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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찬홍 철학교수 관련(18)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
  글쓴이 : kopsa     날짜 : 02-08-19 22:57     조회 : 4700    
민찬홍 철학교수 관련(18)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 

아래 2002년 3월 12일 "회원 정보/토론"에 게시했던  "인터넷 홈페이지의
스폰서, 꽃마을 한방병원을 보고 생각난 일"을 옮기며 구체적으로 민찬홍
교수의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한 두 가지 근거 글을 분석합니다. 전
문 아래 첨부했습니다. 

민교수는 처음 "한의학과 과학"(1999/11/01)을 "저는 의학이 과학이 아니라
고 생각합니다"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의학이란...치료를 목표로 하는
실천입니다. 의학은 진리의 발견보다는 환자의 치료를 목표로 삼는 거지요.
따라서 의학 자체는 과학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민교수 말속의 의학은 무엇이며 진리는 무엇일까요? 과학은 무엇일까요?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저 생각되는 것이, 과학적 진리라면 현재 생물학, 화
학, 물리학, 천문학 등만이 진리의 추구이며 과학일까요? 고대건, 현대건
어떤 소위 민교수가 진리의 추구라고 하는 과학도 진리의 추구와 실천적
의도 내지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닐까요? 의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민 교수는 계속하여 "의학은 가능한한 과학적이고자 하지만 인체에 대해서
과학이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철두철미 과학적일 수는 없는, 그러한
실천입니다"라고 강조하는데 진정으로 의학만이 모르는 것이 많을까요? 그
가 실천을 강조하는 곳에서, 모르는 것이 많지만(아직 과학은 아니지만) 실
제 실천이 가능한 무엇을 의학이라고 말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여 그는 의학은 실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이 한의
학은 과학이 아니지만 실천을 만족시킨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논리입니다. 그는 한의학의 유용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의학을 포함한 뉴에이지
의 거짓 치료법을 말하는 부류의 전형적인 논리입니다.

"저는 한의학이 수천년에 걸쳐서 임상적인 결과들을 토대로 축적된 인체와
약초에 대한 방대한 자료에 토대하고 있는 (서양 의학과는 또 다른) 하나
의 치료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
에 대해서, 우선 그것이 서구인들의 문화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한의학은 수천년 동안 임상적 자료들을 축적해 왔고 이것은
어떤 면에서 서양 의학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치료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교수는 이 글의 반응을 의식해서인지 다시 "의학, 과학, 한의
학"(1999/11/04)을 적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제가 의학이 과학이 아니라
고 말했던 것은 그 목표하는 바가 다르다는 뜻이었습니다. 과학은 진리의
추구이지만 의학은 환자의 치료가 목표니까 이건 아예 목표가 다른 활동이
다 말이죠"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적당히 이렇게 얼버무립니다. 

"그렇게 과학을 이해하면 예컨대 건축학도 과학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
같네요.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제가 과학을 너무 좁게 이해한 게 될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통하는 '과학'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의학은 과학
적일 뿐 아니라 하나의 과학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과학"이 무엇일까요? 그의 머릿속
과학의 정의, 진리의 추구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일까요? 그는 어째서 "과
학적 방법에 의한 것이 과학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을까요? 엄밀하고 명쾌
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그는 이번 글에서도 다음과 같이 한의학을 합리
화합니다. 그의 글쓰기가, 철학과 논리학 지식이, 프로파간다 유형을 위해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서양 의학을 현대 과학의 총아인 것처럼 말하면서 동양 의
학을 미신 취급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오만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있습니
다. ...한의학은 방대한 임상 자료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기에 한
의학의 상당부분, 특히 한약의 약리학이랄까 하는 부분은 서양 과학의 도
구를 이용하면 그 약효가 입증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최근 그가 적고 있는 "한겨레신문 철학산책"(2002.04.14)에서 유사한 색채
를 발견합니다. 아래 첨부한 "합리적 절차 검증 없이 결과만 주장함은 부
당"이라는 글에서 그의 철학이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봉사하고 있음을 발견
합니다. 그의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의학에 대한 무지에서 나
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민교수의 전부는 아닐터이지만, 강박사의 눈에 미친 민교수는 "꽃
마을 한방 병원을 보고 생각난 일"에 아래와 같이 적은 대로 "믿음 자체를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는데" 철학을 도구로 이용하는 그릇된 부류로 보입니
다. 그가 철학문화니, 비판적 사고니 하며 실제는 입철학한다는 것을 처음
부터 발견했는데, 우리 젊은(?) 철학자의 이런 모습에 안타까움과 실망을
느낍니다.

