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학/철학
초심리학/잠재능력
UFO/신물리학
오컬티즘/미스터리

과학적, 비과학적 의학
동서양 대체의학

창조론/과학적 사실성
창조론/철학과 정치

스켑틱스/기타 주제
KOPSA 박물관

 

대중매체 모니터링
질문과 답

토론방법
토론사례

연구회원 게시판
연구위원 게시판

 

초심리학/잠재능력
   
  [미스터리-월드] 흄과 손대지 않고 연주한 아코디언
  글쓴이 : kopsa     날짜 : 00-11-29 07:30     조회 : 5051    
[미스터리-월드] 흄과 손대지 않고 연주한 아코디언

"미스터리-월드"를 위해 "신과학은 없다"에서 추린 내용입니다. 본래 책의
내용을 한 곳 수정하고 약간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1옥타브 마우스 오르간이
무엇이지요? 그것으로 간단한 음악을 연주했을 가능성을 말하는데, 누구 "회
원 한마디"에 해석을 써넣어 주십시오. 또는 강박사에게 메일을 보내주십시
오.
............................
[염력] 흄과 아코디언

정신력으로 물질을 움직일 수 있다는, 염력에 대한  믿음은 원시시대 이래
의 것이다. 원시주술사는 마술을 행하여 기후를 통제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구름에게 명령도 하였다. 그렇게 하여 효과가 나타
나리라 믿었고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한 흉악한 눈
(evil eye)을 가진 사람은 단지 처다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고 믿었다.

19세기 과학의 시대에 흄(Daniel Dunglas Home, 1833∼1886)은 심령적 능
력, 특히 염력으로 주목을 받았다(주: 홈이 아니라 흄이라고 발음한다).  스
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출생한 흄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그의 심령적 능력
은 투시력자로 알려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4살
때에 이미 사촌의 사망을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살 때 가족
은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1850년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예
측했으며 흄의 시야에는 그녀가 사망할 순간의 모습이 나타났다.

흄은 지나친 귀신장난 때문에 학교를 쫓겨나 영적 매개사(영매)의 길을 걷
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는 폭스 자매가 대단한 인기를 얻던 때였다. 1855년
영국 등 유럽 각지로 여행하였을 때 그의 능력에 찬반 양론이 일었으나 코
넌 도일(Arthur Conan Doyle)의 지지를 받았다. 1856년 2월 그는 1년 동안
공개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는 사라졌다가 정확히 1년 후에 다시 나타나 예
를 들어 나폴레옹 3세 앞에서 심령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1858년 러시아에서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였다. 1862년 그녀가 사망했을 때
흄을 의심쩍게 본 그녀 가족의 방해로 한 푼의 유산도 상속받지 못했다.
바로 직후 영국에서  부유한 미망인 제인 라이온을 만났는데 그녀는 전 남
편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흄의 말을 듣고 그를 양자로 맞아 돈을 많이
주었으나 후에 영국 법원은 흄이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돈
을 반환할 것을 명령했다.

이상 돈과 관련된 흄의 이야기에서 그의 편모를 발견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의 염력은 지금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의 능력 중에서 테이
블 밑의 커다란 바구니에 자물쇠로 잠겨진 아코디언을,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켤수 있다는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아코디언의 음은 가늘고
약했으나 분명히 그는 염력으로 아코디언을 켤 수 있는 듯 보였다.  흄의
이런 능력은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크룩스(William Crookes)도 인정한 것
으로, 그는 1871년 흄의 초능력이 실제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흄은 속임수
가 들통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서인지 생전에 의심을 받지 않았다.

정말로 흄은 염력을 가졌을까? 그가 사망한 후 발견된 유품 중에는 많은 1
옥타브 마우스 오르간들이 있었으며 아마도 옴폭한 체모양의 수염을 하고
있었던 그가 이런 작은 악기를 입에 숨겨 음을 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가 간단한 '여름의 마지막 장미'와  '즐거운 나의 집'만을 켤 수 있었다는
사실도 이 의심을 깊게 해 준다. 그가  정말로 이런 속임수를 썼다면 어째
서 크룩스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19세기의 심령연구학자들은 초능력의
존재를 스스로 믿었고 이를 확인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기 때문일 것이
다. 크룩스는 또한 흄의 가까운 친구였다.
 
흄은 프랑스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1871년 러시아에서 부유한 부인
과 재혼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부인은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을 데리
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1888년 '흄: 그의 생애와 사명
'(D.D. Home: His Life and Mission)과 1890년 '흄의 선물'(The Gift of
D.D. Home)을 지었다. 흄 자신도 1862년 '나의 생애의 일들' (Incidents in
My Life) 등 책을 지었는데, 실제는 그의 변호사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
다. 흄의 공중부양에 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