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토론

KOPSA 정보, '이성과 마음' 토론 참고 등   글쓴이 : kopsa     날짜 : 01-01-05 11:54     조회 : 3600             KOPSA 정보, '이성과 마음' 토론 참고 등 두가지 알려 드립니다. *SBS  점술 프로그램 2001년 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박두선 PD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점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술인을 등장시켜 "빌어먹 을 팔자다"라는 식의 점이 맞는지, 틀리는지 판정하는 프로그램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넘 효과 등을 문의하는 것으로 보아 과학적인 접근 을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이성과 마음에 대해 이곳 '회원 정보/토론'에서 '이성과 마음'에 관해 토론하자고 했으나 글을 올리는 회원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 때나 올리셔도 됩니다. 또한 게시 판이 회원에게 공개돼 있으니, 무엇이든지 올리시면 됩니다.        다만 '이성과 마음' 주제에 대해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래 무슨 출 판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이봉재 교수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Academy of Philosophy Bimonthly (아카필로)가 정기 간행물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들어본 적이 없으나 내용이 "과학사상"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과학의 진화를 말했군요. 객관성, 이성, 합리성 등의 과학적 세계관만으로 는 안되니 주관성의 가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논리입니다. 이곳에 서는 주관성을 사회규범으로 표현했군요. 조선일보의 류근일 칼럼에서는 마음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가이아 철학과 관련한 글에도 유사한 색채가 들어 있습니다. 개개 글의 관점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한가지로 비판할 수는 없지만 이 들의 과학공격 논리가 옳은지가 핵심사항입니다. 다음에 이들의 소위 대안 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속한 것인지, 대안 대로라면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이런 유형의 글은 어떻게 전개했건 반과학, 반모던 철학으로 향하고 있습 니다. 강박사가 이런 식 철학에 대한 비판을 쓴 것이 "신과학 바로알기"입 니다. 이곳 게시판의 글 중에서 "의사과학 /해결책"의 홀턴, 레더만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아카필로의 이봉재 교수의 글        이봉재│서울산업대학교 인문학과 교수, 과학철학 가치라는 주관성에 대한 사실이라는 객관성의 우위 내지는 우월성 ? 우리의 상황은 그 이분법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상황의 원점 적어도 사상의 영역에서는 과학이 권위이며 영광이었던 시대가 지나간 듯 하다. 핵무기, 환경오염, 생명의 기술과학적 조작 등 20세기 말 인류가 직 면하고 있는 가장 두려운 위험들이 모두 과학의 탓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과학이 대변했던 객관적 진리의 이념 또한 관념적 폭력에 불과할지 모른다 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의심도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과학의 세기가 끝났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을 액면 그 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우리 시대는 분명 과학의 산물들로 혜택받고 있으며, 과학의 정신으로 진보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넘어섰다. 그것은 이미 우 리 삶, 우리 문명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21세기 문명이 과학 없이 존속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컴퓨터가 마비되 면 우리 도시의 모든 기술적 하부구조가 붕괴되어 극심한 혼란이 초래된다 는 그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 없이는, 끔찍한 사고 정도가 아니 라, 현 단계의 지구 문명이 아예 유지될 수 없다. 20세기 초 지구 인구는 16억 정도였다. 지금 지구 인구는 60억을 넘어선다. 그리고 지금의 60억은 금세기 초의 16억보다 평균적으로 더 잘 먹고, 더 많이 누리고, 더 오래 산 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 단언하건대 그것은 과학 그리고 기술의 힘 때문이다. 전기를 발견해 내고, 농업 혁명을 이루었으며, 질병을 퇴치해 낸 20세기 과학이 아니고서는 현재의 인류가 이런 수준의 삶을 누린다는 것은 가능할 수 없다. 과학은 분명 20세기의 지구 문명을 있게 한 것이며, 사실 상 21세기 문명 또한 지배할 것이다. 21세기 문명을 의료공학, 컴퓨터 공 학, 우주과학과 무관히 상상할 수 있을까? 분명 19세기 이래 문명을 구성 하는 최고의 동력은 과학 그리고 기술로부터 제공되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갑자기 혼란에 빠진다. 삶의 현실은 과학의 혜택 속에 깊 이 뿌리박고 있는 반면, 우리의 정신은 과학을 의심하고 불신한다는 모순 적인 태도를 만나게 된다. 