"우리는 과학 교수이면서도 과학인지, 비과학인지 비판적으로 평가할 능력
이 부족한 사람을 많이 봅니다. 철학 교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
엇을 믿을지 믿지 못할지 신뢰성 있는 증거에 기초하여 오류가 없는 논리
적 추리에 의해 결정하는 능력, 즉 비판적 사고 능력은 지식과는 다른 차
원의 것입니다. 대부분 문제는 믿음 자체를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는 것이지
만 비판적 사고를 아는 사람의 눈에 거짓됨은 어렵지 않게 드러납니다."

 ........................
2002/03/12 23:01:24
성명: kopsa, 조회: 81, 줄수: 75
인터넷 홈페이지의 스폰서, 꽃마을 한방병원을 보고 생각난 일 

KOPSA도 홈페이지 유지와 활동에 드는 경비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Skeptics 단체는 대체로 회원의 회비, 뉴스레터와 출판
물 판매, 그리고 독지가의 기부로 경비를 충당합니다. CSICOP는 독지가의
기부와 자체 사업(간행물 출판)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활동을 합니다.
KOPSA에서 참.과학 출판사를 만든 것도, 좋은 책을 내고 동시에 활동 경
비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Skeptics 단체의 홈페이지에 상업적 스폰서 광고를 넣지 않는 이유는, 활동
목적이 상업적 부분을 포함한 의사(擬似)과학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에 객
관적인 비판에 영향을 미칠 인자를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흥미 있는 것
은 Rationalist International입니다. 이 단체 뉴스레터 메일링에는 Yahoo!와
함께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가 실립니다. 그러나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거시적인 사회와 사상을 다루는 성격상, 광고
스폰서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민찬홍 철학교수 관련 시리즈로 소개한 철학문화에는 스폰서가 있습니다.
철학관련 출판사도 있고 "명경의료재단 꽃마을 한방병원"도 스폰서입니다.
이번에 이곳에서 한겨레신문의 불임 한방치료 기사와 관련하여 비판을 한
것이 꽃마을 한방병원 관련 내용입니다. 이 병원의 원장이 우리 나라 여성
제1호 한의학 박사라는 강명자 원장입니다.

명경의료재단 이사장이 서울대 철학교수로 나와 있는데, 철학문화와 한방
병원의 관계가 이렇게 성립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앞서 Rationalist
International 예를 들었지만, 철학문화 활동을 한방병원에서 도와준다는 것
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철학문화는 과학이 아닌 철학을 논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KOPSA 스폰서가 한방병원이 될 수 없는 것과는 다릅니
다.

아직 '민찬홍 철학교수 관련 시리즈'의 민교수 자체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강박사가 통신에 글을 쓰는 민교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신과
학 바로 알기'를 지을 때였습니다. 원고가 학문적으로 정의되는 철학 개념
과 철학 용어로 보아 정확한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 문제는 1차 교정
원고가 나왔을 때 중진 철학교수에게 보내 확인을 부탁하여 해결했지만,
그 전에 민찬홍 교수를 발견하고 반가웠던 것이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후 잊고 있다가 김진만의 이상한 철학문화 글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돼
서 그곳에서 민찬홍 교수라는 이름을 다시 접했습니다. 그래서 민교수에게
김진만의 skeptics, skepticism의 이해가 틀렸고, 내용 중 무슨 침술을 놓고
논쟁을 벌인 것처럼, 무슨 quackwatch를 갖다 댔다는 것 등이 조작이라는
것을 알린 것입니다. 지금도 김진만은 skeptics가 어떻다느니 하는 글을 적
어 놓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김진만의 정신적 문제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김진만이 철학문화에 침술이 어떻다고 하며 비방 글을 적어 놓은 것은, 병
적 충동일지 모르나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민교수는 침술을 내용에 포함
시켜, 의학이 과학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식의 글을 적어 놓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 '민찬홍 철학교수 시리즈'로 분석할 것이지만, 이때 강박사는 비판
적 사고를 가르친다는 철학교수가 용어의 정의조차 내리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당시 꽃마을 한방병원이 철학문화의 스폰서임을 알고는 이것과 무슨 관련
이 있을까 생각이 스치기도 했으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철학문화의 주제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그
러나 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철학자가 "내 경험으로는 침술이 효과가
있는데" 라고 하며 무슨 철학적 논리를 가져다 대며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지극히 이상합니다.

