 문헌에 적혀
있는 많은 약초의 효과도 실제는 자연적으로 나은 것을 약효과로 오인한
것이 많다.

미국의 유명의사는 요통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대부분의 요통은 척주지
압요법사를 찾건, 침술을 하건, 의사를 찾건 별로 차이가 없다. 다만 일정
기간 침대에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요통은 나을 때가 되면 자연히
낫는다. 다만 적절한 운동은 요통의 예방 치료에 도움이 되므로 적극적으
로 권장한다." 주위에서 요통을 침을 놓아 다스리는 것을 흔히 보지만 실
제는 침의 효과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통증이 사라진 때문이 아니라고 어떻
게 단정할 수 있을까?

4. 불충분한 확인

1994년 한국정신과학회는 창립 총회장에 눈 가리고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
다는 소녀를 내 세웠다. 그리고는 이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연구하겠다고 하였다. 물론 그들은 소녀를 내 세우기 전에 안대로 눈을 가
리고 정말로 읽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고 사실이라고 믿었다. 창립 총회
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창립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비평적 사고자라면 몇 가지 의문을 가졌어야
할 것이다. 안대로 가린다면 코틈으로 훔쳐보아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눈 높이 위 눈으로 읽을 수 없는 위치에 책을 놓고 손가락으로 읽으라고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벼운 박지로 눈을 가리고 반창고로 주위를 철저
히 붙여 시각을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가벼운 불투명한 알루미늄
상자로 머리를 씌운 다음에 읽어보라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이 어떤 주장이 과학인지 판별하는 기준에는 그 주장을 주의 깊게
시험해 보았는지, 여부가 있다. 실제 한국 정신과학학회에서는 코틈으로 훔
쳐볼 수 있는 조건에서 시험하여 눈 없이 보기 주장을 잘못 인정한 것이
다. 그후 나타난 뇌호흡 수련에 의해 투시력이 생긴다는 주장도 마찬가지
다. 어째서 안대로 눈을 가리는 것만 고집할까? 불투명한 봉투에 글자가
적힌 종이를 넣고 읽어보게 하면 되는 것인데. 실제 이것이 투시력을 검사
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투시력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런 방법으로 능력을 증명하여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수련을 하면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다던가, 투시력으로 글을 읽는다는
등의 주장에는 합리성이 없는 점이 많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자.
이 세상의 맹인에게 이보다 더 큰 복음은 없다. 오래 전부터 서양에서도
그런 주장이 나왔으나 세심하게 실험을 디자인하여 조사한 결과 전부가 속
임수로 밝혀졌다. 대부분이 안대를 한 채 코틈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그런 소녀가 있다고 해보자. 이보다 더 큰 세계적인 뉴스는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지 밝힌다면, 새로운 생리학
을 개척한 공로로 노벨상도 받을 수 있다. 아니 과학을 새로 써야 한다. 그
런데 주장만 하며 실제는 주의 깊게 시험해 보려고는 하지 않은 것이다.

과학에서는 믿을 만한 사실인지 주의 깊게 조사하여  확실한 것으로 증명
되기까지는 공표를 삼간다. 그런데 적당히 시험해 보고 신문, 방송에 올리
는 데만 급급하다. 이렇고도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의사과학에
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이다. 이들은 센세이셔널한 것을 추구하여 아직 분
명치 않은 불완전한 사실조차도 과장하여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또한 과
학의 역사 아니 인간의 역사를 바꿀 혁명적인 사건일터인데도  이들은 일
반 과학에서 인정받기 위해 제시하는 증거보다도 빈약한 증거를 제시한다.
특별한 주장에는 이에 걸맞는 확실하고 풍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
까?

5. 애매한 용어

정신과학자는 '기(氣)'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기를 통해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외기 방사를 쏘여 자연살해세포가 암을 파괴하는지도 실험해 본
다. 레이키(영기, 靈氣)요법이라는 방법도 소개한다. 키를리안 사진에 나타
난 오라, 수맥의 영향, 피라미드 파워도 기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
체 운영도 기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과 자연에서 나오는 또
는 존재하는 아직 알지 못하는 힘 또는 에너지를 기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기는 사실상 인간이 허허벌판 지구 위에 발붙였을 때에 이
해하던 그대로이다. 일상 차가운 대지와 해가 비추이는 따스한 하늘에 있
는 것, 새로운 싹을 틔워 꽃봉오리를 열게 하다 허무하게 시들게 하는 것,
바닷물이 밀려왔다 나가고, 달이 찼다 기우는 등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눈
에 보이지 않는 것,  추운 겨울 동굴 속에서 부둥켜안고 잠을 청할 때에
서로의 몸에서 느낄 수 있는 것, 숨으로 들어와 생명을 운영하는 것, 건강
과 병을 지배하는 것 등 모두가 그들에게는 기였다. 이것은 원시인들이 느
꼈던 자연과 생명을 운영하는 상식적 힘이다.

