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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 속의 과학 영혼의 세계" 저자 서문
  글쓴이 : kopsa     날짜 : 07-12-09 22:20     조회 : 4169    
<미스터리 속의 과학 영혼의 세계>

저자 서문
회의주의와 영혼에 대해

  (과학적 회의주의) 스켑틱(skeptic; 회의주의자)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 또는 습관적으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 회의주의자의 정의에는 의심이라는 한 면만을 나타냈고 무엇을 어떻게 회의하는지는 빠져 있다.
 
  회의주의자 중에는 인간에게 무엇이건 확실히 아는 능력이 있는지 자체를 의심하는 철학적 회의주의자도 있다. 자신 이외의 외적 세계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철학적 유아론(唯我論)이나 객관적 윤리적 기준을 부인하는 윤리적 주관론이 이들의 극단적인 입장이다. 또한 이들은 형이상학적 신학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불가지론자이며 과학에서는 참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부정화고 모든 것이 각자 또는 과학계가 정하기 나름이라는 상대주의적 과학을 취한다.
 
  우리는 의심을 하되 철학적 회의주의자와 같은 총체적 보편적인 의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의문에 대해 신뢰성이 있는 기준에 입각하여 회의하는 건설적 회의주의자여야 할 것이다. 이 기준은 사실적 근거와 올바른 추리, 즉 과학적 탐구의 방법인 과학적 방법이며 이러한 회의주의자는 과학적 회의주의자이다. 영혼의 문제에서 이들은 영혼에 대한 믿음 또는 정의에 따라 그 영혼의 존재와 특징을 과학적 방법, 다른 말로 비판적 사고로 회의한다.
 
  화장장에서 사랑하는 이는 사라지고 부삽으로 쓸어 담는 재를 보고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잠깐 동안이라도 영혼을 생각하게 한다. 찬송가와 목탁과 불경 소리가 들린다. 다른 세계, 신의 영역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노래이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저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 영혼과 신의 의문을 과학적 회의주의자가 풀어낼 수 있을까.
 
  과학은 자연주의적 탐구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따름이다. 자연주의는 자연이 자연적 요소, 즉 시공간적 물질적 요소로 구성되었고, 자연적 과정은 자연적 법칙을 따르며,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과학은 이 유물론적인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을 다룬다. 영혼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영혼은 과학의 영역에 그리고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회의의 대상에 포함될 수가 없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현대 세계관)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비판적 사고(과학적 사고)는 과학 혁명과 더불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다. 당시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도 역병도 모두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신의 벌로 치부되었고 교회가 속죄를 강요하던 때였다. 이때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고 일어서겠다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자연은 자연 법칙을 따르는 자연 과정에 의해 작동한다는 자연주의적 과학의 기운이었다. 과학은 지진이 자연 현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과학은 인간과 신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학적 방법의 근본은 정직성과 객관성이다. 자료 하나 하나가 정직하고 객관적인 사실적 근거에 바탕하고 자료의 일반화와 가설의 예측성은 논리적 오류가 없이 객관적으로 추리돼야 한다. 이 사실적 근거와 오류가 없는 추리라는 과학적 사고는 사회의 온갖 미신, 편견, 무지를 깨우쳐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그 성취에 묻혀 그 근본인 과학적 사고는 잊혀진 것 같다.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기까지 하는 운명에 의지하고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점술이 이렇게 부끄럼 없이 양지로 나선 적이 없다. 점술만이 아니다. 온갖 초능력, 영과 영의 능력, 미스터리 등 초자연적 판타지가 과학으로 포장되어 대중 앞에 사실인 것처럼 제시된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이러한 과학으로 포장된 의사(擬似)과학 또는 비(非)과학을 비판적 사고로, 과학적 사고 내지 방법으로 비판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자연주의 외적인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하는 종교적 도그마 등 일반적인 종교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종교의 비과학적 측면 그리고 종교의 과학적 주장, 예건대 종교적 기적과 성경의 과학적 해석 등에 내포된 비과학성은 커다란 관심사이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방법론적 자연주의자이지만 자연주의에는 이와는 다른  철학적 자연주의가 있다. 이것은 대부분 형이상학적, 철학적, 종교적 주장을 그 주장의 참을 과학적 방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폐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철학적 자연주의 운동인 비종교적 인본주의는 신과 종교를 부정하며 대신 개개인으로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 인간의 관심사, 그리고 인간 환경의 탐구에 과학과 과학적 방법이 어떤 방법보다 우수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최근 <신이라는 망상>에서 책 제목의 망상이 “한 사람이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는 의미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회의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나 종교를 부정하는 비종교적 인본주의 반경의 철학적 자연주의자이다. 도킨스의 책에도 인용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종교가 있건 없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악한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며 선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할 때 종교를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무신론자이다.