김진만이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 등 민찬홍 교수의 이상한 점
은 하나 둘이 아닙니다. 다만 철학에도 두 가지 수준이 있다는 점을 말하
려고 합니다. 하나는 지식입니다. 과학에서도 교과서적인 지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그런 수준의 지식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비판적 사
고의 수준입니다. 교수라면 지식 수준에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지만 비판적
사고의 수준은 지식 그 자체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학 교수이면서도 과학인지, 비과학인지 비판적으로 평가할 능력
이 부족한 사람을 많이 봅니다. 철학 교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
엇을 믿을지 믿지 못할지 신뢰성 있는 증거에 기초하여 오류가 없는 논리
적 추리에 의해 결정하는 능력, 즉 비판적 사고 능력은 지식과는 다른 차
원의 것입니다. 대부분 문제는 믿음 자체를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는 것이지
만 비판적 사고를 아는 사람의 눈에 거짓됨은 어렵지 않게 드러납니다.

...................
1999/11/01(20:58)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민찬홍 (chanhong@eve.hannam.ac.kr)  조회수 : 139 , 줄수 : 27 
한의학과 과학 - 개인적인 생각 
.....

저는 의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학이란 과학과는 성격이 다른
제도지요. 이것은 치료를 목표로 하는 실천입니다. 의학은 진리의 발견보다
는 환자의 치료를 목표로 삼는 거지요. 따라서 의학 자체는 과학이 아니라
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의학은, 특히 현대 의학은 아주 속속들이 “과학적”입니다. 의학의
많은 실천들이 과학적 탐구들에 의해서 검증되고, 정당화됩니다. 그렇더라
도 의학의 모든 실천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서 어떤 병들은 아직 그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치료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병이라고 해서 치료를
미루어둘 수는 없지요. 따라서 이런 경우에 의학은 새로운 실험적인 시도
를 하기도 합니다만, 대개의 경우 전래의 방법에 기대기 마련입니다. 따라
서 의학은 가능한한 과학적이고자 하지만 인체에 대해서 과학이 모르는 부
분이 많기 때문에 철두철미 과학적일 수는 없는, 그러한 실천입니다.

데닛의 글에 보면, 큐라리라는 마취제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뛰어난
마취 효과 때문에 마취제로 널리 쓰였지만, 후에 신경계 약물들이 작용하
는 메커니즘들이 밝혀지면서 이 약초는 실제로 수용 신경은 건드리지 않고
운동 신경만 마비시킨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거지요. 서양 의학사에서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리라고 짐작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저는 이것이 의학의 치료법이 임상적 효과에 의
존해서 발전되어 온 것이지 과학적 판단에 의해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님
을 뜻한다고 봅니다. 우연히 어떤 풀이 어떤 병에 좋다고 알려지면 그 풀
이 어떻게 그 병을 치료하는지 우리가 알든 모르든 그 풀은 그 병에 대한
치료제로 널리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의학의 궁극의 목적은 환자의 치료이
지 진리가 아니거든요.

물론 과학적 탐구에 의해서 병리 메커니즘이 밝혀지면 안전한 치료법도 개
발될 것이고 따라서 과학적 지식이 의학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특히 20세기 후반에 들어,
인체의 치료에 응용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들은 아주 빠르게 의학에 흡수
되었고, 역으로 의학적으로 요구되는 방면의 과학적 탐구가 활발하게 이루
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현대 의학은 과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학이 곧 과학인가 하면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것은 의학이 과학을 아주 매시브하게 이용한다
는 걸 보여주는 것이요, 따라서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 “의학은 매우 과
학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학이 곧 과
학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동양 의학, 한의학은 어떻습니까. 저는 한의학이 수천년에 걸쳐서 임
상적인 결과들을 토대로 축적된 인체와 약초에 대한 방대한 자료에 토대하
고 있는 (서양 의학과는 또 다른) 하나의 치료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료들이 방대하면 할수록 이 자료들을 어떤 이론에 준거해서 분류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한의학의 경우에 이 이론은 “음양오행설”이 제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한의학이 본질적으로 “음양오행
설”에 의존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임상 자료들에 의존하는 실천이
라고 생각합니다. 음양오행설은 한의학이 제공하는 일종의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었겠지요.

