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토론

‘녹십자와 혈우환자 리뷰’ 약은 환자를 위해 만드는 것   글쓴이 : kopsa     날짜 : 11-03-18 21:10     조회 : 4113     ‘녹십자와 혈우환자 리뷰’ 약은 환자를 위해 만드는 것 아래 글을 최근에 참.과학에서 발간한 <한국 제약의 지평 녹십자와 혈우환자 리뷰>에서 뽑아 게시합니다. ‘제15장 제약기업과 기업인’의 첫 부분입니다.    1. 약은 환자를 위해 만드는 것    1990년대만 해도 세계 제1의 제약기업은 국내에 MSD(Merck Sharp & Dohme)로 알려진 미국의 Merck이었다.  그 기업체의 1998년 매출이 150억 달러이다. 당시 한국의 가장 큰 동아제약의 연간 매출이 박카스 등을 모두 합쳐 2-3억 달러였다. 또한 세계 유수 제약 기업체는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기 때문에 당시 한국 전체 제약회사 R&D 비용(0.8억 달러 정도)은 어림잡아 Merck  한 개 회사의 5%이었다. 그 후 국제 제약기업계는 거대한 인수합병이 이루어져 덩치를 키우지 않은 Merck는  2008년 세계 순위 8위에 머물렀지만 260억 달러라는 매출액만 보아도 그 규모를 알 수 있다.1) 2009년도 한국 제약 기업의 매출액은 동아제약이 7-8억 달러, 그 뒤를 이어 녹십자와 유한양행 그리고 한미약품이 5-6억 달러 정도이다.      (1) Merck는 ‘Intercontinental Marketing Services(IMS) Health 2008’의 ’Top 15 Global Corporations'에 매출액 260억 달러로 세계 8위의 기업으로 올라 있다. Merck의 세계 순위는 보고서에 따라 ‘Contract Pharma’의 ‘2009 Top 20 Pharmaceutical Companies Report'에는 2008년도 매출액 260억 달러, 세계 6위로, ‘Pharm Exec 50’에는 2009년도 처방약 매출 250억 달러로 세계 7위로 기록되었다.  1990년대 이야기이다. 1996년 12월 31일자 국내 신문에 MSD의 기업광고가 실렸다. 창업자인 George Merck의 사진과 함께 "약은 환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지 이익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커다란 활자가 들어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7년 연속 가장 존경받는 기업, 11년 연속 여성이 가장 일하기 좋은 10대 기업에 들었다는 문구가 있었다. Merck는 1881년 George Merck에 의해 뉴욕에 설립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계 사업인 독일의 E. Merck를 경영한 Wilhelm Merck이다. 16세부터 전통적인 사업 수련을 쌓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던 중 미국으로 파견되어 이 회사를 세운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의 Merck를 창업한 사람은 광고에 사진이 나온 George Merck임에 틀림없으나 기업체를 키운 사람은 그의 아들인 George W. Merck이다. George W. Merck는 미국에서 태어나 1915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10년 뒤에는 Merck의 사장이 되었다. 그는 1927년, 1953년 두 차례 기업합병을 이루어 완전한 제약회사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두 번째 Sharp & Dohme과의 합병에 의해 MSD가 탄생했으며 소위 Merck 그룹의 핵심은 MSD이다. 국내에도 MSD의 자회사가 진출해 있다. 바로 이 Geroge W. Merck가 "우리는 약이 환자를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익은 자연히 따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명심하는 한 이익은 반드시 나타납니다"는 말을 남겼다. 필자는 당시 약 역사를 정리하며 한국의 자회사 직원들이 모 회사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들은 George W. Merck가 이 말을 하였음을 분명히 하지 않았으며 그의 ‘약은 이익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는 의미를 정확히 나타내지 않았다. 병을 앓는 자식을 치료하려는 부모의 심정에서 약을 만든다고 하자. 그곳에 거짓이 있을 수가 없다. 정성을 다한 최선의 노력이 있다. 이 노력이란 과학성, 즉 과학적 안전성, 유효성을 달성하려는 노력이다. 이렇게 약을 만든다면 자연히 이익이 따르게 된다. 환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약은 팔릴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제약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고 말한 George W. Merck의 경영철학이야 말로 단순한 것 같지만, 우리는 이 진리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지금은 Merck의 제약 풍토도 변했을 것이며, 그런 사례도 보이지만 창업자들의 철학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업이 되었을 것이다. 2002년 9월 언론에는 “미궁에 빠졌던 혈우병 청소년들의 에이즈 집단감염 사건이 거의 10년이 지나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로 시작되는 기사가 실렸다.  