  (영혼의 창, 비판적 사고) 인간의 영혼은 여러 개념을 포함한다. 하나는 애니미즘(물활론)적 영의 개념으로, 인간이 의식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이 영의 작용이다. 저 화장장의 한 줌 재로 변하는 인간의 무엇으로, 죽어 육체를 떠나는 불멸의 영혼도 이와 관련되었다. 그리고 영혼에는 인간의 사고와 마음과 정신이라고 부르는 의미도 들어 있다. 어느 시인은 “늘 맑고 청아한 영혼으로 창작하는 언어에 몰두하게 하소서”라고 기원하였다. 또 어떤 작가는 “그 얼굴이 떠오르면 마음이 수련하게 맑아온다”고 얼굴을 보면 영혼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영혼은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다.

  과학에서 영혼에는 가치가 붙지 않는다. 중립이다. 그러나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이 영혼뿐만 아니라 사회적 맥락의 가치적 영혼도 다룬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영혼은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의 끓은 가마솥이다. 그곳에는 탐욕과 가식과 이기와 파괴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영혼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영혼은 말과 행동의 이성에 반영돼 있고 회의주의자의 비판적 사고로 평가가 가능하다. 마음 속 영혼의 창은 비판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회의주의 활동을 해 오며 우리의 과학 지성인 가운데 비판적 사고의 부족을 발견하고 놀란다. 영혼의 흠결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자신에 유리한 근거만을 제시하거나 한두 가지 근거로 일반화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발견한다. 정황적 논증이나 피장파장 오류도 흔하다. 그 중에는 어렴풋이 아는 근거로 조작하기도 하고 특히 이해집단 간의 다툼 가운데 인신공격이 비일비재하다. 어째서 이들은 과학 연구를 하는 방식대로 사실적 근거와 오류가 없는 추리의 논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지 못하는가.

  비판적 사고 기술과 비판적 사고 자질은 동일하지 않다. 비유하자면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논리학 교수는 비판적 사고를 잘 알 수는 있지만 반드시 자신의 사고에 비판적 사고를 적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논술을 배우고 성장한 세대에서 특별히 합리적 사고의 향상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 이성을 압도해서일 수도 있고 지식의 부족과 복합된 경우가 흔하다.
 
  어느 논리학 교수는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임상적 자료를 축적해 왔고 어느 면에서 서양 의학을 능가하는 차원이 다른 치료법이다”라고 하며 "서양 사람들이 서양 의학을 현대 과학의 총아인 것처럼 말하면서 동양 의학을 미신 취급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오만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고 적었다. 그는 ”수천 년 동안 임상적 자료를 축적해 왔다“는 것이 실제 안전한지 효과가 있는지와는 다르다는 점을 모르고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
 
  인신공격은 이기와 파괴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다. 인신공격은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의 개인적 자질 내지 특성을 공격하여 그 논증이 틀렸다고 논박하는 오류이다. 인신공격의 원인 중의 하나는 논증이나 논박 기술의 결핍을 들 수 있다. 논증이나 논박에는 제대로 근거를 발견하고 추리하는 능력 그리고 지식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논증 능력이 결핍된 사람은 상대방과 자신의 입장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가질 수 없다. 이때 자신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인신공격으로 나타난다.

  또한 인신공격은 사회학습과 관련된 면도 크다. 사회학습이란 TV에서 조폭의 행동을 정당화하여 폭력을 조장한다는 것과도 관련된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는 정치인의 인신공격 행위가 실질적으로 정치에 보상적 결과를 낳는다는 인식의 결과가 일부 인신공격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이는 1970,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이 낳은 부작용의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민주화라는 보상의 배후에 있는 온갖 부정적 행동을 사회학습한 결과가 인신비방 등 사회병리에 표출되어 있다.   

  인신공격 중에서 가장 악성인 형태가 상대방에 대한 조작을 동반할 경우이다.  필자는 어느 유명 교수의 대학원생과 유명 기업체의 연구원의 타인을 파괴하기 위한 습관적 조작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다. 조작이라고 했지만 기만과 자기기만의 경계가 애매하다. 그래서 이들의 소속 기관에 “연구는 과학적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적 자료를 얻어 올바르게 추리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연구이다. 그런데 조작 사고를 가진 학생이 연구를 제대로 했겠는지, 어떻게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가”하고 문제를 환기시켰지만 비단 과학 주변만이 아니라 사회의 병소 부위에는 유사한 문제가 많다.