그러나 실제로 한의학은 음양오행설의 이론적 일반화를 그리 신뢰하지 않
습니다. 예를 들어, 인체의 어떤 장기가 ‘금’에 속하고, 흰색의 풀이
‘금’에 속하므로 그 장기에 좋다는 한의학의 가설이 있다고 합시다. 그
러면 아무 풀이나 흰 풀을 하나 가져가서 한의사에게 “이것도 흰 풀이니
까 그 장기에 좋겠네요”하고 말한다면 그 한의사가 뭐라고 할까요. 무식
한 소리한다고 혼내겠지요. 따라서 약초에 대한 음양오행설적 해석은 예측
력을 가진 일반화가 아니라 기존의 약초들에 대한 분류법을 돕는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의학에서 가장 신비한 대목은 침술이지요. 저는 저 자신이 한의원에서
침으로 마취당한 적이 있습니다. 치료받느라고요. 침술의 토대 이론이 뭔가
요? 그냥 “경락 이론”이라고 부릅시다. 인체에 대한 경락 이론은 서양
의학의 관점과 양립불가능해 보이지요. 서양 의학은 “경락”이란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개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침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 아주 어려운 문제로 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어쨌거나 한의학도 이제 상당부분 과학적 토대를 갖추어가고 있지요. 종전
에 음양오행설에만 기대던 한의학이 이제 양의적인 진단 기기들과 양의의
개념들을 받아들여서 한의학의 치료법이 왜 먹혀들었던 건지 설명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우선 그것이
서구인들의 문화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그러한 판단
에 그들이 “과학”이라는 포장을 덮는다고 해도 제 의심은 마찬가지입니
다. 서양 사람들이 대체 의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동양 의학을 제외하면
아주 미신적인 요법들이 많습니다. 저는 한의학이 이런 종류의 미신적인
민간 요법과는 차원이 다른 치료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은 수천년 동
안 임상적 자료들을 축적해왔고 이것은 어떤 면에서 서양 의학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미 누차 말씀드렸듯이, 저는 서양 의학도 엄밀하게 말하면 과학
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얼마나 “과학적”인가 하는 문제로 바꾸어
생각하면, 일단 서양 의학은, 주로 20세기 중반 이후에 주로 그렇게 된 것
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매우 과학적인 실천입니다. 한의학은 아직 상당 부
분이 메커니즘을 밝히는 제대로 된 이론보다는 비유적인 설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의학에서도 서양 의학의 개념, 이론, 기기들
을 활용하려는 시도하고 있고 점차로 “과학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리라
고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침술 같은 분야의 경우 그 메커니즘이 서양
과학의 개념과 이론에 의해 밝혀지는 것은 요원해 보입니다. 이점에 대해
서는 아직 잘 판단을 못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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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04(00:39)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민찬홍 (chanhong@eve.hannam.ac.kr)  조회수 : 133 , 줄수 : 20 
의학, 과학, 한의학 
.....

학교에서 몇 사람이랑 얘기해 봤습니다. "의학이 과학인가?"라고 질문하면
서 얘기를 시작했지요. 네 사람 모두 "그럼요, 과학이죠."라고 답하네요. 제
가 앞서 올린 글이 좀 상식적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으음... 제가 의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은 그 목표하는 바가 다르
다는 뜻이었습니다. 과학은 진리의 추구이지만 의학은 환자의 치료가 목표
니까 이건 아예 목표가 다른 활동이다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과학을 이해
하면 예컨대 건축학도 과학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같네요. 공학
(engineering)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과학이 아니게 되고 마는 것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제가 과학을 너무 좁게 이해한 게 될 것같습니다.
흠...

물론 제 앞글에서 의학이 매우 "과학적"이라는 건 인정했었지만, 상식적으
로 통하는 '과학'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의학은 과학적일 뿐 아니라 하나
의 과학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실 이점에 대해서는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서양 의학이 '과학'이라고 불
리울 수 있을 정도가 된 게 매우 최근의 일, 그러니까 백년도 채 안된 최
근의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로 양보하고 싶지 않은데요. 이건 의학사
를 확인해 봐야할 문제같네요. 금세기 초까지만해도, 정확하게는 2차대전
전까지만해도 서양 의학이란 건 동양의학에 비해서 조금도 더 과학적이라
고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은데요. 곪으면 찢어서 짜내고, 썩으면 잘라
내고, 감염이 염려되면 독한 술을 붓고... 뭐... 그런 식이었다는 거지요. 이
런 서양 의학이 금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생리학, 병리학, 등의 생명과학의
지식과 이론들로 무장해서 하나의 과학, the science of medicine으로 탄생
한 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서양 사람들이 서양 의학을 현대 과학의 총아인 것처럼 말하면서 동양 의
학을 미신 취급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오만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있습니
다. 자기들의 것은 '과학'이고 전부터 '과학'이었고, 동양인들의 것은 이해
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채 별 가치 없는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같아서 불쾌하기도 하구요.