원시인의 세계는 이렇게 소박하지 만은 않았다. 가혹한 자연과 살벌한 경
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또 하나의 힘, 마술적 상상적 힘에 대
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마술적 힘은 그들이 믿었던 영과도 관계된 것
이었다. 영도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술적 힘과 영은 엉겨져
미신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부적을 던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시공을 초월
하여 힘을 전달하여 상대편을 거꾸러뜨린다. 부적을 붙여 놓으면 온갖 사
악한 짓을 다하는 영이 대적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굿판의 몸짓, 주술은 그
대로 그 힘으로 실존 대상도, 사악한 영도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덤을 뚫고 나와 조상을 잘 모시지 못하는 후손에게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는 힘,  손에서 방사되어 병을 치료한다는 힘도 마찬가지다. 이들 힘에는
과학에서와 같은 자세한 정의가 본래 없었던 것이다. 그대로 상식적으로
느끼는 힘 그리고 마술적 힘이었다. 그런데 과학의 시대에 이들 힘을 홍보
하려는 사람들이 과학적 용어로 표현하여 전기, 자기, 전자기, 파동으로 부
를 뿐이다.  사실상 과학적으로 만물에 존재하거나 만물에서 나오는 에너
지는 이 범위 내에 속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신비적인 힘, 마술적 힘을 실체의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위
장전술일 뿐이다. 이때 이 위장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나 전자
기파와 같이 과학의 기준으로 보아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  과학, 기술 사전을 펼쳐 보자. 방대한 용어가 정확히 정의되어 있다.
용어의 정의뿐 아니라 분류체계나 측정단위의 분명한 정의는 과학의 토대
이다.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과학연구의 사회적 메커니즘과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연구의 재현성, 예측성은 정의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학자가 언제 혜성이 나타날 지 정확히 계산해 내는 것처럼 약
과학자들은 약의 안전성과 효능성을 정량적으로 파악해 낸다. 사실상 과학
연구의 전과정,  다시 말해서 가설, 실험 다자인, 실험, 자료의 도출, 일반
화의 과정에서 애매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힘과 에너지를 정의하는
세분화된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와 파동과 같은 애매한 용어를 구사
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학이 아니라 의사과학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6. 반증성
 
과학자들은 우주, 자연, 생명의 그림을 그린다. 그들의 도구는 객관적인 관
찰에서 나온 사실을 일반화하거나 엄격한 논리와 수학을 적용하여 법칙을
유도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그들은 관찰하고 해석을 내어, 다시 말해서
과학적 방법으로 얻는 지식을 그 그림에 포함시킨다. 완전한 그림은 영원
한 기대일 뿐이지만 과학에는 계속 보완, 수정하여 완전을 지향하는 발전
적 기능이 있다.

물체의 낙하속도와 무게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때 높은 곳에서 여러 무
게의 물체를 떨어뜨려 낙하시간을 측정하여 일반화할 수 있다. 이보다는
(작업)가설을 먼저 낸 다음에, 다시 말해서 물체의 낙하속도와 무게와는 서
로 관련 없으리라는 가설을 내어 입증하기 위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
체 두 가지로 실험해 보는 것이 현재 과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때 과학적인 작업가설은 참인지 아닌지를 시험할 수 있는 소위 반증성
가설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외계인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외계인이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나 피랍자의 기억을 없애
버려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외계인의 존재여부는 목격자나 피랍
자를 시험하여 알 수 있을 터인데, 이들의 기억을 없앴다고 한다면 증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주장은 과학적 탐구의 가설이 될 수 없다. 과학 밖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예로, 창조론자는 성경에 쓰여진 대로 이 세계는 1만년 전에 창조되
었다고 주장한다. 이때 화석 등의 증거를 대어 그것이 훨씬 오래 전의 것
이라고 설명해 주면 이들 중에는 예를 들어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
해 보기 위해 그런 측정값이 나오는 것을 그곳에 두었다거나 악마가 우리
를 유혹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이때 하나님이나 악마가 정말로
그렇게 했는지 증명할 수 없으므로 창조론자의 주장의 진위를 시험해 볼
수 없다. 이러한 창조론자의 주장은 과학 밖의 것이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나 대부분 이런 비반증적 주장은 의사과학을 과학인
것처럼 주장하면서도 증명을 피해 가기 위해 적절히 활용되는 의사과학의
전술이다.  앞서 예가 그런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점성술사는 별자리 표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해 주지만 "경향을 만들지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주장
한다. 다시 말해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
장한다. 이때 점성술의 운명 예측 주장은 반증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과학
이 아니다.

