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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기 교수의 두 가지 모습, 이런 사람을 주의해야
  글쓴이 : kopsa     날짜 : 07-05-31 13:23     조회 : 3412    
2008년 3월 19일 확인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에 이형기의 문제는 "흐릿한 사고의 선동행패인물"이라는 제목으로 분석게시했습니다(아래 링크). 그는 수사적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인물입니다. 현란하기조차 합니다. 그의 문제를 간단히 공명심과 자기과장, 지식과 논리의 결핍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http://www.kopsa.or.kr/gnu4/bbs/board.php?bo_table=DebateMethod&wr_id=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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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교수의 두 가지 모습, 이런 사람을 주의해야

아래 브릭에서 발견한 이형기 교수의 두 가지 모습을 그의 글 그대로 첨부합니다. 이미 파악한 문제이지만 이런 사람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발견한 브릭의 문제는 가장 최근에도 관련 기자, 브릭 센터 부소장, 관리자에게 메일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판단되면 이 문제를 과학재단 등에 제기하려고 합니다. 이때에는 센터 책임 교수 경고, 관리자 경질을 건의하려고 합니다. 다음 “회원 정보토론”에 게시한 브릭 문제 요약입니다.

"브릭은 그 내용이 학술적으로 정확한가, 그리고 토론이 비판적 사고로 이뤄지고 있는가의 두 가지 점에서 평가가 가능합니다. 설혹 잘못된 점이 있다고 해도 그 역기능을 순기능이 상쇄하면 문제가 없고 전체적으로 순기능이 역기능을 압도해야 제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제대로 쓰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브릭은 거꾸로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곳에서 확인한 결론입니다. 학술적으로 정확성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토론은 기초적인 비판적 사고의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집단 폭력 경향까지 보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위 브릭 서클이라고 부른 핵심 집단을 해체하고 제대로 관리 기능이 작동해야 하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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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의 모습 1
이형기  (2007-05-23 02:27:19)
한 번 이렇게 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스피릿님
 
스피릿님(강건일 박사님)께,

안녕하세요? 일련의 논쟁을 지켜 보았습니다. 적어도 스피릿님께서 옳다고 믿으시는 원칙, 특정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 등을 주위 분들에게 열정적으로 '전파'하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인정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제 생각에 동의할 것으로 믿습니다.

아울러, 몇 가지 측면에서 의사소통의 방법을 약간 변경하시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 싶은 게 발견됐습니다. 그래서, 과히 탓하지 않으시면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의견이므로 동의 또는 수용 여부는 스피릿님께 달려 있음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첫째, 어떤 것을 쟁점으로 보시는지 명확하게 지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스피릿님의 글쓰기 방식에서 제가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거두절미' 또는 '선언' 식 언명을 빈번히 차용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브릭과 브릭 서클과 지적 정신적 성숙'의 문제점을 언급하시면서 "이 글을 게시하는 이유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 (거두절미) 또는 "내가 이렇게 가르쳐 주었는데 말입니다" (선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사소통 방법은 논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리둥절하게 다가오기 쉽습니다.

아울러, 선언식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연역적이라 어쩔 수 없이 특정 관점 또는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연역적 글쓰기는 스피릿님께서 그렇게 강조해 오시던 '무선입견' 또는 '모든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 관찰'에 근거한 귀납적 접근만이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주장과 상치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데카르트 식의 환원론에 근거한 기계론적 귀납주의가 유일무이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둘째, 질문이나 해명 요청을 받으시면 특정 사안에 집중해 답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멀티 아이디 사용에 관한 질의에서 스피릿님께서는 "논리공부에서 너구리가 무슨 논리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맞추어 보십시오"로 응대하시고 두 분의 대화를 장황하게 나열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랬다'는 식의 분명한 해명 또는 설명입니다. 물론, 스피릿님의 답변 방식이 매우 창의적 또는 문학적이라는 점은 인정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셋째, 온라인 커뮤니티의 운영 방식에 대한 관점의 차이입니다. 스피릿님께서는 "지적 성숙도에서 떨어진 사람이 포함된 브릭 서클이 브릭 소리마당의 주도 세력"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는 ‘개방적’ 또는 ‘합의적’ 전문성이라는 제어 메카니즘이 존재하고, 대부분 이 메카니즘은 효율적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라도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지식의 왜곡이나 오류가 발견되면 바로 해당 분야의 ‘차상위’ 전문가가 문제를 제기하고 갑론을박을 벌임으로써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요.

