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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우 교수의 배산임수, 조선조 도읍 입지가 의미하는 것
  글쓴이 : kopsa     날짜 : 04-10-30 06:52     조회 : 5052    
권용우 교수의 배산임수, 조선조 도읍 입지가 의미하는 것 

직전 게시 글에 분석한 대로 권용우 교수는 신행정수도 선정 평가 기준의 “배산
임수”를 점술적 풍수론이 아닌 것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배산임수”는 소
위 풍수지리학자가 참여하여 기준으로 설정한 풍수론을 미신의 색채가 없도록
명칭을 바꾸어 붙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풍수론을 풍수지리니 무엇이니 하는 학
문적으로 보이는 명칭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본래 상식과 점술의 온전한
복합체입니다. 상식 그 자체도 과학이 아닐뿐더러 이 상식은 점술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1. 권 교수의 조선도읍 입지   

2004년 6월 30일 동아닷컴 “風水로 본 신행정수도 후보지” 기사에는 “권용우
평가위원장 풍수지리도 비중 있게 거론돼"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배산임수“를 그대로 ”풍수지리“로 기술하고 있고 권 교수가 이 부분
도 비중 있게 다룬다고 했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권 교수의 직접 말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 권 교수는 “서울은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전국을 샅샅이 둘러 본
뒤 결정했을 정도로 풍수가 뛰어난 곳”이라며 “다만 도보 위주의 네트워크 중심
이었던 600년 전 교통 환경이 고려된 것이므로, 지금은 평가가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무학대사도 '좌청룡 격인 낙산이 약해 (조선의 운이) 500년은 가도
1000년 가긴 힘들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며 "사실 풍수지리는 권력을 쥔 자
들의 상황논리에 따라 명분으로 내세워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권 교수는 그
예로 "당시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이 지금의 신촌 지역인 '송학 천도론'을 폈지
만, 태조 이성계는 장자 방원이 자신과 정적 관계라는 점에서 이를 부결시켰다"
는 일화도 소개했다. }

2. 권 교수의 이상한 해명

우선 권 교수의 이 설명은 평가기준의 “배산임수”가 그대로 “풍수론”을 의미한
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권 교수는 “배산임수”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도 추진위에서 설정한 “배산임수”가 어떠한 것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전에 게시한 글에 있지만 권 교수는 해명 글의 첫 번째
항목에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동아닷컴의 6월 30일자 기사 가운데 조선조 도읍 입지에 관해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이미 관련서적에 나와 있는 내용을 기자에게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조
선조 도읍 입지에 관한 서적은 여러 종류가 이미 출판된 바 있습니다.”

이 부분을 한의학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의학을 토의하는 가운데 어느 누가
허준의 동의보감에 이런 한약이 이런 효과가 있다고 말하거나 이제마의 동의수
세보원에 사람의 체질이 이렇게 나와 있고 그 체질에 따라 음식이나 약을 골라
야 한다고 합시다. 이 경우 그 말한 사람이 단지 이미 출판된 책으로 알고 있는
동의보감이나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까? 동의여부는 별개의 문제
입니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조선조 도읍지 설명은 단지 풍수에 대한 불찬성 내
지 비판의 전제가 돼야 할 것입니다. 

3. 조선조 도읍입지란?

권용우 교수가 소개한 조선조 도읍 입지는 점술적 풍수의 정체를 말해주는 것
입니다. 신행정수도 선정 때에 이미 언론에서는 풍수지리와 구체적으로 청와대
자리를 어디에 잡아야 할지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이때 예로 말한 것이 조선조
도읍 입지입니다. 예를 들어 주간동아(2004.03.11 13:43:47) “태조의 수난은 도
읍 잘못 정한 탓?” 기사에 그런 것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개경(개성) 수창궁에서 국왕의 자리에 올라 즉위 2년 계룡산에
도읍지를 정하였는데 기초공사가 몇 달 진행될 즈음 하륜이 “풍수지리로 볼 때
이 땅은 장차 망할 땅”이라는 상소를 올리자 그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 새
로 도읍지를 찾습니다. 하륜은 도읍지를 무악(현재 연세대/이화여대 일대)으로
정할 것을 주장했는데 다수 의견에 밀려 1394년 한양(현재 경복궁/청와대)을
도읍지로 정해 옮깁니다. 지금으로 보면 무악이니 한양이니 다 같은 서울입니다. 

그러나 한양으로 옮긴 뒤 ‘왕자의 난’으로 두 왕자와 개국 공신들이 살해되고,
태조가 사랑하는 후처 강씨가 죽었고 태조 자신은 아들(태종)에게 권력을 빼앗기
고 건강까지도 위독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한양으로 옮긴 때
문이라고 하며 1399년 개경으로 환도(還都)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천재지변
과 괴변이 끊이지 않아 1404년 태종은 재천도를 준비하는데 '개경' '무악' '한양'
의 세 천도 후보지를 놓고 종묘에서 동전점을 쳐 '한양'으로 최종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대신 태조가 있던 경복궁을 피해 새 궁궐을 짓도록 한 것이 창덕궁의 탄
생 역사입니다. 

4. 결론 

위의 조선 왕조의 역사적 이야기는 풍수가 점술임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풍수에
서는 어느 곳은 이러 이러해서 좋은 땅이고 어느 곳은 이러 이러해서 나쁜 땅이
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무악에 비해 한양이 나쁜 이유를 “북악산과 인왕산이 모
두 험석으로 강한 살기(殺氣)를 보이고, 북서쪽인 자하문 방향이 함몰되어 살풍
(殺風)이 불어온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북악산에서 청와대와 경복궁으로 이어지
는 산 능선이 애매하여 지기(地氣)를 받을 수 없고, 명당 수가 부족해 충만한 생
기를 받을 수 없다”고 하는 식입니다. 한 국가의 경영에 이러한 점술이 판단 기
준으로 채택된 문제에 대해 권 교수 등은 책임을 느끼고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2004 년 10월 29일 권용우 교수 등에게 이곳 글을 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