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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학적 사실성
   
  00/01/17 글 옮김, 신격변론의 이해
  글쓴이 : kopsa     날짜 : 00-10-10 15:41     조회 : 5191    
00/01/17 글 옮김, 신격변론의 이해 
(2000/03/13 개정)

 창조과학자는 지구가 대략 1만년 전에 창조된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6천 년
전 쯤 대홍수가 일어나 노아의 방주에 보존된 것을 제외한 모든 땅의 동식물은
멸종된 것으로 본다. 그후 지구는 새로이 지금의 형태로 되었으며 홍수의 결과
땅에 묻혀진 것이 우리가 발견하는 화석이라고 한다. 이들은 지층에 따른 점차
적 고등 형태 화석의 출현도 수력학적으로 해석한다. 이곳에서 다룰 내용은 노
아의 대홍수(the Deluge)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지구를 바꾸고 생명체의 멸종
을 가져온 일이 과거에 없었겠는지에 관한 것, 즉 격변론(catastrophism)이다.

1. 반진화론자 퀴비에의 격변론

 지난 20년이래 현재의 지구가 형성되기까지 격변과정이 있었으며 앞으로 어느
땐가는 다시 격변을 맞으리라는 격변론이 주류 과학에 등장하였다. 물론 이것은
노아의 대홍수는 아니지만 크게 과학이론의 취약성을 말해 주는 예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균일론(uniformitarianism)에 기초한 다윈 진화론에 대한 문제 제기
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현재의 격변론 지지자 중에는 성경적 사건을 격변론으
로 해석한 벨리코브스키 유 이야기의 지지자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성경적 사건
을 실제 사건이라고 말하는 창조과학자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격변론의 재등장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19세기초까지 지배적
이론이었던 격변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격변론자로서 영국 지질학자 시
지윅(Adam Sedgwick, 1785-1873)도 있으나 동물 분류학의 선구자이며 화석 연
구의 대가로 꼽힌 프랑스의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가 대표적 인물
이다. 그는 왕정복고 후에는  파리대학의 총장이 되었으며 그후 내무 장관 등
각료로서도 일하여 그의  정치적 능력이나 과학적 능력이나 당시 당할 사람이
없었다.
 
 퀴비에는 개개 격변에 의해 생명은 새로이 창조된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 격변
중에 가장 최근의 것을 성경에 나타난 홍수로 보았다. 그는 화석에 나타난 생명
체의 기록이란 격변에 의해 멸종된 종의 기록이며 서로 연관성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격변론의 주장자는 진화론을 인정할 리가 없다. 그는 다윈 이전 진화론
자 라마르크(Chevallier de Lamarck, 1744-1829)에 반대한 반진화론자이다. 퀴비
에의 격변론은 화석 연구에서 나온 것으로 당시 화석의 이해가 중요하므로 이에
관해 설명해 본다.
 
 화석(fossil)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6세기 독일의 광물학자 아그리콜
라(Georgius Agricola, 1494-1555)이다. 그는 땅에서 파낸 것은 무엇이건 화석이
라고 불렀으나 17세기 덴마크 의사 스테노(Nicolaus Steno, 1638-86)는 화석이
생명체의 잔존물이라고 주장한 사람에 속한다. 그는 화석에 대하여 유기적인 기
원을 찾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화석의 이해에 별로 진전이 없던 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 와서야 지구는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많은 형태의 생물은 생겨났다가 
멸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초기 진화론이 나왔을 것이나 여하튼 퀴비에도 해양 파충류나 나르
는 파충류를 포함한 많은 화석을 확인하였다. 이로부터 그는 1825년 화석의 기
원에 대해 "1. 화석의 생물체가 지구의 다른 부분에 아직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2. 생명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형태를 변화시킨다, 3. 어떤 종은 멸종되었
을 것이다"라는 3가지 가능한 가설을 내어 검토,  처음 2가지를 근거가 없는 것
으로 보고 3번째의 것을 채택하였다.

  다시 정리해 보자. 퀴비에는 때때로 대격변이 일어나 모든 생명은 멸종되고
하나님이 지구상에 새로운 생명체를 주었다고 믿었다. 물론 지구도 격변에 의해
변했을 것이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격변은 노아의 홍수였다. 그러나 화산에
의한 격변도 있었다. 또한 격변론의 지지자들은 화석이 과거 격변에 의해 멸종
된 생물체의 잔재라고 하였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오늘날 창조론자의 노아 대홍
수 격변이 어디에 속한 것인지 알 수 있다.   

