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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 시대의 전염병, 항균제의 발견이 의미하는 것
  글쓴이 : kopsa     날짜 : 01-11-23 15:21     조회 : 6164    
허준 시대의 전염병, 항균제의 발견이 의미하는 것

앞서 게시한 경희대 신현대 한방병원장의 '콜레라' 글 비판은 전염성 질병을 말
하며 병원성 미생물과 항미생물 약의 개념이 없는 동의보감을 인용한 문제의 지
적이었습니다. 당시 콜레라는 이질, 장티푸스(앞서 글에서는 이 중요한 병을 빼
먹었습니다) 등과 마찬가지 증상의 질병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며 이들 소화기 전
염병뿐만 아니라 어떤 전염병이든지 항균제 등 항미생물 약이 나와 치료가 가능
해진 것입니다. 

허준 동의보감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리고 항미생물 약의 탄생의 의
미를 오래 전에 '재미있는 약 이야기'(개정판, 한약은 필요한가?)에 쓴 적이 있으
므로 필요한 대목만을 게시합니다. 당시 글을 쓸 때 인기를 끌었던 이은성의 '소
설동의보감'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으나 홍문화의 '허준동의보감' 등 책을 참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1. 허준 시대의 전염병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힌 이은성의 '소설동의보감'은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이다. 허준의 어린 시절부터 임진왜란까지의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소설로라도
알고 싶었던 '동의보감' 집필 이야기는 그려져 있지 않다. 뒤에 정유재란과 선조
가 승하하고, 당쟁의 귀양길에 나서고, 귀양생활 2년 동안 '동의보감'을 완결한다
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소설이니 만치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운지
모르나 한의사 허준의 인간 됨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소설동의보감'에는 여역과 문둥병, 그 당시 전염병의 참상을 그려 놓았다. '이조
왕조 실록'에 1526년에 여역이 만연하였고(사망자 수는?), 1699년에는 여역으로 
죽은 자가 25만 700여명, 그리고 1749년에는 50-60만으로 되어 있는데, 당시의
인구로 보아 대단한 숫자라고 생각된다. 허준 시대의 여역에 대하여 연구된 자
료가 있을 것이나 필자는 그 당시 여역의 정체를 모른다. 유럽에 유행했던 전염
병과 시대적 상관관계를 찾으려는 호기심이 있었으나 옳은 접근이 아니라 포기
했다.
 
'소설동의보감'에는 여역의 참상을 그려 놓았을 뿐 아니라 전염병이 발생한 곳에
사람의 출입을 금지한다든지,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연적 지혜라
고 생각된다. 허준은 여역을 대처할 적극적 방안으로 위생과 수양을 강조했으나
역병의 정체를 역귀의 장난으로 알고 미신과 유사한 방법으로 대처한 기록으로
보아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한계를 발견한다. 소설 속에는 여역을 다스린 다음
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신열의 대체가 뱃속의 음식이 적시에 내리지 못함에서 도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병자의 속을 피마자로 깨끗이 씻어낸 후 묽은 좁살 미음 반 공기로 위를
달래게 해 매실즙을 먹여 두통을 다스렸던 바...."
 
여역에서 생긴 열이란 세균의 작용에 의한 것인데, 이곳에서는 음식이 제대로
내리지 못함에 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피마자로 우선 음식을
씻어내는 것이 좋다고 하였는데, 서양에서도 과학전 시대 육체를 정화할 목적으
로 사하제를 사용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이다.
 
피마자의 사하작용은 동서양에서 고대이래 알려진 것이다. 피마자 (Ricinus
communis)의 학명은 곤충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피마자씨가 곤충처럼 생겼
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피마자씨를 압착하여 만든 피마자유는 장
효소에 의해 가수분해되어 지방산으로 되고, 이 지방산이 사하작용을 나타낸다. 
그러나 피마자에는 리신과 리시닌이라는 식물 독성분도 들어 있어 소량을 복용
하여도 신장을 파괴하므로 치명적이다. 피마자유를 가열하면 이런 독성분은 파
괴되나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지금은 피마자유를 사하제로
복용하지 못하게 한다.
 