7. 객관성

앞서 말한 대로 오늘날 과학자들은 17세기 탄생한 과학적 방법을 참을 찾
아내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절대적 참에 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
능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감각에 의존하는 인간의 관찰이 얼마나 부정
확할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측정기기만 해도 그 자체 필연
적인 오차를 내포하고 있다. 이보다 더욱 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과학
적 방법 전 과정에 개입되는 실험자의 주관적 믿음이다.
 
인간은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과학 외적 가치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 증거와는 무관한 인간 개체적인 믿음이다. 과학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인간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과학연구에도 철학과 믿음은 있다. "전일론적 시스템적
분석이야말로 환원론적 분석적 연구보다 좀 더 참에 접근한 지식을 줄 것
이다, 투시력이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응답을 받는
다, 우리의 전통의학은 효과가 있다,  한국민은 지능 면에서 어떤 민족보다
우수하다, 등등."

그러나 이 믿음 내지 (작업)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에서 실험은 절대적
으로 객관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과학적 방법의 절대적인 요구조
건이다. 객관성이 훼손될 때 어떤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는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초감각적 지각, 염력, 영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한 크
룩스(William Crookes), 리세(Charles Richet), 월리스(Alfred Wallace) 등
등 유명 과학자의 경우를 보아 알 수 있다.
 
이들은 사이(psi)가 존재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실험대상의
속임수로 밝혀졌다. 어째서 이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자신들이
성공을 거둔 과학연구와 같은 잣대로 사이연구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대상의 속
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믿음은 이와 같이 한 눈을 팔게 할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의 믿음에 유리한
증거만을 수집하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토록 한다.  또한 믿음에 기초하
여 결과를 낸 사람들은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을 때에도 그것을 포함시키도
록 자신의 이론을 바꾸거나 향상시키지 않는다. 다른 증거에는 귀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저 믿음대로 증명되었다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
과학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 실험이 믿음을 배제한 객관적인 실험이었는
지 판단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의 정신과학자들이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 소녀를 경탄을 하며
바라보는 장면을 그려본다. "안대로 눈을 가렸는데 읽을 수 있다니." 이렇
게 하여 초능력 이야기가 생겨났고 수많은 초능력자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
다. 이 모든 현상의 범인은 비객관적 믿음이다. 실험 전부터 가졌던 초능력
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전통의학에 대한 그 깊은 믿음을 생각해 보
자. 전통의학을 책임진 정부의 관리는 "5000년간의 임상시험에 의해 안전
성, 효능성이 보장된 완전한 의학이다"라고 말한다. 이 사람이 과연 전통의
학의 과학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심이 될 뿐이다.

8. 재현성
 
초심리학 연구의 재현성에 관한 토의에서 정신과학자는 말한다. "아직껏
사람의 마음을 실험대상으로 올려 본 적이 없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는
말이 상징하듯 사람의 마음은 재현성이 낮다. 하물며 물질 이외의 요소를
철저하게 배척하는 기존과학의 틀로는 이를 재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
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연구의 대상으로 올려 본 지는 100년이 된다.
1930년대 듀크대학 라인은 이를 좀 더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초심리학을 창
시하였다. 물질이외의 요소란 무엇을 의미함인가? 과학은 물질적 기초 위
에 이뤄진 것이다. 정신영향의 측정에 물질적인 것 외의 어떤 것이 있다면
이미 과학이 아니다.

초심리학자들은 실험이 재현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정신영향은 측정
횟수에 따라 점차 감소한다는 감소효과, 의심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영향으로 긍정적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실험자효과와 같은 특별가설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특별가설을 만든 실험자체의 재현성에 의
문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이들은 믿음을 증명하려는 집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계속 임기 응변
식 가설을 만들어 낸다.
 