2. 다윈이 채택한 라이엘의 균일론

 앞서 말한 대로 19세기 초기 많은 지질학적 정보가 수집되었으나 아직 대부분
은 격변론을 믿고 있었다. 물론 학자들 간에 갈등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퀴비에(1769-1832) 이전의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이나 1785년 최초로
균일론을 내었다는 허튼(James Hutton, 1726-97)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격변론에 반대하여 균일론을 정착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영국의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이다.
 
 라이엘은 처음 법률가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지질학에 흥미를 갖고 1823년 런
던 지질학회의 총무가 되었다.  그는 1830년에 출판한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에서 유럽과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발견한 많은 지질학적 특징을 균일
론으로 해석하였다. 바위나 지질학적 구조가 매일 매일 일어나는 과정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정상적인 과정의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좀 더 설명하면, 라이엘은 "시간에는 경계가 없다. 자연법칙에는 경계가 없다.
현재는 과거를 열어 주는 열쇠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자연법칙은 공
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이 일정하며, 현재의 작용은 과거의 작용으로 설명되어야
하며, 지질변화속도는 균일하며 형태는 균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은 시간에 따라 항상 일정하다"는 균일성 개념(concept of
uniformity)에서 나온 것이다. 물리적 과정이 변하지 않는 법칙에 의해 일어난다
는 이 개념을 현실론적 균일론(actualistic uniformitarianism)이라고 한다. 라이엘
은 방법론상 실체적 균일론(substantive uniformitarianism)도 말했는데, 지구의
현재 상태가 전 역사를 대표한다는 이 개념은 현실론적 균일론보다는 그리 강조
되지 않은 것이나 실제 이 둘을 연관시킴으로써 균일론은 점진론(gradualism)이
되었다.
 
 19세기 균일론의 승리는 당시의 중요한 근거였던 화석 자료로 보아 이들을 
홍수나 화산 등의 격변론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격변론, 균일론을 순수한 과학적 논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격변론자들이 말하는 노아의 대홍수는 종교적 믿음이 포함된 것이다.  라이엘도
말년에야 진화론을 수용하였으나 인간의 원숭이 조상설은 부인하고 하나님의 창
조를 믿었다. 따라서 오늘의 기준으로 19세기의 격변론, 균일론 주장자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여하튼 라이엘 이후 균일론은 지질학, 고생물학, 진화론에 지배적인 견해가 되
었으며 진화론을 낸 다윈도 진화는 엄청난 시간 스케일 속에서 일어나며 이것은
격변적인 것이 아니며 점진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화석 기록을 보면 점
진적 진화로는 해석되지 않는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점진적 작은 변이의 축적에
의한 진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급작스런 종의 출현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를 진화론의 구도 내에서 수용하기 위한 시도가 1972년 굴드(Stephen Jay
Gould)와 엘드리지( Niles Eldredge)에 의한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이다. 이들에 의하면 종분화(speciation)가 반복되면서 덤불이 이뤄지
며 밑바닥 덤불로부터 현재 우리가 위치하는 꼭대기까지에는 수많은 우회적인
통로와 미로가 섞여 있다. 새로운 종은 모집단에서 이탈한 지극히 작은 개체군
에서 나타나며, 갑자기 독자적인 대규모 개체군으로 될 때에만 우리 앞에 나타
난다는 것이다.
 
 또한 1980년이래 신격변론(neocatastrophism)이 등장하여 예를 들어  1988년
과학 모임에서 시카고 대학의 라우프(David Raup)는 대부분 생물의  멸종은 진
화론에서 말하는 점진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경쟁과 적응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격변에 의해 일어난다고 말했다. 같은 모임에서 하버드의 굴드
도 이 아이디어가 근본적으로 다윈의 진화 가정을 변경시킨다고 말하였다. 다시
말해서 진화의 경로는 경쟁적 적응보다는 무작위적인 지구의 격변에 살아남는
생명체의 능력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 신격변론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3. 격변론의 재등장

 전통적 균일론 지질학에서도 주기적 빙하기, 바다 수위의 상승과 하강 그리고
침식 사이클에 따라 교대로 나타나는 산형성기와 같은 순환적 변화의 아이디어
는 받아들였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에 가서야 대규모의 비순환적 변화가 일어
나는 예가 인정되었다.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은 대륙의 모양과 위치가 그래서
대륙의 기후가 시간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거
의 같은 때 지구의 대기 조성이 15억년 전에는 지금과 달리 산소가 포함되지 않
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며 균일론 지질학의
구조 내에서 설명이 가능한 것을 알았다.
 
 그러던 것이 1960년, 1970년대 달과 행성 탐사 결과 이들의 표면에서 거대한
구멍을 발견했는데 그 중 어떤 것은 직경 수백 km의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
구도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1980년
알바레스 부자, 다시 말해서 196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루이스 알바레스(Luis
Alvarez, 1911-88)와 그의 아들인 월터(Walter)에 의한 우연한 발견이 격변설을
재등장시켰다.
 