도대체 이 사태의 진상은 무엇인가? 혜택의 현 실이 미망인가, 부정의 관념이 과민한 곡해인가? 이 문제야말로 21세기 과 학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문명의 근거를 부정하는 기묘한 자학(自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학. 그것은 중대한 감정이다. 자학으로 찌든 정신이 결국 그 육체마저 파 괴하듯, 그것은 결코 심리적 혼란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필연코 현실의 대응물을 산출해 낸다. 그렇다면 우리 문명에 대한 자학으로부터 어떤 현 실이 귀결될까? 과학 문명의 비인격성, 과도한 객관주의를 정화해 낸 더욱 세련된 지성의 문명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독단과 폭력의 침울한 시 대도 똑같이 가능하며, 이 모든 것들에 대해 판단 중지하는 향락과 무의미 의 시대도 열릴 수 있다. 우리 미래의 모든 전망이 과학 문명의 해석이라 는 철학적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의 새로운 무능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 복락의 생산인 동시에 위험의 근거이기도 하다 는 생각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분명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능력 없이 우리의 안락함과 위험이 지금의 형태로 나타날 수는 없다. 전기, 플라스틱, 자동차, 비료, 살충제 등 모든 과학기술의 성취들은 우리에게 물 질적 복락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현단계 위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름하 여 과학기술의 양면성(ambivalence) 테제―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선 (善)을 만들어 주는 동시에 악(惡)을 그 이면에 내장시킨다는 사실은 과학 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의 지속적인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제만 으로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는 과학의 무능이라는 더욱 위태롭고 난해한 문제를 만나고 있다.   흔해빠진 무능, 비난할 수 없는 과학의 무능이 있다. 과학은 언제나 가설적 이며 임시적인 답변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항상 제대로 답변할 수 없는 문제/위험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런 의미의 무능이야 결함이라기보 다는 오히려 장점에 속하는 것이다. 과학 지식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경 험으로부터 귀납된 것인 이상 그러한 단점은 피해 갈 수 없는 것이고, 오 히려 언제나 여지 없이 단호하며, 모든 것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척했던 독 단적 지식으로부터 진보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문 제삼는 무능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이 맞서야 할 문제/위험의 변모된 형태, 그리고 더욱 정교해진 지식의 반대급부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하여 우리는 자못 새로운 과학의 무능을 목도하고 있다.   과학이 점차 무능해지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위험이 고도로 복잡한 것이 되 어 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위험은 이전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과학시 대 이전 위험이란 천재지변이나 건축물의 붕괴 같은 것이 주종을 이루었 다. 그러한 위험들은 일반적으로 명백한 물리적 실체로서 존재하며, 특정한 시공간 내에서 발생한다는 성격을 갖는다. 그것을 그리고 그 시공간을 피 하기만 하면 모면할 수 있는 위험들이다. 오늘날의 위험들은 그런 특성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특정한 시공간에 한정되지 않으며, 명백한 물리 적 실체로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위험은 시베리아 벌판도 손쉽게 건너뛰며, 10년, 20년 심지어는 몇 세대를 넘어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의 원인이 아 니라, 이곳저곳의 사건들이 2차, 3차적 효과를 통해 예상치도 않았던 곳에 서 위험을 생성/증폭시킨다. 몇 개의 사례를 보자.   20세기 인류가 가장 두려워했던 방사능 오염은 현대적 위험의 특별한 시공 간 차원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방사능의 위험은 바람과 물을 통해 신속히 지구 전체를 덮을 수 있으며, 몇십 년에서 몇만 년에 이르는 방사능 물질 의 반감기가 말해 주듯 위험이 실제로 발생하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뿌린 위험의 씨앗이 몇 세대를 격하여 악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다. 방사능은 분명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시공간 차원을 갖는 위험이다.   오늘날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염화불화탄소 CFCs(제품명 프레온 가스)는 20세기 초 대단히 무해하고 유용한 물질로 개발된 것이었 다. 