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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 속의 과학 초자연의 세계" 저자 서문
  글쓴이 : kopsa     날짜 : 07-12-09 23:19     조회 : 3736    
<미스터리 속의 과학 초자연의 세계>

저자 서문
회의주의의 가치에 대해

  (과학적 회의주의) 스켑틱(skeptic; 회의주의자)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 또는 습관적으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 회의주의자의 정의에는 의심이라는 한 면만을 나타냈고 무엇을 어떻게 회의하는지는 빠져 있다. 

  사람마다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즉 세계관에는 차이가 있다. 이 세계가 물질적 존재만으로 구성됐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물질 외적인 신과 영혼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도 포함한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적 탐구는 자연은 시공간적 물질적 요소로 구성됐고,  자연적 과정은 자연적 법칙을 따르며,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세계관과는 관련이 없이 자연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하여 경험하고 측정할 수 있는 유물론적인 방법으로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마찬가지로 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사실적 근거와 오류가 없는 추리의 과학적 방법으로써 우리 사회의 의사(擬似)과학이나 비(非)과학을 비판한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과학과 종교의 문제에서 종교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비과학적 측면 그리고 종교의 과학적 주장에 내포된 비과학성만을 다루지 종교적 도그마와 관련된 일반적인 종교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회의주의자 중에는 초자연적 존재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또는 철학적 자연주의를 비탕으로 한 철학적 자연주의자도 있다. 여기에 속한 비종교적 인본주의자는 과학의 기준으로 종교의 역사성과 도그마의 허구를 비판하며 종교에 대안적인 삶의 철학으로 과학과 이성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필자의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입장에서 작성됐다. 심령연구, 초심리학  그리고 뉴에이지의 많은 주장은 영성의 과학화 시도이다. 이 책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영성의 과학적 주장에 포함된 비과학성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또한 종교의 필수 요소인 신을 매개로 한 중보기도 효과 연구의  제반 과학적 문제를 다루었다. 명상 단학의 경우도 명상 수련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눈을 가리고 글을 읽는다는 주장 등 과학적 주장의 과학성을 비판했을 뿐이다.

  (전통세계의 믿음과 회의주의) 이 책에서 기타 점술과 미스터리의 과학성을 다루었으나 회의주의자는 인간의 신앙과 이성의 두 가지 모습에서 신앙적 가치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가치를 분명히 세우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바꾸어놓은 과학혁명의 정신이기도 하다. 과학적 회의주의의 이해를 위해 좀 더 설명하려고 한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로 2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망했다. 첨단 과학의 시대인 지금도 인간은 자연 앞에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1755년 리스본 지진의 상황은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이 지진으로 인해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은 폐허로 변했고 리스본에서만 25만 인구 중에 6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지진은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신의 벌로 치부되었고 교회는 속죄를 강요하였다.
     
  이때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고 일어서겠다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자연은 자연 법칙을 따르는 자연 과정에 의해 작동한다는 자연주의적 과학의 기운이었다. 과학은 지진이 자연 현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들은 베이컨, 뉴턴의 전통을 따라 과학적 방법으로 지진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과학은 인간과 신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학적 방법의 근본은 정직성과 객관성이다. 자료 하나 하나가 정직하고 객관적인 사실적 근거에 바탕하고 자료의 일반화와 가설의 예측성은 논리적 오류가 없이 객관적으로 추리돼야 한다. 이 사실적 근거와 오류가 없는 추리라는 과학적 사고는 사회의 온갖 미신, 편견, 무지를 깨우쳐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과학은 그동안 기술을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의 식량, 의료, 에너지를 해결해 왔다. 그러나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그 성취에 묻혀 그 근본인 과학적 사고는 잊혀진 것 같다.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기까지 하는 운명에 의지하고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점술이 이렇게 부끄럼 없이 양지로 나선 적이 없다. 우리의 현실은 행정수도 선정이라는 한 국가의 운영에까지 풍수라는 점술이 채택될 정도이다. 

