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토론

장풍에관하여(조선일보 기자수첩에서 퍼옴)   글쓴이 : ortho     날짜 : 01-07-23 16:29     조회 : 4143     장풍(掌風)은 가능한가?  “曺고수, 당신도 장풍 날릴줄 알아?” “웬, 장풍?” “아, 영화에 보면 고수들이 장풍을 휙휙 날리잖아. 진짜로 장풍이 있는거냐구?” “당신, 기자 맞아? 장풍이 어디 있어. 그거 다 가짜야” “TV에서 보니까 손바닥으로 촛불도 꺼고 하던데...” “????!!!!!” 얼마전 동료기자와 가졌던 대화입니다. 세상사를 냉철하게 바라본다는 기자가 장풍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정말 할말이 없더군요. 그것도 사진부 기자가 말이죠. 어릴 때부터 무협지나 무협영화의 과장된 무술이나 신비주의 무술(오컬트 무술)에 여과없이 노출된 탓이라고 봐야겠죠. 제 동료뿐만 아니라 무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과연 장풍이 가능한가’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겁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을 일으키는 장풍은 없다. 그러나 오장육부를 망가뜨리게 하는 장풍은 있다’ 입니다. * 바람을 일으키는 장풍(掌風)은 없다! 손바닥에서 바람을 쏜다는 것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몸 안의 기(氣)를 한곳으로 모아 손바닥으로 방출하여 멀리 떨어진 사물을 명중시켜 망가뜨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동방불패’같은 무협영화에서 무림고수들이 장풍으로 적을 쓰러뜨리고 나무를 부러뜨리는 장면을 연상하면 되죠.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경천동지할 장면을 실제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문제는 TV에도 이런 ‘도사’들이 가끔 등장한다는 겁니다. 근엄한 표정의 ‘도사’들은 장풍으로 촛불을 끈다거나 손바닥의 기로 몇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장면을 TV 카메라 앞에서 연출합니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죠. “산속에서 도인을 만나 비법을 전수받았다!” 방송국은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중계하구요. 제가 보기에는 모두가 엉터리입니다. 장풍으로 촛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손바람 혹은 소맷바람으로 촛불을 끄는 거죠. 여러분도 촛불을 앞에 놓고 장을 빠르게 찔러 보세요. 팔의 움직임으로 공기에 진동이 생겨 촛불이 흔들거리거나 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촛불과 장의 거리가 가까워야 하죠. 어느 절의 무술을 한다는 스님이 장풍으로 촛불을 끈다고 큰소리를 치다가 실제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으니 수많은 촛불 중 하나도 못끄고 끙끙대던 애처로운 장면이 기억나는군요. 손바닥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고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앞에 사람들을 눈감겨 세워놓고 손바닥의 기로 좌우앞뒤로 맘먹은대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인데, 구태여 손바닥을 움직이지 않아도 눈감고 서있으면 사람은 중심감각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게 됩니다.  앞에 선 ‘도사’는 손바닥을 그냥 따라서 흔들어 주면 되는 거죠. 손을 뺨에다 갖다댔다가 떼면서 기를 보내 앞에 놓인 담배개피를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가 아니라 단순한 손바람 장난이죠. 저도 방금 실험해봤는데 되더군요. 이런 엉터리 장면을 보내주는 방송국도 분명 문제는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방송에 나오면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진짜 도사가 있다면 산속에서 구름타고 놀 일이지 뭣하러 탁한 속세에 내려와 ‘바보상자’에서 놀겠습니까. 방송 뿐만아니라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도 몇해전 중국 조선족 기(氣) 초능력자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 스튜디오에 불러서 기자들 앞에서 직접 시범도 보였죠. 손바닥의 기로 장미 봉오리를 어루만져 장미꽃을 피우게 한 모습을 보고 다들 놀라워 했는데, 저도 나중에 해보니까 되더라구요. 그냥 손바닥으로 비벼주니까 닫힌 꽃봉오리가 강제적으로 열리는 단순한 원리였습니다. 그것을 초능력으로 둔갑시켜 ‘장사’하는 사람들에 신문이나 방송이 깜빡 넘어간거죠.      * 오장육부를 망가뜨리는 장풍! 무협지가 아닌 무술에서 보면 장풍의 풍(風)은 바람이 아니고 힘(力)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원래 풍에는 힘이라는 뜻도 있죠. 즉 장풍은 손바람이 아니고 장의 힘(掌力)이 되는 거죠. 장은 무술의 수법(手法)중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고요. 그럼 겉은 멀쩡한데 속의 오장육부를 망가뜨리는 장풍은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물론 아무렇게나 장으로 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발경(發勁)을 제대로 해야 됩니다. 발경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간단히 얘기하자면 허리힘을 실어 쭉 밀듯이 장을 날리는 겁니다. 끊어 치는 것이 아니고 밀어서 쳐야 하는게 요점입니다. 민다고 해서 반드시 멀리 치는 것은 아니고 짧게 치더라도 허리힘을 실으면 됩니다. 즉 장을 찌를 때는 팔의 힘만으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돌리면서 온몸의 힘을 팔에 전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장을 쭉 뻗는거죠. 그러면 내 몸안의 모든 힘이 손바닥을 통해 상대방에게로 전달됩니다. 아니 관통한다고 해야겠죠. 그러면 겉은 멀쩡한 것 같은데 몸안의 오장육부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내상을 입는 거죠. 올바른 수련을 오래 하여 내공이 심오할수록 위력도 커지고요. 옆에서 보기에는 슬쩍 치는 것 같은데도 맞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정도로 타격이 큽니다. 자동차 사고를 예로 들어볼까요. 차에 치인 사람은 골병이 든다고 하죠. 사고 당시에는 외상도 없고 멀쩡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름시름 앓고 맥을 못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동차는 사람을 치면서 제자리에 딱 멈추는 것이 아니고,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사람을 치고 얼마 정도 지나가게 됩니다. 이 지나가는 힘, 즉 관통력에 의해 사람의 몸안이 커다란 충격파를 받게 되는 거죠. 장풍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어치는 것보다 밀어치면 훨씬 위력이 큽니다. 제 동문 중에 한명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습니다. 두명이 서로 약속대련을 했는데, 한명이 잘못 막는 바람에 복부에 장을 맞고 말았습니다. 비장이 있는 곳이었죠. 당시에는 그냥 아픈 정도로 그쳤는데, 그 이후 1년 넘게 비장이 안좋아서 아주 고생했습니다. 고수가 주먹을 찌르고 장을 날리면 바람이 인다고 합니다. 옆에서 보면 정말 써늘할 정도죠. 그렇다고 진짜 바람을 날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 까지나 주먹이나 장이 상대방의 몸에 닿아야 힘의 전달이 됩니다. 그래도 장풍을 쏠 수 있다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장풍으로 나를 넘어뜨려 보시오. 나는 장으로 당신을 가격하여 오장육부를 골병들게 해보겠소.” * 아래는 장을 칠 때 손의 모양과 각 부위의 명칭.       [이 게시물은 kopsa님에 의해 2007-12-08 22:23:47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