그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다른 물질들과 화학적으로 반응치 않으며, 쉽 게 파괴되지 않는다는 성질을 가졌으며, 압력의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액 체나 기체로 변화할 수 있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염화불화탄소는 대단히 안전성이 높고 비용효율도 탁월한 물질로 여겨졌다. 지상에서 파괴되지 않 는 염화불화탄소가 대기권의 상층부에 축적되어 오존층을 파괴하리라는 것 은 당대의 지식과 관측 능력에 의해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먼 곳, 먼 훗날의 일이었다.   이렇듯 위험이 특정한 시공간, 특정한 인과 관계를 벗어날 때, 그것을 이론 적으로 이해하고 확인/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새로운 위험들은 인과 관 계에 있어서 ‘1대 1’이 아니라 ‘1대 多’의 관계로 전개되며, 정태적이 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황변수를 포함하는 것이고, 그 반응과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잠재적이고 비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남으로써, 그것을 파악하려는 정신에게는 참으로 난해한 문젯거리가 된다.1)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욱 중대한 사실은 과학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한 지식이 되기 위해서 과학은 주제 영역을 한정해야 한다. 분명한 선 형적 인과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인과의 항목을 극히 단순한 것으로 축 소해 가야 한다. 담배와 건강이 아니라 타르와 폐암, 니코틴과 신경계통 등 으로 주제를 한정시켜야 한다. 그런즉 담배의 해악과 관련하여 우리가 접 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은 부분적이고 세분화된 주제들로 찢겨진, 엄밀하지 만 파편적인 것들이다. 총괄적으로 담배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 는가에 대해서 과학은 말하려 하지 않는다.   지식은 파편화될 뿐 아니라, 아니 파편화됨으로써 서로 상충하는 가설들로 가득 차게 된다. 어떤 실험조건 아래서 효과적인 치료제로 알려진 것이 다 른 실험조건에서는 유해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극도로 조건화된 진술들로 이뤄진 현대 과학은 상충하는 가설들을 동시에 확증해 줄 수 있다. 그리하 여 우리는 명백한 모순 관계는 아닐지라도 서로 보완적이지도 않으며 오히 려 상이한 그리고 양립 불가능한 가설들이 공존한다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 게 된다. 점차 심화되는 과학의 분화, 세밀화에 의해, 조건적이며 파편화된 세부적 지식들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식의 발전으로부터 위험에 대처하는 지식의 능 력이 증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히려 반비례적으로 저하된다 고 말할 수 있다. 과학이 엄밀해지고 조건적이며 파편화된 가설적 지식으 로 완성되어 감에 따라 점차 복잡해지고 있는 위험은 더욱 판정되기 어려 우며, 그로 인해 오히려 보호받게 된다는 역설을 주목해야 한다. 과학자들 이 신중히 위험에 대한 판단을 재고하고 보류함으로써 또는 신중히 위험의 한계를 설정해 줌으로써 위험은 더욱 증식되곤 한다.   조금 부연해 보자. 아직 엄밀한 연관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을 경우 엄밀한 과학자들은 위험을 승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판단의 의미 는 보류 및 예의 주시가 아니라 위험의 존재 부정으로 해독되기 십상이다. 위험의 확률 또는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 위험에 대한 필요한 대응책이 취해지지 않으며, 그 결과 위험은 방해받지 않고 커가기 때문이다. 현대 과 학의 엄격한 이론적, 방법론적 평가 기준이 오히려 우리 삶에 대한 위협을 승인하고 강화시킨다. 과학이 위험의 한계를 정해 주는 경우도 다르지 않 다. 허용 한계 내의 것들은 유해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며, 그리하여 어떠 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허용 한계의 수치가 특정한 가설적 지식에 의해 설정된 것일 뿐이며, 우리의 실제적 삶 에서 어떤 최종적 효과를 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과학의 무능이다. 무능으로부터의 위기다. 위험은 인과적, 시공간적 으로 더욱 복잡한 것으로 변형되고 있으며, 보다 통합적인 지식에 의해서 만 겨우 대처 가능한 문제를 앞에 놓고 지식은 자꾸 분지(分枝)되고 있을 뿐이다. 두 갈래로 넓게 벌어지는 위기의 협곡 사이에서 우리 삶의 안전은 무방비로 찢겨져 나간다.2) *적대 없는 비판 그러나 이 사태는 더 깊이 읽혀져야 한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과학으 로부터 위험이 산출되며, 그것에 대처해야 할 과학은 무력해지고 있다는 사실―그것은 물론 위태롭고도 중대한 사태다. 그러나 이 사태의 의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시 한번 유념해야 할 것은 모든 위험/무능이 과 학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위험은 과학을 무력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발전의 동인이었다. 과학기술이 생산한 실수 와 실책은 또 다른 과학이 개발되어야 할 이유였으며, 사실상 새로 개발된 과학에 의해 성공적(?)으로 대처되어 왔다. 처리할 수 있는 한, (또는 처리 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한) 실수와 위험은 과학과 기술을 확장/발전시키게 하는 지적, 사회적 동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의 시대, 과학의 무능은 시간적인 것이었다. 