  점술 외에도 비과학, 의사(擬似)과학은 우리 주위에 흔하다. 단학선원의 눈을 가리고 글을 읽는다는 주장과 같은, 신문에는 두뇌 훈련을 통해 투시 등 초능력이 개발된다는 내용이 실린다. 학생은 과학 교육에서 인간이 5감을 통해 외부 세계를 지각한다고 배운다. 만일 5감을 초월한 어떤 능력이 발견된다면 이는 교과서의 내용을 바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모습이 달라질 사건이다. 그런데 정부 기관에서까지 명상 단체의 초능력 주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 교육에 역행하는 점술이나 초능력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아득한 먼 옛날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우리는 운명에 대한 불안을 품고 살고 있다. 특별한 능력에 대한 기대가 이와 관련되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가능성의 믿음은 본래 인간이 허허벌판 이 땅위에 발붙인 때부터 배양돼 전통 문화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이를 미신이라고 불러 멀리하도록 경계하고 있으나 이 믿음이 과학으로 포장되어 과학이라는 한 마디가 일시에 허술한 장벽을 허물어 버린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이들의 허구성을 파헤쳐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사회 갈등과 회의주의) 2004년 인도양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한 진보 성향의  신문은 그 피해가 산업 혁명이후 인간의 자연 파괴와 자본주의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커다란 글을 실었다. 생태주의자의 논리이다. 화학 비료, 살충제, 핵 발전, 유전자 변형 식품, 수돗물 불소화, 부작용이 많은 현대 의약품 등 사회의 진보적 세력과 보수적 세력의 갈등 속에서 일반인은 프로파간다에 세뇌를 당하도록 노출돼 있다. 
 
  이들의 주장은 어느 세력이건 이념적 선입견으로 깊게 채색돼 있다. 이들은 어떤 주장이건 정직성, 재현성, 충분성을 갖춘 증거가 토대가 되며, 이를 일반화하여 사고 또는 주장을 형성할 때에 그 추리는 반증성, 논리성, 포괄성을 만족해야 한다는 비판적 사고의 원칙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저마다 자신에 유리한 근거만을 제시하거나 아직 확인돼야 할 근거를 결정적으로 제시하거나 그 중에는 어렴풋이 아는 근거로 조작하기도 한다. 한두 가지 근거로 일반화하거나 성급한 일반화가 허다하다. 

  또한 이들의 주장에는 과학기술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혜택과 위험의 상보적 양상을 제대로 모르는 근원적인 문제가 보인다. 비판적 사고의 회의주의자는 현재까지 연구된 혜택과 위험 자료를 가감 없이 제시하고, 여기에 당장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추리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포함하여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국민은 어떤 선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혜택을 취할 것인지, 어떤 경우에 미래 세대를 위해 잠재적 위험까지 고려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능한 대안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
 
  사회적 갈등의 비판적 사고의 결핍 양상을 한방 감기약의 안전성을 둘러싼 한의사와 의사 사이의 논쟁으로 좀 더 설명하려고 한다. 한의사의 한방 감기약이 부작용이 없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이 논쟁은 의학 전문인 사이의 구체적으로 질병과 약 그리고 안전성이라는 과학적 문제에 관한 논쟁이다. 인체 생리의 이상인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이상 부위의 이상 정도만을 정상으로 돌리도록 그렇게 이상적으로 작용을 나타낼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어떤 약이든 원하지 않는 효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의사는 틀린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러나 한약이 심장병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대응한 의사의 주장도 어떤 약이든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이상 한의사와 마찬가지의 광고에 다름 아니다. 사실상 의사의 한약이라는 명칭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총체적 질적 표현 자체가 과학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전통 시대에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탈피한 과학은 구체성과 정량성, 즉 구체적인 약과 부작용 그리고 부작용의 수치적 정도라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어떤 약이든 안전성과 효능성의 비중을 헤아려 사용을 결정하기 때문에 효능성 자료도 포함된 종합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한약이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과학의 합리적 방식이다.
 
  (과학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 과학문화 진흥은 국민 모두가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의 가치를 알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은 회의주의자의 과제이기도 하다. 과학문화의 과학의 이해는 기술의 도구적 사용법보다는 발전적으로 과학기술이 나온 과정과 좀 더 유용한 기술 개발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가치 이해는,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적 방법과 과학적 사고의 이해를 포함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학과 과학의 가치를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에는 과학과 전통문화의 장벽을 허물어 과학을 인간 문화의 가치 있는 구성 요소로 인식시키는 방법도 포함된다.