두통을 다스렸다는 매실은 "허준동의보감"(홍문화 저)에 언급되어 있는데, 청매
실을 씨를 빼고 불을 지펴 연기에 그을려 말린 것을 오매라 하여, 염을 제거하
고, 토역을 그치게하고, 이질과 열과 뼈쑤시는 것을 다스리며, 주독을 풀며, 상한
과 곽란, 조갈증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성분 중
유기산류, 알코올류 물질이 갈증해소, 살균작용을 나타낼 것으로 해석했다.
 
일반 생약 책에는 매실의 효능으로 지사제, 회충구제, 진해, 거담, 해열, 발한의
효능이 기재되어 있는데, 허준의 기술이나 생약 책의 것이나 당시 가장 문제된
열병, 설사, 기침에 모두 듣는 약으로 표현된 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정말
로 이런 효과가 있다면 여역을 다스리는데 기여했을 것이나, 전체적인 느낌은 
당시 매실이 최선이었을지 모르나 아마도 거의 효과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물
론 확실한 효과를 가진 약이 얼마든지 있는 지금 매실을 쓸 필요는 없다.
 
'소설동의보감'에는 문둥병 환자의 처절한 분위기를 그려낸 대목들이 있다. 문둥
병환자는 "성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자 남자 늙은이 할 것 없이 허준을 향한 그
얼굴은 모두가 대풍창 환자들이었다. 눈알 하나가 빠지고, 코가 떨어지고, 입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엉켜붙은....."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의 집단 취락장소
는 대풍자수를 비롯한 여러 생약에 둘러싸여 마늘냄새, 뱀탕 냄새를 풍기고 있
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잡아가 장기를 먹는 것으로 무섭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실제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이든 사람
은 누구나 경험한 것으로, 필자가 어릴 적에도 집을 돌며 동냥하는 문둥병 환자
를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손이 닿았을 곳을 닦곤 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문
둥병 환자에 사람간이 효험이 있어 어린아이를 잡아간다고 하여 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무서워 숨곤 하던 기억도 있다.

문둥병(나병)은 코며 손이며 살이 썩어들어가는 병으로, 이 병은 급성으로 나타
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서서히 나타나는, 만성이므로 더 고통스러운 불행한
질병이다. 이 병은 중국 문헌에도 기원전 5세기에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 13세기
나병이 만연되기 전에도 이미 그리스나 로마의사들이 기술하고 있으며, 성경에
도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 질병은 허준 시대에도 존재했고, 그리고 지금도 존
재하는 병인 것이다.
 
허준이 나병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치료제라면 대풍자수를 생
각했을 것이고, 사람의 장기를 먹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하였을 것이다.  대풍자
유는 최근까지 치료목적에 이용되었으나 거의 효과가 없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30년대이래 발견된 항균제도 장기간 투여해야 효과가 있을 정도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 것이 나병이다.

2. 20세기에 들어올 때의 서양 상황

16세기 허준 시대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300년이 지나도 동서양 모두 전염성 질
병에 대처할 아무 무기도 없었다. 18세기 제너가 천연두에 우두를 접종한 것은
경험적인 발견이었다. 이런 면역법도 19세기말 파스퇴르가 의도적으로 탄저병,
광견병 백신을 제조하기까지 아무 진전도 없었다. 문제는 이 세상에 무수히 많
은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었다. 이 상황을 파스퇴르가 면역을 연구했던
18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예로 살펴보자. 

1881년 7월 초 미국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윌리엄 칼리지 재회의 날에 참석 도
중 공무원이 되지 못해 좌절한 범인의 총탄에 맞았다. 한 발은 팔을 스쳤으나
다른 한 발이 그의 등에 박혔다. 의사는 손가락으로 총알을 찾아내려고 했으나
헛수고였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기장치로 총알을 찾았으나 그도 또한 실
패했다. 7월5일까지 상처에는 염증이 생겼다. 복막염도 생겼다. 의사들은 그대로
지켜보며 병의 진전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9월 19일 50세의 대통령은
사망했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가장 우수한 병원에서 당대 최고 의사의 처치를 받았을 것임
이 틀림없다. 그 때문에 2개월 후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마도
지금 기준으로 총탄상처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째서 총
알이 박힌 부위를 찾지 못했을까?