재현성의 만족은 과학과 의사과학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재현성이
없는 과학의 가설은 폐기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신과학자 주변에는 재현
성을 희석시키는 논리가 빈발한다. 앞서 초심리학의 특별가설을 인용할 뿐
만 아니라 즉 흥적인 변명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 파워에 관
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라미드 구조물 안에 우유를 넣어 두었더니 중심 축에서 3분의 1 되는
지점에 놓은 우유가 썩지 않았다. 그러나 실험을 거듭할수록 그같은 현상
은 나타나기도,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태양흑점 온도, 밤과 낮의 차이, 주
변전자파 영향따위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추정한다, 자연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변수가 존재한다."
 
과학에서는 바로 이 변수를 통제하기 위한 대조실험을 중시한다. 피라미드
파워 자체를 실험하려면 피라미드 모양의 군과 피라미드가 아닌 모양의 군
으로 나눠 우유건 무엇이건 그 자체 균일한 것을 넣고 같은 환경에서 보존
시간에 따라 실험하여 통계적으로 처리한다. 피라미드의 중심 축에서 3분
의 1 지점을 확인하려면 많은 피라미드에 밑바닥에 그리고 3분의 1축에 우
유를 넣고 실험하여 통계적으로 처리한다. 대조와 통계적 처리는 알지 못
하는 변수를 상쇄시키기 위해 과학적 실험에서 상례적으로 행하는 방법이
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변수라고 말하며 재현성 문제를 희석하려는 정신과
학자에게서 피라미드 파워에 대한 믿음을 발견할 뿐이다. 

9. 이론상 간격
 
어느 정신과학자의 주제는 늘 텔레파시 통신이다. 이 때 텔레파시는 우리
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달된다는 텔레파시인 듯이 보인
다. 그들은 개발 여하에 따라 새로운 초능력도 나타나며 기존의 초능력도
예민해 진다고 주장하니까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텔레파시 능력도 갖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텔레파시를 믿지 않았다. 허황된 '시간'은 빼고라도
공간을 초월하여 전달된다는 텔레파시가,  어떤 힘 또는  에너지도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미치는 힘이 줄어든다는 확고한 물리학 이론과 배치되기 때
문이었다. 이와 같이 어떤 주장에 이론상 간격이 있을 경우, 그러면서 충분
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 의사과학으로 의심해야 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어떤 학자는 발의 시각 경혈점에 침을 삽입하여 두뇌
의 시각 피질에서 반응을 관찰하고는 이제 한의학의 침술이론을 증명할 단
서를 잡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험의 재현성이 충족된다고 하여도 우
연한 신경자극에 의한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침술의 경락과 경혈점은 고
대의 사변적 이론이다. 신경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때에 머릿속  생
각으로 나온 것이다. 이런 침술이 과연 현대 생리학으로 해석될 수 있을
까? 이론상 간격으로 보아 의사과학일 가능성이 크다.
 