  그런데 과학문화 진흥을 위해 특별히 설립된 정부기관의 과학문화조차 이와는 사뭇 다른 것들이 있다. 과학은 내용상 정확하고 논리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충분해야 한다. 특정 과학기술의 성과나 과학자의 광고를 통해 과학문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과학은 본래 여러 가능성 가운데 최선의 해석을 찾는 방법이지 일방 통로의 광고가 아니다. 성과나 업적을 말할 경우도 세계 과학계의 진보를 포함하여 비판적 판단의 문을 열어 놓아야 과학문화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과학기술에 의해 직접 영향을 받는 환경과 생명이 복합된 사회적 문제는 특정 정책을 과학문화로 광고할 수 없다. 이 주제는 과학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과학과 이념 내지 윤리가 복합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때 과학문화의 역할은 앞서 갈등적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과 같이 그 주제에 대해 연구된 과학적 자료를 객관적으로 제시하여 토의와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전통 세계의 판타지를 과학으로 꾸며 과학문화라고 전파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초자연적 비과학적 내용을 방영하는 방송을 지원하기도 하고 또 이 기관의 신문에는 이 책에서 다룬 ‘공룡이 살아있다’나 ‘아틀란티스’와 같은 미스터리 물이 실리기도 했다. 이것을 과학문화와 전통문화의 화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전통문화는 과학과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지 융합체가 될 수 없다. 두 문화를 외형상 그럴듯하게 거짓 혼성체로 전파한다면 과학의 이해와 과학적 사고의 배양을 파괴한다. 과학의 가치는 이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인데 판타지와 실세계를 혼동시킴으로써 전통 시대의 사고로 돌아가게 하는 과학문화에 역행하는 행위가 된다. 

  (논리적 오류의 프로파간다) 감정은 사랑, 공포, 애국심(애교심, 애사심 등), 죄악감, 증오 등에 관한 것이다. 감정은 가슴에 속한 것이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그 자체 나쁘지 않다. 사랑이나 애국심 등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이성적 논리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감정에 호소할 경우에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가 된다.

  과학과 이성의 가치를 높이는 과학적 회의주의자에게 감정에 호소만큼 다루기 어려운 것이 없다. 민족 전통과  선조의 지혜에 대한 자긍심을 내세우는 한의학이 이 유형이다. 국학을 강조하는 단학 선원의 명상법에도 그런 색채가 있다. 이들은 국학은 단군국조가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홍익인간 제세이화’를 지상에 실현하는 우리의 사상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전통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한국인의 전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압박한다.

  단학의 경우 여기까지는 과학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홍익인간 이념을 달성하는 방법론에서 우리의 전통 수련법인  단학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며, 천부경을 보면  단군시대 사람들은 모두 단학을 수련하여 초능력을 가졌으며 이 고등감각인지(HSP)의 활용으로 평화와 지구의 홍익인간의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고, 다른 말로 명상의 마지막 목표는 우리 민족 전통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도통(道通)이라고 하며 뇌호흡 수련을 광고할 때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가 된다.
 
  과학 문제에서 감정에 호소 오류는 중보기도 논문을 발표한 차병원 반경에서도 발견한다. 중보기도 논문에 대한 미국 학계의 비판에 대해 차병원 측은 과학적으로 그리고 과학계의 방식으로 논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병원 인수 태클’이라고 하였다. 그 비판이 한국의 차병원이 미국에서 대형 병원을 인수한데 대한 시기 내지 방해  심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래의 경우도 같은 패턴이다.
 
  차병원에서 김모 의사가 이모 교수의 실험실에서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연구는 김모를 제1 저자로 하여 2004년 국내 학회지에 발표됐다. 그 후 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 병원에서 일하던 김모는 이미 발표한 박사과정 연구가 2005년 미국 잡지에 자신의 이름은 빠진 채 차모 교수를 제1 저자로 하여 발표된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미국 잡지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잡지의 편집 위원장은 논문의 표절 내지 중복 게재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이것이 미국 신문에 보도되었을 때 차병원 측은 김모 의사의 기여는 근소하며  연락이 되지 않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신문 보도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 병원을 표적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미국 잡지는 중복게재 금지를 들어 논문을 철회시키는 선에서 문제를 정리했으나 차병원의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는 기업 문화적인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진리의 진정성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중보기도 논문과 관련하여 조자료를 공표하는 것이, 이 진정성만이 비판을 잠재울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김모 의사를 논문의 저자에서 뺀 것도 진정성의 문제로 보인다. CHA 정신(Christianity 기독교적인 이웃 사랑의 정신, Humanity 인간 존중의 정신, Academic 연구와 탐구의 정신)의 바탕도 그것일 것이다. 

