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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비과학적 의학
 
  현대의학에 대한 오해
  글쓴이 : kopsa     날짜 : 99-10-21 15:09     조회 : 4374    
이 글은 <약업신문(1995년 7월 20일)>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박성래 교수는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존경받는 과학 사학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민족과학론, 특히
한의학에 대한 견해는 현대의학에 대한 오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한 글입니다.)

현대의학에 대한 오해
<박성래 교수의 '21세기 한의학'을 읽고>
 
  최근 한국 한의학연구소 주최의 심포지엄에서 외대 박성래 교수의 '21세기 한의학'이 주제로 발표되었다. 필자는 한약의 경험적 효과를 인정하기보다는 과학성이 입증될 때까지 유보되어야 하며, 결국 과학 전 의약인 한약은 현대의약으로 귀착될 것이라는 관점을 가져왔다.  또한 한약분쟁과 관련하여 이해조정의 사회적, 정치적 해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약의 과학성 시각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가져왔고 이에 관하여 최근 대한화학회의 '화학세계' 6월 호에 기고하였다. 
  일관되게 의약의 과학성을 주장해온 필자로서 박 교수의 글은 무언가 다른 지평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여 전문 (11 페이지)을 입수하여 읽어보았다. 이 글은 조예 깊은 사학자인 박 교수의 21세기 한의학의 전망을 소개하며 일면 의약을 전공한 과학자로, 오해되고 있는 과학을 옹호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1. 한국 한의학의 위상

  박성래 교수는 한국인의 전통 지향적 성향이 한국의 한의학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위상에 올려놓았다고 보았다.  한국인의 전통적 사고, 일본 식민지 시대의 억압에 대한 반사작용, 근대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보존된 전통적인 것이 그 이유로 분석되었다. 또한 핵무기, 환경위기 등의 과학문명에 대한 불신이 '새 희망의 대상'으로 전통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고 한 예로, 신과학 운동과
같은 지적 경향이 한의학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원인으로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높아진 의료수요를 한의학이 적절히 수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중 과학문명의 불신적 측면에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는 분석은 고찰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현대과학의 국소 분리적 사고가 아닌 시스템적 사고를 지향하는 신과학운동 경향이 한의학적 사고와 일견 유사하나 실제 한국 대중에게 한의학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현대의약에 싫증을 느낀 단순한 반과학적 분위기가 원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맥스 페루츠는 '과학은 필요한가?'라는 책에서 과학 문명의 불신에서 오는 반과학적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하였다.  그는 과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였으며 굶주림과 질병에서 인간을 구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현실을 탈피하여, 존재하지 않는 자연 속의 이상향을 동경하는 현대인은 잘못된 건강식, 생약, 낭만적인 옷차림, 화려한 옛 가구 속에서 반과학적 향수를 만끽하려 한다고 분석하였다. 한국인들이 한의학에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러한 전통적 신화에 도취하려는 경향과 관계가 깊다고 본다. 
  필자는 한국의 한의학이 중국도 따를 수 없는 사회적 위상을 차지한 원인은 차라리 다른 곳에 있지 않을 가 생각한다.  한의학과의 설립증가에 따른 한의사의 적극적 활동, 언론매체의 호의적인 보도, 전통 출판물의 가속화된 증가와 더불어 생활 수준에 비해 낮은 대중과학 인식이 좋은 토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의약에 지식이 없는 언론과 사회 지도층이 조성한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2. 한의학의 문제

  박성래 교수는 의료수요가 현재와 같이 증가되는 추세가 줄어들면 한의사 사이의 경쟁이 과열화되어 한의학의 사회적 위치를 끌어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또한 환경 및 자연보호의 경향과 관련하여 천연약재의 공급이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이며 특히 한의학의 위상이 향상될 수록 변형된 한의학이 출현하여 미신화 되는 경향이 문제될 것임을 지적하였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내린 이러한 자명한 분석은 실제 필자가 한의학의 문제로 파악한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 의약의 성립과정, 서양의 과학 전 경험적 처방이 소멸되고 과학적 방법에 의한 효능성과 안전성 균형 판단을 기초로 한 현대약이 성립된 과정을 이해한다면 과연 한약이 현대 과학 시대에 존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3. 한국 한의학의 과제

