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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쿤, 패러다임, 상대론
  글쓴이 : kopsa     날짜 : 00-10-14 19:10     조회 : 8348    
토머스 쿤, 패러다임, 상대론

얼마전 영국 워익 대학의 풀러(Steve Fuller) 교수가 지은 "토머스 쿤: 우
리 시대를 위한 철학 역사'(Thomas Kuhn: A Philosophical History for
Our Times)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풀러 교수는 본래 미국인이나 현재
영국 대학 교수로 있습니다. . 

1. 토머스 쿤의 성공이유

풀러 책에 대한 서평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컨'(2000년 9월)에 나왔는데 이
소식은 CSICOP 메일로도 받았습니다. 서평의 제목에는 "스티브 풀러가 쿤
의 아이디어가 전혀 혁명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라는 소제목이 발견됩
니다. 또한 같은 책의 서평을 '뉴욕 타임스'(2000년 5월 28일)에서도 발견했
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역사학 교수 홀링거(David Hollinger)가
서평을 썼습니다. 제목은 "토머스 쿤은 진지한 학자인가 또는 지적으로 시
시한 사람인가?"입니다.

이 제목들을 보아 풀러 교수가 토머스 쿤에 대해 예사스럽지 않게 평했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홀링거 교수의 서평에서 간단히 보면
풀러가 "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단지 그리 총명하지 못
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어째서 쿤이 성공
했는지 말한 대목에서 발견합니다. 

쿤의 성공이유 중 하나는 "애매성"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얼
마든지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
실상 쿤의 영향은 지식인조차도 시시한 사람과 지적 거인을 구별할 수 없
는 따분한 시대를 반영할 뿐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쿤의 성공 이유는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 주는 많은 "좋
은 아이디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쿤은 구체적인 관심사를 효과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그의 이 능력이 분석에서의 결함을 보완시켰다고
합니다. 따라서 바보가 아니고는 누구라도 그 책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얻
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앞의 글은 풀러 책을 읽고 쓴 것도 아니며 서평을 전부 소개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토머스 쿤 책의 성공이유라고 적혀 있는 것이 흥미롭게 생
각해서 소개했습니다. 단지 결론만을 말입니다. 다만 서평에 있지만 이런
쿤에 대한 비평은 이미 학문적으로 많이 제기돼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곳에 풀러의 책 서평을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째서 CSICOP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컨'의 서평을 skeptics에게 알렸을까요? 그것은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론이 사실은 반(反)과학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이곳 홈페이지 여러 곳에 게시돼 있지만 신과학/철학(99/11/21, 패
러다임론적 인식론 문제, 전통의학과 이집트 과학), 의사과학/해결책
(99/11/27, 두문화와 과학, 반과학갈등)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 쿤의 패러다임론(1)

쿤의 패러다임론의 문제, 특히 상대론에 관해 살피기 위해 쿤의 이론을 다
시 소개해야겠지요. 예전에 "신과학은 없다"에 이렇게 썼습니다. "쿤은 과
학을 퍼즐 풀기로 보았다. 특수한 퍼즐을 푸는 데 적용하는 규칙은 패러다
임 안에 포함되어 있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자들이 어떤 종류의 퍼즐을 풀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는지 그리고 그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에 관한
것이다....쿤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자들은 개개의 패러다임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서 실제의 본질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낼뿐인 것이다."

이것은 패러다임론 비판의 핵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쿤이 의미하는 바가
과학적 방법이니, 객관적 진리니 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이곳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쿤의 기성 과학론에 대한 도전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토손 대학 철학 및  종교학과의 스케일스
(Stephen Scales) 박사의 글 그리고 홀링거 교수의 서평 등 몇 개 문헌을
보고 쉬운 표현을 찾아 구성했습니다.

첫 번째로 쿤은 과학발전이 "축적적 과정"이라는 데 도전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과학은 과학자들이 생명, 자연, 우주에 대한 지식을 점차 축적하여 발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사실, 이론, 방법과 같은 것이 점차
축적되어 과학이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런데 쿤은 그것이
아니라 과학발전이란 "정상과학, 혁명과학, 그리고 새로운 정상과학"이 교
대로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때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란 그 때의 패러다임(paradigm)에 의해
인도되는 과학입니다. 그러다가 이 패러다임에 맞출 수 없는 많이 사실들
이 나타나면 혁명과학(revolutionary science) 기간이 됩니다. 이 기간 중에
과학계는 어떤 패러다임이 적절할지 여러 대체 패러다임들을 놓고 다투게
됩니다. 결국 좀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뒤에 좀더 설명합니다) 패
러다임이 선택되어 다시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들어갑니다. 쿤은 이것을 과
학혁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쿤이 보는 과학발전이란 자연의 본질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한다든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목표를 향한 발전이 아니라  그저 과학자들이 자연
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좀 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
며 이 질문 자체가 가변적이므로 사실상 과학발전은 연속적일 수 없습니
다. 쿤의 이런 견해는 어떤 글을 보니 다윈의 진화론과 비유됩니다. 과학발
전이 무작위적인 방향이 없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쿤에 대해 "과학
발전이 정말로 이랬느냐?"하고 비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실 철학자와 역사학자는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주요 개념조차 애매하
다고 말합니다. 정상과학, 혁명과학, 새로운 정상과학 순서의 그의 모델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물론 쿤은 사례를 들어 이런 모델을 만들었으
나 실제 이 모델에 맞지 않는 생물학과 물리학의 중요한 혁명도 있기 때문
입니다. 아래 설명할 쿤의 메커니즘과 복합적인 비평입니다. 그래서 그의
패러다임론은 "그것이 촉진한 '상대론(relativism)'에 관한 대화에서 사례적
역할 이상을 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3. 쿤의 패러다임론(2)