  (지식인과 비판적 사고 문제) 포항공대의 ‘생물학 연구 정보센터(브릭)’의 토론 게시판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의 조작을 지적하여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곳에는 국내외 생명과학도와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2007년 상반기 우연히 브릭의 논의를 유심히 볼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곳의 토론을 회의주의자의 비판적 사고의 시각으로  평가해 보았을 때, 지식과 논리에서 제대로 되지 못한 역기능이 제대로 된 순기능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비판적 사고는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만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라고 하여 비판적 사고 능력이 있는지는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또한 과학 연구의 문제 발견은 어렵지 않지만 그 문제를 규정하여 예를 들어 단순한 오류나 해석이 차이인지 아니면 조작, 날조, 표절 등 연구 진실성의 문제인지 가려내어 최선의 해결을 강구하는 능력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의 양상을 회의주의자의 비판적 사고의 관점에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문제 지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대학의 이모 교수를 사례로 설명하려고 한다.
 
  브릭에도 글을 쓰는 그는 2007년 6월 6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얼마나 더 많은 환자가 피를 흘려야 하나’에서 주사(황화수은)가 포함된 안궁우황환을 유아에게 투여한 약사의 문제를 다뤘다. 그는 문제의 규정과 해결에서 “식약청은 아이의 엄마가 수집해 준 자료를 갖고 해당 약사를 고발하는 데 그쳤다. 밀반입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모 한방 약국 체인에 대한 약사 감시는 시늉만 냈다. 광물성 의약품의 허용치 기준 마련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하며 “도대체,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이런 정부도 정부 축에 드는지 물어 보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의 식약청은 불법의약품인 안궁우황환을 사용한 해당 약사를 형사 고발했고 한방 체인 약국이 관여 됐나 조사했더니 그런 혐의는 없었다고 한다. 광물성 의약품 허용치 기준은 주사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이 해결하려는 것인데 법적인 규정 마련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는 달리 한약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 누구나 과학적으로 안전성 효능성이 확보된 약만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지만 이것은 한의사를 다 없애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약의 제반 과학적 자료가 확보돼야 하며 이것이 정부의 최우선 보건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그 교수는 빈번하게 우리와 미국을 비교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 식품의약품안전국(FDA)은 1937년 디에틸렌글리콜(DEG)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때, 약을 회수하기 위해 “239명의 전체 현장 직원을 투입했다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취했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 식약청도 아이가 죽어나가는 DEG와 같이 문제 성분이 포함된 약이라면 발 벗고 회수할 것이다. 한약의 문제, 주사 성분의 문제는 미국에도 있다. FDA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260 종류의 중국 전통 의약품(한약) 중에 5 종류에서 주사가 성분으로 나타나 있었다고 한다.     

  (비판적 사고의 핵심은 객관성) 그 교수는 한 약사의 안궁우황환 사용 문제를 미 FDA와 대비시켜 우리 정부와 식약청을 공격한 다음에는 “문제의 근원은 보다 깊은 데 있다”고 하는 데 다름 아니라 “약학은 보건의료의 여러 분야 중 유일하게 환자가 아닌 '제품' 중심적 학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궁우황환 문제는 하나의 잘못된 약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 근본이 약사의 제품 중심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논증에는 약학을 임의로 규정하는 문제가 있고 또한 한 약사의 문제를 약학, 약학 교육, 약사의 능력으로 일반화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문제도 있다.

  그의 식약청과 약사 공격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전에도 같은 인터넷 신문의 기고문에서 에이즈 환자 혈액이 포함된 원료로 제조한 혈우병 치료제를 방출한 문제를 식약청을 주도하는 약대 출신의 제품 중심적 사고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혈우병 치료제 방출은 실은 주로 의사로 구성된 관련 위원회의 결정이었으며  그의 약학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약사의 역할에서 환자에 대한 서비스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를 임의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대상 또는 목표물을 정해 놓고 공격하는 패턴의 이러한 글은 선입견의 배제를, 객관성을 생명으로 삼는 회의주의자의 눈에는 기이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실리는 신문과 호응하는 대중이 있는 이유는 과학 문제가 정치로 포장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정부가 정부 축에 드느냐는 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할 것인가.
 
  회의주의자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자연적인 힘 또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점술, 초능력, 신, 기도, 그리고 미스터리 등 초자연현상에 대한 믿음이며 이 책에서 다룬 주제가 이것이다. 이 믿음은 인간이 이 땅위에 발붙인 때부터 배양되어 핏속에 녹아 인간의 한 모습을 형성한 것이다. 어느 누가 이 믿음을 송두리째 없애 버릴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한다면 인간은 제 모습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회의주의자의 역할은 신앙적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인간이 스스로 이 세상에 발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2007년 10월

                                  峴松齋에서 

                                  저자 강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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