한의학은 방대한 임상 자료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틀
이 썩 과학적이지 못한 채로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한의학
의 상당부분, 특히 한약의 약리학이랄까 하는 부분은 서양 과학의 도구를
이용하면 그 약효가 입증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저는 한 병원에서 심한 화상 환자에게 의사의 묵인 하에 중국에서 들여온
연고제를 사용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만, 그 정도면 메커니즘이야 아
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효력은 입증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많은 한약재를 전부 플라시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침술의 경우에는 그게 서양 과학에 의해서 메커니
즘이 밝혀질 수 있는 문제인지 잘 모르겠구요.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다른, 어떤 독립적인 과학적 이론을 발전시킬 가능성
은 이제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미 서양 의학의 개념들과 이론들이 다 들
어와 있는 마당에 그걸 무시하고 다른 이론을 개발할 여지라는 건 거의 없
겠지요. 따라서 앞으로 한의학은, 한의학에서 살아남는 부분들은 아마도 서
양 의학의 큰 틀 속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싶네요. 이것도
역시 잘은 모르겠습니다.

----------------
한겨레신문 철학산책 
2002.04.14(일) 21:06
 
합리적 절차 검증없이 결과만 주장함은 부당

헤겔은 그의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강의를 끝까지 듣는다면
“헛소리들이 헛소리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
다. 흄이나 칸트처럼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철학자라면 몰라도, 헤겔 같은
낭만주의 철학자가 이런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는 것은 뜻밖이다. 하여간,
그럴법하게 치장한 헛소리들이 헛소리인 줄 알아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철학, 더 넓게는 인문학의 기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노동운동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역대 어느 정권
못지 않게 강압적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를 따르는
데 있어서 세계적인 우등생이랄 수 있는 김대중 정부더러 "좌파적 정권"이
라고 공격했다고 하는데, 이거야 너무 수준 이하의 발언이어서 그저 건강
한 상식만 가지고도 이게 헛소리임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총재가 한 말 중에는 약간의 논평이 필요해 보이는 구절들도 더
러 있다. 예컨대, 2000년 여름, 남북정상회담 즈음에 그는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통일논의의 핵
심은 무슨 단계를 거쳐 어떻게 통일을 이루느냐가 아니라 `바른 통일'을
이루는 일”이며, “한반도의 통일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통일이 되어야 하며, 여기에 어떠한 양보나 타협도 있을 수 없다”
고 주장하면서 역사적인 남북회담의 성과를 폄하하려 했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중요하다니, 이 총재가 법률가 출신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발언이다. 이론적 분야에서건 실천적 영역에 있어서건 결과
는 직관에 호소해서 정당화되지 않으면, 그것이 얻어진 과정, 절차에 의해
서 정당화된다. 직관은 시대적 편견과 계급적 이해관계와 개인적인 호오
(好惡) 등 이른바 베이컨이 말한 우상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십상이어
서 그리 신뢰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과를 정당화하는 길은 그 절차 이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절차가 결과를 정당화한다는 것, 이것이 근
세 이후 인류가 도달한 합리적 제도의 기초를 이룬다.

수학자들은 어떤 명제를 진리라고 알려진 다른 명제들로부터 타당한 연역
를 통하여 도출함으로써 정당화한다. 과학자들은 잘 계획된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입증함으로써 정당화한다. 명명백백한 범죄자라도 적법한 절차에
의거하지 않고서 처벌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범죄이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당한 절차를 통하여 입법화될 때에만 정당한 실행력을 획득
한다. 마찬가지로, 통일된 남북한이 어떤 체제를 이루건 그러한 통일은 쌍
방의 자주적인 의지를 평화적으로 수렴해감으로써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
다. 예컨대, 미국의 군사공격에 기대에 한반도 전역에 시장경제를 실현한다
면 이건 `바른 통일'이 아니다. 절차가 올바른 통일이 `바른 통일'인 것이
다.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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