그 집단 감염이 당시 생산된 국산 혈우병 치료제의 원료에 에이즈 감염자가 매혈한 피가 섞여 들어간 것이 원인임을 찾아냈다는 것인데 보도 내용의 진실은 좀 더 연구 결과가 나온 지금도 녹십자와 충돌하고 있다. 이보다 필자는 이러한 혐의를 받게 된 녹십자의 제약 행위에 어디에 문제가 있었을지 궁금하였다. 제약은 원료의 확보에서부터 최종 제품까지 그리고 환자에게 제공되기까지 기업 종사자의 역동적인 행위의 흐름 속에서 이뤄진다. 오랜 세월 전 실험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 원료 분석 담당자는 모든 약의 원료를 책임지었다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열심히 실험대에서 시약과 싸우고는 보고서에 각종 분석치를 넣고는 합격, 불합격을 선언한다. 그곳에는 과학적 엄밀성이 있다. 원료의 유효성분 함량이 98%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97%가 나오면 불합격을 선언하고 그 원료는 반품된다. 도대체 녹십자에서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혈액원에서 매혈자에 대해 1회 채혈 규정량인 500cc보다 60cc가 더 많은 560cc의 피를 몰래 뽑거나 ‘72시간 내 재매혈 금지’ 규정을 어기고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곁가지처럼 보이는 기사도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제약기업 구성원의 과학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500cc 성분혈장 채취, 72시간 내 재채취 금지는 과학적 규정이다. 원료의 유효성분 함량을 98% 이상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이들 규정은 과학적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혈장을 500cc 보다 많이 채취하거나 72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채취한다면 매혈자의 건강에 문제를 초래한다. 98% 이상으로 규정된 성분 함량을 97%인데 합격시킨다면 경시 변화까지 고려한 최종 제품에는 약 성분이 부족하여 그 약을 사용하는 환자에게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제약은 여타 과학 기술과는 달리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활동이다. 그 구성원이 기본적인 과학에 대한 이해와 안전 인식을 가졌다면 혈액원의 이런 관습이 방치되었을 리가 없다. 이들도 세계적으로 1980년대를 휩쓸고 지나간 에이즈의 공포와 수많은 혈우환자의 에이즈 감염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원료에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이 섞일 가능성을 끝까지 하나의 가능성까지 염려해야 한다. 그 방안은 제약기업의 구성원이라면 기본적인 과학지식만 있어도 누구나 책상에 앉아 적어낼 수 있다. 남성 동성 간의 성적 접촉이나 문란한 성생활 등 위험인자를 나열한 방을 커다랗게 내걸어  혈액원 방문을 피하도록 해야 한다. 반복하여 혈액원을 찾는 매혈자의 평소 건강과 다른 점이 있는지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라도 림프절이 부어 있는지 등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에는 혈액 검사 단계이다. 이때 채취한 혈장을 검사하는 시약의 한계, 즉 위음성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민감도와 특이도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시약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하다. 또한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여 검사에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윈도기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채취한 혈장을 가능한대로 두어 달 쯤이라도 보관하여 어느 때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타나면 그 이전의 보관한 혈장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로 들어가는 시점에 어째서 녹십자가 이런 안전 개념을 갖지 못했는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소송에 시달려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