강박사는 쿤의 패러다임 모델 사례를 분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공학자
도 아니며 또 비평을 포함해서 전부 분석하여 파악하려고 욕심을 낸다면
이것 하나만 갖고도 몇 년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앞의 쿤의 패러
다임론을 집밖에서 사진찍어 소개한 내용으로 패러다임론에 학술적인 문제
가 있음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물론 쿤은 실제 과학의 집안에서 우리가 그 동안 보아 온 것하고는 다른
일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모델의 구조 내지 메커니즘이겠지요. 
이제 집안의 일을 좀 말하면, 과학자가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은 관찰하
여 사실(fact)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이때 우리는 "객관적으로" 관찰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사전에 마음에 품은 생각"(pre-conceived idea)이 없이 관
찰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쿤은 "축적적 발전"에 이어 두 번째로 기성과학의 이러한 입장에
도전하여 "이론 중립적 관찰"이란 없으며 "사실은 이론적 틀(theoretical
framework) 내에서 관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를 들어 산소의 발
견을 놓고 "무엇인가 있다"와 "그것이 무엇인지"가 모두  함께 인정될 때
그것이 사실의 발견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론적 틀"에 의해 결정되
며 지배적 이론적 틀과 배치될 때 그 틀이 이를 수용하도록 변경되지 않는
한 발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이론적 틀의 세계,  즉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간다
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는지 모르나, 학자들은 그의 "사전에 마음에 품은
생각"의 초점 맞추기 효과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입견이 아닌
이상 지금 과학자들도 "기존 아이디어"로 초점을 맞추지만 "열린 마
음"(open mind)으로 기존 아이디어에 의문을 품고 여러 질문을 던지지 않
습니까? 이렇게 해서 산소의 발견 등 새로운 발견이 이뤄진 것이 아닐까
요?

앞서와 관련된 것이나 쿤은 세 번째로 기성과학의 "의미의 불변성"에 대해
도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러 이론들을 어떤 주어진 사실을 갖고 비교
합니다. 서로 다른 이론들이 같은 사실을 말하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습니
다. 그러나 쿤에 의하면 사실의 발견이란 개념적 틀의 변화, 즉 의미의 변
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론들을 이렇게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
다.

이것이 바로 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뉴턴의 것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인 것이다"라는 것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재의 과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비교, 평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서로 패러다임이 다를 뿐, 뉴턴의 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
리학의 "잘못됐음을 수정했다"(또는 파괴했다)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쿤은 예를 들어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봅니
다. 서로 개념 틀이 다르다고 이유를 답니다. 그런데 실제는 지구가 중심에
있는 것일까요? 사실상 쿤의 이런 추리는 근본이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
다"라든가 과학이 "자연의 진리에 좀 더 가깝게 가려고 한다"와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물론 쿤은 "옳은 과학적 방법"과 같은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쿤의
마지막 네 번째  기성과학에 대한 도전입니다. 쿤은 과학적 방법 또한 "이
론 의존적"이라고 합니다. 이미 여러 번 말한 대로 쿤은 어떤 퍼즐을, 어떤
방법으로 풀지 모든 것이 패러다임내에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른 패러다임으로 들어가면 이들이 다 바뀌는 셈이지요.
 
4. 합리성과 방법론적 상대론

쿤은 어떻게 하여 이론이 구별되어 채택된다고 본 것일까요? 그는  어떤
과학이론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대안적 견해의 경쟁 가운데 "이론
적 가치(theoretical value)"에 의해 새로운 이론이 채택된다고 합니다. 이
이론적 가치란 해석력, 예측력, 단순성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쿤에 의하면
이론-비의존적으로 이론의 내적 우수성에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이론적
가치"라는 것도 사실은 한 패러다임에만 적용되는 선택 수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올바른 하나의 과학적 방법이 없다"거나 "진리로 이끌어 줄 정해
진 이론적 가치들이 없다"는 것을 "과학적 방법론적 상대론"이라고 부릅니
다. 상대론(relativism)은 어떤 가치가 절대적이 아니라 조건에 의존적으로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객관적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지요.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도 합
리성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사실상 패러다임에 따라 여러 다른 진리가 있
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상대적인 것
이지요. 이러한 쿤의 사상은 포스트모던 사상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분명 쿤의 패러다임론을  해석하면 이렇지만 쿤 자신은 후에 자신의 견해
가 "상대론적이고 비합리적이다"라는 것을 부인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상
대론자라는 표지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1971년 논문에서 "나
는 과학이 내적으로 비합리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주 상이한 환경이지만 후에 나온 이론은 분명 처음 것보
다 더 훌륭하다"라고 하며 이러한 견해는 절대 "상대론자의 입장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쿤의 이런 입장이 실제는 그가 상대론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
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 이전의 것보다 훌륭한 과학이론이란 퍼즐
푸는 능력의 우수성만으로 말해서는 안되며 "실제 자연이 무엇인지 더 잘
나타내 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발전을 좀 더 자
연의 진리에 접근한다고 보지 않습니까? 이런 면에서 쿤은 단지 자신이
"상대론자가 아니다"라고 거절했지 그의 "상대론자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
아 있습니다. 다른 상대론자들은 "어째서 쿤이 애써 거절하려고 하느냐?"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