이론상 간격이란 텔레파시와 같이 이미 성립된 이론에 위배될 경우뿐만 아
니라 이론은 성립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론의 응용이 미치지 못할 경우도 해
당된다. 텔레파시 통신을 주장하는 정신과학자의 참 뜻이 아마도 인간의
생각패턴을 전자기파 형태로 잡아 증폭시켜 쏘아 주면 적절한 수신기를 갖
춘 대상이 이를 잡아 다시 마음속으로 떠오르도록 한다는 아이디어 일수도
있다. 이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우선 인간의 생각패턴을 그렇게 규격화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
다. 인간의 생각 하나 하나를 뇌파의 기호로 잡아낼 수 있을까? 과학이 발
달해도 불가능할지도 모르며 지금 당장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최근 알
파파, 베타파 등의 뇌파의 패턴 차이에 따라 기계를 작동할 수 있다고 보
도되고 있으나 이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패턴을 구별할 수 없는 한, 인
간의 생각에 반응하는 기계장치는 나올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이 있다면 그
것은 의사과학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기, 자기, 또는 전자기 어느 것이건 만물에서 에너
지를 검출할 수 있다. 인체의 개개 장기 에너지장의 패턴을 규격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장기와 이상의 것을 이 패턴으로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정상으로 돌려주면 만병이 치료된다던가? 그러나 잠깐 숨
을 돌려 현시점의 과학상태를 살펴보자. 화학에서 분리, 정제만큼 중요한
과정은 없다. 어째서인가? 혼합물 상태에서 개개 성분을 분리하여 파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혹 개개 성분의 광학적 스펙트럼특성을  알고 있
어도 이러한 성분이 몇 개 혼합된 경우에는 그런 성분이 얼마큼 씩 들어
있는지를 알아낼 수 없다. 완전히 섞여져 나타나는 스펙트럼을 개개의 성
분으로 나누어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의 측정기기로 불가
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수히 많은 세포, 물질성분으로 구성된 개개 장기의 에너지장을
안다하여도 총 에너지장을 보아서 개개 장기의 내용을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총에너지장의 변화를 보아 그 속에서 개개 장기의 이상에
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파동수를 투여하여 에너지장을 정
상으로 만들어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어느 하나도 과학적
으로 분명히 증명된 것이 없음에도 이런 것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사
람이 있다. 심지어 인간의 마음조차 읽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종이에 그려내는 상상은 그대로 과학이 아닌 것이다. 아이디어는 과학으로
증명되어야 하며 적용될 수 있는 최적 조건이 나와야 한다. 또한 실험에는
우리 주위의 기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기기의 발전보다 앞선 아이디어
란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신과학자들은 아이디어만을 갖고 적당한
장치로 적당히 수치를 내어 마치 그것이 과학인양 말한다. 이것은 과학이
아닌 의사과학이다.

10. 대등한 과학자의 심사

과학 연구는 은둔의 과학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연구
의 첫 단계부터 동료과학자들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동료의 비평을 듣는
다. 이런 과정은 연구가 진행 중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연구가 끝난 다음에
는 과학의 세계에서 인정하는 형식을 갖추어 논문으로 작성하여 학술잡지
에 투고한다. 학술잡지의 편집인은 이 논문을 논문의 저자와 대등한 수준
의 과학자에게 보내 심사하게 한다. 심사를 통과한 논문만이 잡지에 게재
되어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배포된다.
 
어떤 논문이든지 허점이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은 전세계의 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논문의 일부 또는 전 내용은 다른 실험실의 학
자에 의해 실험되어 재현성 여부가 드러난다. 그 논문에 대한 평가는 즉시
다른 과학자들의 논문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전세계의 과학자에게 과학연
구의 결과가 알려지고 비평을 받는 이 과정이 과학연구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다. 실제 이 비평을 통과한 옳은 과학만이 추려져 과학지식에 포함
된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에서 중요한 단계는 대등한 과학자에 의한 논문의 심사
이다. 이 기능이 없다면 의미 없는 논문조차도 전세계로 전파될 것이다. 이
때 찾아오는 혼란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과학자의 세계에서는 논문으
로 발표하기 전에 또는 학회의 발표 형식을 거치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거
나 언론에 발표하는 행위를 위험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며 그 내용을 자체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의 사례로 보아 이런 식으로  발표된 결과가
많은 경우에 의사과학일 뿐이라는 경험을 갖고 있다.
       
어느 의료인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때 암치료
를 주장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 암치료에 대해 잘 아는 과
학자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가능성이 있다면 다음에 과학적 시험을 통해
새로운 암치료제의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의 공개성과 비
평 수용 원칙을 피한 채  비방을 공개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하고 있
는 한 그 치료법은 의사과학일 가능성이 크다.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다고 주장하는 소녀를 발견한 과학자는 자신의 방법
으로 그것을 입증했다고 하여 그대로 사실이라고 공표해서는 안 된다. 대
등한 수준을 가진 다른 그룹의 과학자의 검증을 받도록 하여야 하며 다음
에 시험법 등을 학술지에 공개하여 초능력 여부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한
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실로 증명될 경우에 비로소 손가락으로 글을 읽는
예라는 가설이 성립될 수 있다. 
 
11. 참고

1)Nathan Aaseng, Science versus Pseudoscience, Franklin Watts, New
York,  1994.   
2) Terence Hines, Pseudoscience and the Paranormal, Prometheus,
Amherst,  New York, 1988.
3) James Lett, A Field Guide to Critical Thinking, in The Hundredth
Monkey and Other Paradigms of the Paranormal, Kendrick Frazier, ed.,
Prometheus,  Amherst, New York,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