하나의 시공간 안에서 해석/처리될 수 있으며,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것.   그러나 오늘날의 위험은 그와 다르다. 위험이 너무 커졌으며 복잡해졌고, 과학이 본성상 효율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외면하는 방식으 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능에 대한, 전혀 달라진 자세 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다음 시기의 과학이 문제를 훨씬 잘 대처 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위험의 달라진 성격에 의하여 전통적 의미에서의 과학적 증명은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으며, 그러니 과학기술이 하는 일이라 고는 현재의 문제를 미래의 더 심각한 문제, 마지막 문제로 번안해 주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시간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는 무 능―복합 위험의 시대, 과학의 무능은 시간 초월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 두려움의 은밀하면서도 명백한 근원이다. 오늘날 우 리의 과학 비판이 그토록 집요하고도 절실한 이유이다. 그것은 정당하고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의심은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가? 흔히 들려오듯 과학을 적대해야 할 것인가? 과학을 버리고 다시금 예지나 기원(祈願), 아 니면 원시의 그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들 길이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 고 단정치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회귀는 과학이라는 성취에 대한 중대한 몰이해이기 쉽다. 과학이 수학으로 범벅된 이론이나 기술적 생산품에 불과 하지 않음을 간과하고 있다. 과학은 지식, 기술이기 이전에 하나의 태도이 자 정신이다. 그것은 우리 문명이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대한 가치 중의 하나이다.   근대 과학의 실험적 방법은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와 연관되어 있다. 추상 화와 직관, 상식의 정련되지 않은 경험들은 사물들 자체의 역학을 꿰뚫어 보기에 충분한 도구가 못 된다. 거기에는 언제나 주관적 욕망이나 몽상, 단 순화가 투사되기 십상이다. 물질 속에 모호하게 숨어 있는 자연종(自然種) 의 본질을 그런 눈으로 파악해 낼 수는 없다. 그것들의 특유한 본성을 알 아내기 위해서 이성은 우회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이성은 자연의 질 서에 대해 추측해야 한다. 이러이러한 것들이 존재하고 서로 작용하리라고 짐작해 봐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들이 작용하는 현상적 결과를 추론하며, 그 추론된 것을 실제 자연의 현상과 견주어 봐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추측이 자연과 실제로 비교될 수 있는 형식의 물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학적인 성격의, 이해 가능한 질서를 가설로서 제시하고, 그런 다 음 그것이 실제 세계의 근사치가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근대 과학, 실험과학의 방법론이다. 그것은 세계의 실체에 직접 도달할 수 없는 인간 지성의 불가피한 방법처럼 보인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와 지식의 개념에 근접해 간다.   그렇다면 진리와 지식은 왜 중요한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통념과 달리, 과 학이 우리의 욕망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오 히려 욕망을 거스른다. 우리의 원망을 적나라한 실제 세계 앞에 마주 세운 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는 세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계 를 우리에게 부각시킨다. 그런 방식으로 과학은 실재와 우리를 연결하는 본질적인 유대로서 작용하며, 그로부터 우리는 특별한 지식 형태를 갖게 된다. 허구와 구분되는 사실의 개념, 마술이나 기술, 형이상학과도 완전히 구분되는 지식의 개념. 과학이 세계를 보는 전혀 새로운 방식/자세라는 사 실―17세기 서구가 발명해 낸 과학이란 개념이 단순한 물질 조작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 단위를 상징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것은 세계를 보는 특별한 방식, 지극히 가치 있는 근대적 방식이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적대 없는 비판이다. 과학을 포기하거나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화 시켜야 한다.3) *과학적 합리성의 위기 그렇다면 과학은 어떻게 진화되어야 하는가? 위험에 있어서 과학의 판단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였다. 경험적 지식의 본 성상 그러하며, 위험의 새로운 복합성에 의하여 그러하다. 