  박성래 교수는 현대의학이 인체를 부분적으로, 기계적으로 보며 그 치료에 있어서 부분치료의, 미세요법적인 것이므로 한의학의 전통, 다시 말하여 인체와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장점을 살려 나름대로의 체계를 만들어야 됨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한의학을 과학화하여 양의학화하기 보다는 무엇인가 다른 방법으로 체계화를 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다. 앞의 논의와 일부 관련 있는 것으로 과학사적인 접근으로 한국의 한의학 전통을 정리할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필자는 한의학이 현대의약에 비하여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인체와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는 차별 점의 정체가 무엇일지 알지 못한다.  우선 5장6부, 그 안에 담겨있는 기.혈.진액 그리고 혼.의.신.백.정.지의 개념을 그런 것이라고 예로 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인이 이해한 정도의 인체에 대한 지식을 뿐 전체적 판단을 내릴 합리적 체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진단체계의 점에서 음양. 한열. 허실. 표리를 전체적 인간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직접 개개 환자를 오래 접하여 그 외적 상태를 관찰하고 맥을 집고, 물어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과학적 진단이 출현하기 전의 가능한 방법이지 그 자체 인간의 전체에 대한 진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현대 진단의 속성인 기계진단으로의 전환이 타성적 의료관행과 중첩되어 인간의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유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은 환자의 정신,심리를 고려한 상담의 비중을 높인 가정의 제도, 전문 카운슬링으로 보완하려는 것이 현대의료의 경향이다. 
  한약 처방이 인간 전체를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흔히 한약의 복합처방의 의미를 해석할 때 현대 의약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몸 전체를 고려한 처방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호르몬, 면역, 독성 등과 관련된 예시는 과학적 해석이 가능한 일부 예가 있을 것이나, 한약의 효과를 설명하려는 기도일 뿐 몸 전체를 고려한 처방이라는 설명은 근거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의학은 병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그 해의 일기와 그 사람이 있던 장소와 그 사람에 대하여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며 이것에 의하여 약 처방이 결정된다는 것을 병든 사람을 전체적으로 파악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일기와 장소가 병의 파악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고대인의 지혜이지 현대인에게 적용될 것은 아닐 것이다.
     
4. 세계를 주도할 한국의 한의학

  박성래 교수는 물론 한의학의 사회적, 심리학적 연구가 필요한 과제임을 말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한국 의료체제 속의 한의학의 위상정립, 협력과도 관계 있는 것이다. 그는  21세기에 세계를 주도할 한국의 한의학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당부하였다. 아무리 현대의약이 발전하여도 한의학이 공헌할 고유의 분야가 있을 것이며 이를 주도할 한의학은 한국에서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박 교수는 일관되게 현대의학이 인체를 기계와 같이 보아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인체 전체로서의 조화를 찾는 고유분야에서 한의학이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론을 예시하며 '인체는 정말 기계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냐?' 고 강하게 반문하였다. 필자는 이 반문에서 근대 과학의 탄생 기에 과학자들이 교회로부터 받았던 박해를 상기하였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교회는 '인간이 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니 말이 되느냐' 하고 소리쳤다. 신학자들은 '다윈은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고 몸서리치며 부르짖었다.
  윌리엄 하비의 위대한 업적은 혈액 순환을 발견하여 물리학적인 해석을 내린 데 있다. 화학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19세기 생기론의 부인은 생명체의 과정을 시험관내의 화학과정으로 재현시킬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이때 '인체는 화학공장이란 말이냐'고 처절하게 외칠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인체의 기능을 화학적 원리로 해석하여 현대 생화학, 생리학, 유전학의 위대한 업적을 창출한 발판이 된 것이다. 
  한의학의 강점으로 제시되는 인체의 총체적인 파악은 분명히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도 될 것이다.  과학은 이제 육체적 기능에 관하여 일부를 파악하였을 뿐이며 아직 정신적 영역은 황무지로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고대인이 이해한 그런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을 수단으로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인체와 인간의 참 모습에 접근하리라 보는 것이다.  '인체는 기계가 아니다' 라는 명제가 한의학의 발전가능성으로 연결되는 논리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며,  조만간 한의학의 원리로 새로운 치료법이 탄생할 것이라는 한의학 반경의 기대에도 같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결국 한약은 소멸될 운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