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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학/철학
   
  21세기 과학, 인간 위한 기술되어야
  글쓴이 : kopsa     날짜 : 01-06-21 14:51     조회 : 5291    
21세기 과학, 인간 위한 기술되어야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 학보(경상대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2001년 6월 4
일에 나왔습니다. 본래 제목은 '무엇이 21세기의 과학과 기술이어야 할까'
로 하였는데, 신문에는 '21세기 과학, 인간 위한 기술되어야'로 되었습니다.

이 주제는 경상대신문에서 그 동안 시리즈로 다뤘다고 합니다. 큰 제목은
'21세기 리더, 신과학 기술'입니다. 첫 번은 '다가오는 과학기술의 르네상
스', 두 번째는 '21세기 신기술, 신과학 기술'이었고 이번 강박사의 글이 세
번째 마지막입니다. 21세기의 신과학 기술을 나노기술과 감성공학에 맞춘다고
하여 이렇게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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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 인간 위한 기술되어야 

과학이 있기 전 인간은 마술과 신의 힘을 빌려 운명과 자연의 가혹함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던 것이 16세기로 들어올 즈음 신플라톤 사상의 유
입과 더불어  영국의 작가 브로노스키의 표현대로  자연에 반대되게 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본 흑마술에서 자연의 마술을 찾는 백마술이 시작됐다. 
과학은 우주, 자연, 생명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리기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적 방법이라는 독특한 절차, 즉 객관적인 관찰과 관찰 자료의 일반화
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이 시작됨으로써 그 바탕에 있는 객관성, 인과론, 예측성, 합리성 등에
대한 신뢰는 차츰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는 사회로 변모시켰다. 또한 과학
은 탐구의 결과 알아낸  자연의 운영 원리를 기술로서 활용하여 식량, 에
너지, 보건 등 인간 삶의 향상에 기여했다. 이러한 과학이 없었다면, 미국
의 노벨상 수상자 레더만의 말대로 대다수의 인간이 굶주림과 조기의 사망
에 처한 가운데 승려나 왕이 통풍이 잘 되는 궁전, 사원, 그리고 영지에 거
처했을 것이다.

일면 과학은 부와 권력을 창출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게 됐다. 과학적 탐구의 독립성은 이상론
일뿐 과학은 연구비를 제공하는 국가와 기업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이
들의 경제적 목적에 부응한 결과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환경 파
괴를 가져왔다. 또한 잡다한 경이롭게 보이는 과학의 산물에 가려져 과학
정신은 교육에서도 소외되고 잊혀졌다.     

이러한 현상적 과학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홍보된 것이 뉴에이지 신과학이
다. 이들은 과학의 환원론에서 탈피한 전일론을 말하며, 과학의 객관성이
아니라 정신적 주관성을 되살려야 한다며 신과학을 주장한다. 이렇게 하여
인간과 자연을 한 몸으로 이해하고 진선미의 가치를 지닌 새로운 인간상,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자신의 신과학 전망을 설득
하기 위해 우주 만물에 퍼져 있다고 믿는 기(氣)와 정신적 초능력의 존재
가능성 등을 내세우며 이것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신과학이 되
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이들이 이상으로 그리는 신과학의 전일론적 세계는 과학이 있기 전
마술의 세계를 빼 닮았으며 초능력의 과학은 의사(擬似)과학일 뿐이다. 그
럼에도 현재의 과학 문명에 회의와 한계를 느낀 이들에게 신과학의 프로파
간다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우리의 경우 초능력 연구를 지원한다는
정신과학진흥육성법안까지 발의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뉴에이지 신과
학이 한풀 꺾인 지금 대중 매체에는 마찬가지 21세기의 신과학이라는 이름
의 나노기술과 감성공학이 광고되고 있다. 

물론 나노기술과 감성공학은 뉴에이지 신과학과는 다르다. 이들은 실제 과
학이며 더욱이 나노기술은 신소재 개발과 고속 컴퓨팅 등에 새로운 전망을
가진 기술이다. 그럼에도 나노기술에 미국의 나노미래학자 드렉슬러의 어
셈블러가 빠짐없이 광고되는 현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나노봇은
원료로 원자를 사용하여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고 자가복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으로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하며 그런 세상을 나
노토피아라고도 부른다.     

나노봇은 물리법칙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스몰리가
이를 유치한 불가능한 환상물이라고 하였듯이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더욱이 나노봇이 새로운 인공 생명체나 공포물을 연상시킴으로써 나노기술
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고 우려하는 학자들도 있다. 나노봇이 가능하다면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 캐나다의 철학자 펠프스는 나노 과학의 진정한 위
협은 고의적인 남용이라고 하며 인간 멸종을 경고하였다.

인간이 느끼는 복잡한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분야라는 감성공학도
마찬가지다. 감성공학의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는 인간 친화적인 기술이라는
구호이다. 인간의 기분을 읽어 적절한 음악을 들려주는 오디오, 장미를 보
는 장면에 나오는 장미향,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로봇 완구 등이 진정으
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줄 것인가? 더욱이 인간의 마음을 읽는 기
계가 목표라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감성공학 시대의 인간은 기계의 종속물
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애매한 프로파간다뿐 실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정
의되지도 않은 채  나노와 감성이라는 우산 아래 모여드는 학자들을 염려
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국가적으로 떠들썩하던 우리의 유
전공학을 회상하면,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유전공학 수준을 가늠
해 본다면 프로파간다란 불필요하며 허무하다. 나노기술과 감성공학이 국
가적 산업경쟁력을 위한 것이라면 그저 그 방향으로 권장하고 연구에 매진
하면 된다.

새삼 21세기의 과학과 기술이 무엇이어야 할지 생각해 본다. 한 마디로 인
간을 위한,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
는 지구 인구가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의 고통에서 헤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이어야 한다. 더불어 환경 친화적인 기술이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정신을
되살려 그 합리성으로서 사회적 불평등, 탐욕, 무지를 깨우쳐 주고 해소할
때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강건일 박사(전 숙명여대 교수.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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