이 세상에 최초로 X선 사진이 나온 것은 1895년 12월 22일로 기록되어 있다. 렌
트겐이 X선 발견으로 이어지는 실험을 시작한지 6주 후 자기부인의 왼손 사진
을 얻은 것이 최초였다. 그 사진은 넷째 손가락에 낀 반지가 나타난, 검은 골격
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필드 저격 14년 후였고 지금으로부터 단지 100
년 전의 발견이었다. 
 
1890년대 뉴욕 루즈벨트 병원 의사의 회상에 의하면 "수술실에서 의사들은 마스
크를 하거나 고무장갑을 끼지 않았다. 단지 일상복 위에 무균처리 하지 않은 수
술복을 걸쳐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보아도 1881년 가필드가 입원한
병원에 감염에 대한 개념과 적절한 대처방법이 없었음이 틀림없다. 소독법의 창
시자라 불리는 리스터가 수술실에서 페놀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1869년이나, 
1870-80년대에 병원성 세균이 분리, 정체가 밝혀져 차츰 인식되기까지 무균조작
법, 소독법은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가필드가 입원했던 때 전신살균제는 물론이고 상처에 바를 소독제도 없었
다.  페놀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할지 모르나 상처부위에 바르기에는 부식성이었
고 더욱이 상처내부에 주입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런 소독제가 있었던들 총
탄상처의 감염을 제어하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상상된다.
 
3. 항 미생물 약의 출현

가필드를 살릴 수 있었을 항균제는 언제 이 세상에 출현했을까? 일반인은 지금
으로부터 50-60년 전에 그런 약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
한다. 1988년 스웨덴 왕립의사 베르너 올슨은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에 일어
난 약 혁명을 진술했다. 그 중 최초의 전신감염 치료제 설파제의 출현 내용을
발췌하여 아래 적는다. 

"우리 의사들이 환자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완전히 무기력하게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1930년대 말 나는 두개 스톡홀름 병원의 조의사였다. 우리는
당시 가장 훌륭한 의학교육을 받았으나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줄 약이 없어 결
국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폐렴환자가 병원에 들어오면 그저 환자의 위기
를 지켜보며 살아남아 주기만을 기원했다. 나는 폐렴환자에게 설파제가 얼마나
기적의 약이었는지 지금도 최초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해 해군
병원의 동료에게 폐렴환자가 왔다. 그는 아주 상태가 아주 나빴으므로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방금 병원에 도착한 설파제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 환자는 의식불명이라 약을 삼킬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유발에 갈아 코를
통해 위로 씻어 넣었다.  다음날 아침 그 환자는 오트밀 죽을 먹고 있었다."

'재미있는 약 이야기'에는 이 뒤에 항생물질 등 항균제 발견의 이야기, 의미, 그
리고 필자의 경험을 적었습니다. 마지막에 항생물질 남용의 문제를 말하는 이야
기도 적었는데, 누구나 알다시피 내성 균주의 출현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항생물
질은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 안전성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항미
생물 약이야말로 병원성 미생물 질병에 거의 유일한 효과적인 치료제라는 것을
말합니다. 

끝으로 용어 설명입니다. 병원성 미생물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등 미
생물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항미생물 약(antimicrobial agent)이라고
하며 개개 미생물에 대해 항균제(antibacterial agent), 항바이러스 약(antiviral
agent) 등등으로 부릅니다. 항생물질(antibiotic)은 미생물의 대사산물이 항미생물
약이 된 경우입니다. 대체로 항균제를 말하지만 항생물질이 아닌 항균제도 있으
므로 항균제가 범위가 넓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