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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역사 속의 점술
  글쓴이 : 장정태     날짜 : 02-06-05 08:06     조회 : 4457    
한국 역사 속의 점술

과거 인간에게 현재 미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장정태님의
글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본래 제목은 아래와 같이 "국무(國巫)론"
이었으나 바꾸고 마지막 부분 약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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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國巫)론

국존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를 보면 예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곳
곳에 담겨 있어 흥미롭다.

신라 21대 비처왕(혹은 소지왕) 즉위 10년 무진에 천천정에 행차를 하였는
데,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형상으로 말하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으로 찾아가시오" 라고 하였다. 왕이 기사에게 명하여 뒤
따르게 하였다. 남쪽으로 가피촌에 이르러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잃어 버
리고 말았다. 때마침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전하는 글 겉에는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해 선택에 고민하
는 왕에게 일관은 "두 사람이란 서민이요, 한 사람이란 왕을 말하는 것입
니다"라고 하니, 왕이 뜯어보고 내전에서 그 말대로 승려와 궁주가 몰래
간통함을 알고 그들이 숨어 있던 금갑을 쏜 이야기다.(제1권 사금갑조)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의 전생은 고구려의 추남이란 점쟁이라고
한다. 고구려 보장왕 당시 국경에 역류하는 물이 있어 점을 치게 하니 "대
왕의 부인이 음양의 도를 역행하여 그 징조가 이와 같다"고 예언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왕비는 노하며 다른 예언을 통해 추남을 시험해 본다. 쥐
한 마리를 합에 가두고 맞출 것을 강요한다. 추남이 말하기를 "이는 쥐인
데 모두 여덟 마리입니다"고 말한다. 사실 그 안에는 새끼를 밴 어미 쥐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보이는 숫자와는 다르지만 그의 예언은 정확했
다. 그럼에도 억울하게 죽게 된 추남은 참형을 당하면서 "내가 죽은 후에
대장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날
밤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의 부인 몸으로 들어간 것을 보았다.
(제2권 김유신 조) 그가 후일 김유신이 되었고 변방의 작은 나라 신라가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루는 대업을 이루게 된다.

왕이 될 것을 예언, 자손들의 입사를 연 이야기도 있다.
신라 38대 원성대왕이 각간으로 차재(次宰)에 있었다. 꿈에 북두를 벗고 흰
입을 쓰고는 12현금을 들고 천관사의 물 속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깨어나
사람들을 시켜 점을 보니 "실직과 칼을 쓰고 옥에 갇힐 조짐"이라고 전한
다. 망연자실한 그에게 아찬 여삼만이 "북두를 벗은 것은 더 위에 사람이
없는 것이요, 흰 입을 쓴 것은 면류관을 살 징조..."라며 임금에 오를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의 예언처럼 임금에 오른 후 그의 자손을 불러 벼슬을
내렸다.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당시 귀신이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고 크
게 부르짖으며 땅속에 들어가자 왕은 그곳을 파 보게 한다. 땅을 파 보니
그곳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거북의 등에 글이 씌어 있었는데 "
백제는 온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고 쓰여 있었다. 무당에게 물었더니
무당이 말하기를 "온달이란 꽉 찬 것이오니 차면 이지러지는 법이 오며,
초승달이라 함은 아직 차지 않은 것이오니 차지 않으면 점점 차게 되는 것
입니다." 왕은 노해서 무당을 죽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온달은 꽉 찬 것
이고. 초승달은 미약한 것이오니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성해지고 신라는
미약해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은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의 추남과 백제의 이름 없는 무당의 예처럼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
지만 대체적으로 왕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국사에 관한 조언은 물론 시
시콜골한 자문역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을 나라에 명운을 보는
국무(國巫)라고 하면 과찬일까.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국가적 행사로서의
굿을 주관하게 하기 위해 도성 안에 둔 무당을 말한다. 아울러 왕가의 주
문에 의해 행하던 굿, 나라 굿을 맡아 하던 무당을 나라무당 또는 국무(國
巫)라고 불렀다.

나랏 굿은 궁안에서 벌어지는 굿과 궁밖에서 행해지는 굿으로 구분하고 있
다. 궁안에서 벌어지는 굿은 대부분 동쪽의 각심절본 무당이 차지하였다.
궁밖에서 행해지는 굿은 궁궐 밖의 굿당에서 행해졌는데 이를 제당이라 불
렀다. 제당에서 하던 굿은 서쪽의 구파발본 무당이 담당하였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멀리 고려 명종 때 별례기은도감의 설치와 더불어 시
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 말 유교의 대두로 말미암아 무당을 내쫓
고 음사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성하였지만 조선시대까지 존속된 것으로 조
선실록은 전하고 있다. 특히 세종 8년(1426) 미신 배척을 이유로 사간원에
서 그 폐지를 주청했으나 전통 존중의 뜻에서 그냥 존속시켰다.
 
조선 태종18년(1418) 무술 봄 2월, 형조에서 무녀의 죄를 청하기를 '성녕대
군'의 병환을 보면 국무 가이는 기도에 능하지 못하니 화를 면치 못할 것
이며, 무녀 보문은 병세를 살펴보지도 않고 궁위에게 잡신을 음란하게 치
제해서 불측을 이루었으니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청하고 있다.

조선의 종문과 함께 사라진 국무(國巫)가 요즈음 우리 주위에는 존재하고
있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무속인을 비롯, 그 주변인사들을 중심으로 스스
로 자신과 식솔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무속을 잘 모르는 일반인
들은 아직도 국무(國巫)가 있고 그들이 나라의 중대사를 자문하는 그런 역
할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 국무(國巫)는 특정무속
무(舞)에 관해 국가에서 보존 가치가 있고 그를 전수시킬 역량이 있음을
인정하는 기능인, 예능인을 말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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