 당시 월터는 이탈리아에서 백악기 (K)와 제3기 (T)사이의 경계, 즉 K-T 경계
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중금속을 분석할 장치를 갖춘 아버지에게 이 경계의
점토 샘플의 분석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이상하게도 많은 이리듐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세계 모든 곳의 K-T 경계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알바레스 부자는 이 이리듐이 6천 500만 년 전 격변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하
였다. 아마도 소행성이나 혜성과 같은 커다란 이리듐을 함유한 물체가 지구와
충돌한 결과일 것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먼지에 의해 광합성이 차단되어 먹
이사슬이 끊어져 지구의 생물체는 멸종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이때가
공룡의 멸종기이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과 관련지은 이 설에 대한 반론도 있다. 지각보다 이
리듐이 운석에 풍부하기 때문에 이런 설을 내었으나 이리듐이 실제는 비교적 짧
은 지질학적 기간동안 일련의 강도가 큰 화산 폭발에 의해 지구 맨틀의 깊은 곳
에서 방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미 서부의 자료에 의하면 공
룡은 적어도 700만년 기간동안에 서서히 멸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
막 지역적으로 멸종된 것은 소위 가정적 소행성 충돌 4만년이 지난 후라는 것이
다. 또한 공룡의 멸종이 오랜 기간에 걸친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논문도 있다.
 
 앞서 언급한 라우프 등은 지구상 생명체의 대량멸종이 대략 2천 600만년을 주
기로 일어나며 지구 인자로는 이 주기성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은 지구 밖의 해석, 무엇인가가 태양계의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는 혜성의 운(오
르트운)을 방해하여 이때 혜성이 지구로 끌려 그 중에 지구를 때릴 것이 나타난
다고 하는 우주물체의 지구 충돌을 가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기적-혜성 가설(cyclic-comet hypothesis)에도 반론이 제기되
었는데, 2천600만년이라는 계산이 단지 평균치이며 아마도 통계적 인위적 산물
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모든 대량 멸종이 이러한 주기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며 앞서 말한 대로 공룡만 해도 수백만년에 걸쳐 서서히 멸종되었다.
혜성 가설은 모든 생명체가 한번에 멸종되어야 하는데 실제 생물체에 따라 서로
다른 기간에 멸종되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우주 물체 인자의 신격변론은 현재 과학에서 인정받는 토의의
대상이다.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또는 앞으로 나타날 우주 물체의 충돌과 관계
된 격변이지만 이보다 갑작스럽거나 격렬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지구 표면과 대
기의 불안정을 빠르게 가져올 다른 격변을 상상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치
솟는 온실효과(runaway greenhouse effect)'이다.
 
 대기를 가진 어떤 행성도 적외선의 탈출을 막아 발생하는 온실효과를 가지게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수십억년 전에는 금성과 지구가 유사한 대기와 기후를 가
졌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온실효과도 유사했다. 그러나 금성에서는 불안정해지
고 표면온도가 올라 해양이 끓고 따라서 좀 더 온실효과가 커지고 새로운 평형
상태에 달했다고 본다. 그 결과 오늘날 금성의 표면온도는 납을 녹일 만큼 뜨겁
고 표면압력은 지구 기압의 90배이다. 온실가스의 배출을 막지 않을 경우에 이
와 같은 일이 지구에도 일어날 것인가? 이 정도는 아니라도 해도 지구 생명체에 
치명적 변화를 초래할 일은 가능할는지도 모른다.     
 
4, 영국의 신격변론 학파 

 우주 물체의 지구 충돌과 관련된 생물체의 멸종 문제가 학자들간의 논란이 되
고 있는 가운데, 좀 더 극단적인 우주 물체 충돌 설을 제기한 학파가 영국에 나
타났는데 이들을 '신격변론 학파(Neo-Catastrophist School)'라고 부른다. 1982년
'우주 악마(The Cosmic Serpent)'와 1990년 '우주 겨울(The Cosmic Winter)'의 
공저자인 옥스퍼드 대학 클러비(Victor Clube)와 나피어(Bill Napier)가 중심인물
이다.
 
 이들은 역사적 시대인 지난 2-3천년(few millennia) 시기에 지구가 우주 물질
의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역사적 기록을 이에 맞추어 해석해 내었다. 서양 지중
해의 천문학의 출현, 원시문화의 행성과 신과의 관련성, 광범위한 혜성에 대한
공포와 천사에 대한 믿음, 기타 문화적 종교적 역사 양상 등을 보아 2-3천 년
전에 많은 우주물체의 지구 충돌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후에도 로마제국의 멸망,
암흑시대 (the Dark Ages,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후 500년간) 등도 우주 먼지
의 지구 환경에 축적 때문에 기인한 기후 변화와 관련되었다고 하였다.
 