  (의심스러운 신앙과 진정한 신앙) 필자는 몇 년 전 가톨릭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어느 가톨릭 신자와 그 주변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이들의 행동에는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느 정치인의 얼굴을 다리를 벌리고 찍은 배우 사진에 붙여 놓은 이상한 패러디를 여기 저기 날라 게시하는 것도 이상했다. 뿐만 아니라 “노인네들에게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며 “제발 이제 정신 멀쩡한 젊은이들에게 맡겨주세요. 정신 오락가락하는 당신들의 욕심 때문에 정말 이 나라에서 살기 너무 힘듭니다”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것을 ‘가톨릭다운 텅빈 마음’이라고 하고 ‘청년 예수’를 들먹이기도 한다.
 
  당시 이라크에서 피살된 선교사의 문제가 있던 때이다. 그 가톨릭 신자는 “개신교 선교가 예수님을 전하는 거라고요?”라고 하며 피살된 선교사가 어느 개신교 교회의 신자니 하며 ”개신교 선교는 개신교 교회 나와서 십일조 잘 바치라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인간의 영혼이 무엇인지 텅 비어 있는 듯 보였다. 인간의 영혼은 종교적 영혼이든 인간의 깊은 곳의 무엇이든 존엄하고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 모두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이들의 말 가운데는 “창세기라, 그 부분이 바로 신화라는 사실을 어디선가 들었겠군요”라는 것도 있고 개신교의 하나님 호칭이 틀렸다고 "원래 성경의 신은 엘로힘이고 이것은 복수형이죠. 그래서 하나님들이라고 하면 모를까“라는 것도 있었다. 필자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성경도 잘 모르지만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In the beginning God (Elohim)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에서 엘로힘이 복수 그대로라면 만일 이로부터 시작하는 창세기가 신화라면 기독교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아득해 지는 것을 느꼈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비판적 사고의 범위에서 신앙적 인간과 종교를 확인한다.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며 이보다 더 감동적인 사건은 없어 보인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을 알기 위한 세계의 연구’라는 치사에서 우주론 연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변화시킬 힘을 제공하는 과학과 비교하자면 ‘불필요한 과학’이지만 이 세계를 아는 것은 인간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최고의 필요성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주가 말하자면 어렵고 느리지만 마침내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는 거대한 말이라면, 이 말을 인간에게 말한 그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며 “천지의 창조자 하느님, 그의 사랑이 구세주 그리스도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하느님을 두려움과 즐거움을 갖고 다시 부른다”고 하였다.     

  (과학적 회의주의와 영혼)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영혼 그 자체도 다룬다. 비판적 사고는 어떤 영혼이라도 그것이 과학적 용어로 분명히 기술될 때 사실인지, 아닌지를 회의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과학은 현상에 대한 최선의 해석이지 진리가 아니며 오류 가운데 발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그런 면에서 회의주의자는 열린 마음으로 영혼을 대할 필요가 있다.
 
  초심리학자 찰스 타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과학은 항상 ‘자료를 보자’, ‘이것이 자료로 추리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으로서 최선의 추정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영적인 경험을 과학자라고 불리는 사람 앞에서 언급했을 때 ’그것은 불가능하다! 너 미친 게 틀림없다‘는 답을 듣는다. 나는 이 과학의 태도를 싫어한다. 사람의 실제 경험을 거절하는 것은 좋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을 가장한 오만함이다. 그것은 과학주의이다.”

  이론 물리학자 프레드 울프는 “양자 역학의 본질 속에서 물리적 우주의 영혼을 발견한다”고 믿는다. 그는 “얼마간 원주민과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보냈을 때 이들이 보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하며 과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완전히 바꾸었다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과학을 하나의 도구로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주의 본질도 궁극적인  것도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의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이다. 우리가 뇌뿐만 아니라 가슴과 정기를 사용할 때 과학은 새로운 세계의 질서에 적응을 시작할 것이다.”
 
  인간 영혼의 문제는 과학, 즉 비판적 사고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주제이다. 분명히 사실 여부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영혼의 문제는 믿음이다. 과학과 이성과는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과학적 논의 속의 영혼은 그 자체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며 판단은 각자가 내려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영혼은 어느 한 가지 견해가 아니라 다른 견해도 함께 나타내어 세계관의 형성을 돕고자 하였다.
         
 

                                            2007년 10월

                                            峴松齋에서
                                            저자 강건일
[이 게시물은 kopsa님에 의해 2007-12-22 09:22:18 책소개, 주문, 서평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