이 경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반드시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어야 하거나 지적 성숙도가 '최고'의 경지에 달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피릿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비록 지적 성숙도가 떨어진 사람이 소리마당을 주도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분야에는 항상 이들의 문제를 지적할 준비가 돼 있는, 지적 성숙도가 떨어지는 또 다른 차상위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 잠언에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는 경구가 있습니다. 스리핏님께서는 소리마당에 드나드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연배, 연륜, 경험, 통찰 등에서 훨씬 상위에 계신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후학들이 앞서서 형성해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든든한 후견자 역할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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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모습 2             
이형기  (2007-05-26 11:28:23)
소리마당 해제
 
놀라지 마십시오. 소리마당 ‘해체(解體)’가 아니라, ‘해제(解題)’입니다. 최근 며칠 동안 소리마당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해프닝을 보면서, 또 일부 사례에서는 직접 참여하기도 하면서 떠올랐던 몇 가지 생각을 풀어(解) 설명(題)하려고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해가 상충하는 여러 집단이 경쟁적 위치에 있는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 즉 의사결정의 역동적 메카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흔히 ‘정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는 우월적 지위나 영향력을 ‘정치적’ 힘이라고 부르지요.

동시에, 정치에는 ‘의제선정(agenda-setting)’ 기능도 있습니다. Bachrach과 Baratz에 따르면, 의사결정 이외에도 의제선정이 권력의 중요한 속성이라는군요. (The two faces of power.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56: 947–52, 1962). 요컨대, 사회적으로 보다 많은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는 ‘쟁점’을 선택해 각종 담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 정치라는 뜻이겠지요. 따라서, 자신이 논의의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의제가 다른 의제보다 중요하다고 소리를 높이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의제선정의 힘겨루기’라는 정치적 행위에 참여한 것입니다. 

소리마당 역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제시하고, 상호 의견 교환을 통해 담론을 형성해 갑니다. 결국, 참여하는 사람들의 정치 욕구 --- 의제선정에서 우월적 지위 확보 --- 를 만족시켜 주는 것은 소리마당이 제공하는 부차적 기능 중 하나입니다. 비록 우리 사회에서 ‘정치’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함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기능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의견 교환은 대개 ‘규범적 토론’의 형태를 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유, 해학, 풍자, 비아냥이 자주 등장하는 일탈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적당히 사용하면 이 방법은 뻑뻑한 토론 현장을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이들은 ‘잡음대비신호비(signal-to-noise ratio)’를 높여 줌으로써, 해당 의제가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에너지를 제공하는 선기능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잡음대비신호비를 높이기 위해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논점 일탈 또는 회피, 지리한 반복, stigmatization을 이용해 실체가 없는 부(副)집단 구별 (예: 브릭 써클), 화자 비난, 화자의 직역 비난 등이 새로 선을 보인 방법입니다. 더 나아가 외부 고발과 주요 구성원의 탈퇴 요구에 이어, 결국은 브릭 해체 요구라는 초강수도 나왔습니다. 일련의 해프닝을 통해, 이것은 잡음대비신호비를 극대화해 자신이 주장하는 의제를 주요 담론으로 만드는 데에는 최고의 방법임이 증명됐습니다. 물론, 이 경우 담론은 ‘분란’과 거의 동의어였습니다만…

얼핏 보기에 하책(下策) 중의 하책일 것 같은 이러한 방법이 브릭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먹혀 든다는 사실은 새롭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 보면, 단순히 이 방법 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의 반론과 초점이 어긋나도록 계속 논제를 바꾸는 후안(厚顔)과 무신경이 쌍끌이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애시당초, 위에 열거한 방법을 사용해 논란을 주도한 분은 ‘움직이는 표적(moving target)’이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논리와 토론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소리마당의 논자들이 가장 취약한 상대는 우월한 논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처럼 끊임없이 논제의 표현형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앞에서 정치의 기능 중에 ‘의제선정’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정작 대중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중심 담론으로 만들려는 의제 뒤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경험한 해프닝의 정점에 있던 분도 의도를 감추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몇 가지 짐작이 가는 것이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논리가 기능하는 경우는 구성원 모두가 ‘규범적 토론’의 규칙을 준수할 때입니다. 물론, 약간의 일탈은 허용됩니다. 하지만, 의제선정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별무소용입니다. 이 때는 경찰을 불러야 합니다. 물론, 소리마당에는 police line이 미리 설치돼 있지만 항상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쪼록 이 해프닝을 통해 소리마당의 면역 기능이 크게 강화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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