 이들의 역사적 분석은 신격변설이 나오기 전인 1950년  벨리코브스키
(Immanuel Velikovsky)가 지은  '충돌 중의 세계(Worlds in Collision)'의 내용과
유사하다.  벨리코브스키는 행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거나 거의 충돌한 적이
있으며 지구의 역사가 우주적 기원을 가진 어떤 격렬한 사건에 의해 특징지워졌
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벨리코브스키와의 관련성을 부인한다. 자신
들은 물리학적 그리고 천문학적 원리에 기초한 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다.
 
 클러비와 나피어를 지지하며 스틸(Duncan Steel)과 베일리(Mark Bailey)는 태
양계가  현재도 몇 천년 전쯤의 거대한 혜성의 붕괴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지구
가 아직도 이 혜성의 부스러기(Taurid complex)와 교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들은 대략 1천 년 내에 이 충격으로부터 잠잠해 질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후이다. 이때 지구는 다시 타우리드 복합체의 밀도가 높은 부분을 가로지른다.
이때 충격 확률은 100배 높아진다. 따라서 우주 물체의 충격을 방지할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천문학자들은 이런 신격변론자의 주장을 그대로 삼키기 어렵다고
말한다.  벨리코브스키 유의 역사와 전설의 해석은 말할 것도 없이 충격 빈도는
달의 구멍 형성 역사를 보아도 평균하여 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의 충격
빈도의 피크를 보아도 아직 수세기 동안 다음의 피크를 준비할 여유가 있지만
이들은 현재의 충격 빈도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더욱 큰 피크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술적인 면에서 이와 같이 지구에 대한 위협의 면에서 영국 신격변론자의 주
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이들의 연구가 과학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따
라서 이 문제는 과학의 세계에서 가려질 문제이다. 그러나 이들 과학자는 주변
극단론자의 주의를 끄는 면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SIS(Society for Interdisciplinary Studies)는 회의론적 철
학(skeptical philosophy)를 신봉하지만 그 가운데 벨리코브스키 아이디어를 지지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들은 클러비와 나피어에 관한 학술회의를 열고 고대 세
계에서의 우주 격변의 증거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상 클러비와 나피어는 과거
벨리코브스키에 감명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매력을 준다. 그리고 벨리코브스키야
말로 성경의 역사를 우주적 실제 사건으로 해석한 작가인 것이다. 
 
5. 종교에서의 격변론, 결론

 과학적 토론의 대상인 신격변론은 또한 종교적인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내용이
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과학적인 격변론 또한 자신의 교리에 끌어들일 수 있다
는 것이다. 현재 창조론자들이 말하는 대 홍수 이야기는 한가지, 자신들이 해석
한 성경적 내용을 그대로 실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며 과학적
근거를 찾아 사실로 인정케 하려는 것이 목적인 이상 우주 물체 충돌설과 얼마
나 연관지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신격변론이 다윈의 진화론 범위
내에 수용될 것인지 아니면 진화론을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것인지는 아직 분명
치 않지만 다윈 진화론의 붕괴가 가능해진다면 이 또한 종교 반경에서 환영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들은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아의
대 홍수를 말하며 창조과학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의 실제적 해석 면에
서 벨리코브스키의 주장도 무시 못할 경향이다. 앞서 말한 SIS는 벨리코브스키
의 지혜가 과소평가되고 조롱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창조과학의 대홍수 격변으로 주제를 제한하여도, 과학은 경쟁적인 이론간의
다툼이다. 증거 중심의 다툼이다. 창조론자의 주장은 현재 과학으로 지지받을 수
없다. 그러나 뜻 있는 창조과학 반경 과학자의 노력은 분명 반대편 과학자들에
게도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다툼은 어느 면에서 흥미 있는
과학적 논쟁이다. 적을 바로 알아야 이들을 무력화시킬 일반인도 이해할 현명한
논리도 개발할 것이 아닌가? 필자는 창조과학자의 대홍수 격변 증거가 무엇인지
자세히 확인하고 싶은 흥미가 발동하는 것을 느낀다.       

6. 참고

1) 강건일, 신과학은 없다, 지성사, 1998.
2) Tim M. Berra, Evolution and the Myth of Creationsim,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3) David Morrison, Is the Sky Falling?, Skeptical Inquirer, May/June 1997, p. 
  22-28.
4) David Morrison and Clark Chapman, The New Catastrophism, Skeptical   
  Inquirer, Winter 1990, p. 14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