그러나 현실은 임시적으로나마 ‘완전한’ 판단을 요구하며, 따라서 이 불완전함은 어떻 게든 메워져야만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비과학적 판단, 규범적 판단에 의해서 메워질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위험들이 인지되기 위하여 그리고 어떤 처방을 얻기 위하여 과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동시에, 그것의 고유한 특성에 의하여 과학 지식이 위험을 확정적으로 인지할 수 없으며, 확정적인 처방도 내릴 수 없다는 상충 때문이다. 위험의 인지와 처방이 수 학이나 실험에 의해 완료될 수 없음으로 해서, 우리는 조만간 이 위험, 이 처방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의사결정해야 한다. 말하자면 사태를 어떤 식으 로 객관화할지라도 조만간 수용의 문제가 생겨나며, 거기서 규범적 물음들 이 뭉텅이로 개입된다. 우리는 이 위험을 감당할 용의가 있는가? 왜 감당 해야 하는가?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보존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등.   요점인즉 대부분의 생태 문제에 있어서 과학적 결정이란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적 판단은 위험의 수용이라는 문제 앞에서 규범적 판 단과 분리 불가능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험 앞에서 과학자들이 아무리 엄밀히 측정하고 묻고 추정한다 해도, 그들의 작업은 조만간 건강, 경제적 이해 관계, 책임, 사법적 권한을 간섭/침해하는 것이 된다. 대기 중 이산화황을 어떤 수준으로 허용해도 괜찮다는 과학적 결정은 즉시 우리의 삶의 질과 권리에 대한 규범적 결정이 된다.   여기서 과학의 진화가 회피할 수 없는 문제 한 가지가 드러난다. 분지(分 枝)된 지식들의 종합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실적 지식과 규범적 판단의 종합에 의해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 이때 규범적 판단을 언어의 수준에서 분별되는 가치 판단 같은 것으로 추상화해서는 안 된다. 현실 속에서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희망, 가치, 두려움에 대한 판단 또는 그것들의 총계를 의미한다. 과학자들이 제공하는 불완전한 정보들 위에서 자신들의 삶을 위해 마지막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회적 이성의 총체를 의 미한다. 그런 뜻에서 복합 위험의 시대는 과학과 규범의 관계, 나아가서는 규범적 판단의 합의를 주조해 낼 정치와의 관계 또한 새롭게 설정할 것을 요구한다. 과학과 규범, 정치가 함께 요동하는 이 지점에서 생태 위기라는 문제의 넓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논란 많았던 문제의 가장 심각한 국면이 여기에 있 다. 과학적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세계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지식제도의 자부심/권위를 의미한다.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덕목의 권세에 의해 과학은 모든 사회적 결정의 윗자 리에 있을 수 있었다. 모든 사회적 결정의 객관적 기초를 제공하며, 모든 사회적 결정을 무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그 권위의 지반에는 가치와 사실의 엄격한 구분이 놓여 있다. 가치라는 주관성에 대한, 사실이라는 객 관성의 우위 내지는 우월성―우리의 상황은 그 이분법을 넘어설 것을 요구 한다.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의 강고한 논리적 거리는 부정되지 않는다. 변 화된 위험의 성격이 그 깊은 간격을 일순간에 메워 버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새로운 위험의 형태 앞에서 과학적인 것과 규범－정치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가치－사회적인 것의 구분이 모두 논란거리가 된다. ※ 이봉재 교수의 〈과학과 철학〉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1) 오늘날 위험이 어떤 형태를 취하며, 우리 문명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포괄적으로 그리고 통찰력 있게 설명한다. 지금의 주제와 연관지어 정독할 가치가 있다：U. Beck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홍성태 옮김. 1997 새물결/ 원제 Risikogesellschaft：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ne. 1986) 2) 과학 지식의 발전이 역으로 어떤 무능함을 조장 내지는 강화한다는 명 제와 관련하여 다음을 참조하시오：이봉재 〈위험과 무능：생태 위기와 과 학적 합리성의 문제〉 《과학과 철학》 11집. (통나무, 2000) 3) 과학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변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이봉재 〈지식으로서의 과학：기술과학테제에 대한 반론〉 《철학연구》 49집 (철학연구회 2000 여름호) -------------------- copyright ⓒ2000 All rights reserved by SANHAE. (110-775)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8 수운회관 711호 Tel. (02)738-2202 Fax. (02)739-1317 ....................................................................................................................   [이 게시물은 kopsa님에 의해 2007-12-08 23:32:50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