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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의학 신문기사 리뷰, 한의학 (2)
  글쓴이 : kopsa     날짜 : 00-08-06 07:26     조회 : 6644    
(2008년 2월 20일 확인)

대체의학 신문기사 리뷰, 한의학 (2)

  2000년 6월과 7월 신문기사 중에서 몇 가지 골라 보았습니다. "한의학"으로 검색한 기사인데, 특히 "체질론"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신에 오른 날짜를 표시했습니다.

1. 2000년 7월 27일  [건강] 보신탕은 소음인만 효과
  출처: 매경 Econo

  동양한의원 김양진 원장이 쓴 글입니다. 식품과 약의 구분이 없는 한의학인지 아래와 같이 개고기가 "허약체질, 신경통, 근육통, 저혈압, 빈혈 등"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분명히 정의돼야 할 의학용어가 애매하게쓰이고 어떤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지 모릅니다.     

  "개고기는 사람 근육과 가장 가까운 아미노산이라는 고단백질로 구성돼 다른 고기들에 비해 기름기가 많다. 그리고 부추, 깻잎, 고추, 파, 마늘, 들깨 등의 각종  야채를 곁들여 먹게 되므로  영양과 기운을 북돋아 준다. 그래서 옛날 농경사회 때부터 보양식으로  애용돼 왔고 허약체질, 신경통, 근육통, 저혈압, 빈혈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그 다음, 개고기도 아무나 먹어서 전부 효과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태양, 태음, 소양, 소음 인 중에서 "개고기가 100%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체질은 소음인뿐이다"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개고기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더운 음식이기 때문에 소화력이 약하고 열이 적은 소음인을 제외한 다른 체질에는 별효과가 없다. 즉, 열이 많고  소화력이 왕성한 소양인이나  태양인에게는 치명적인 음식이  될 수 있고,  차거나 더운 음식이 적합하지 않은  태음인에게도 그다지  권할 만한 음식은 아니다."

  4상 체질론이 과학이 아닌 사변적 철학적 원리라고 게시판에 올린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체질 감별법 자체에 과학성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체질을 말하며 도식적으로 발병률이 높은 질병, 적합한 약재, 적합한 식품, 부적식품 등을 말합니다.
 
  강박사가 갖고 있는 도식표에는 정말로 개고기가 소음인에게 적합식품, 태음인과 소양인에게는 부적식품으로 올라 있습니다. 여하튼, 적합식품은 "100% 효과" 부적식품은 "치명적"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뭉뚱그렸지만, 여하튼 개고기 먹는 것을 말리기 위해 태음인과 소양인을 다 색출해 내야하며, 개고기 효과 100%인 소음인은 돼지고기에 치명적이라니 체질에 운명이 걸려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체질론이란 의사(擬似)과학입니다.       
 
2. 2000년 7월 20일  [건강] HGP와 사상의학은 동일 선상 
 출처 : 매경 Econo
 
  윤원식 군산 경희한의원 원장의 글입니다. 그는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선생은 '앞으로 100년 후 사상의학이 각광  받을 것'이라 했는데  그런 시점에 인간지놈프로젝트(HGP)의 연구결과 인체염색체지도가 완성됐다는 발표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유인 즉 다음과 같습니다.

  "HGP와 생명공학산업의  목표는 ....마지막으로 맞춤약을 개발,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의학의 처방은 인체를  각각 다른 개체로 보아  체질과 증상에 따라  상이한 약물을 배합, 치료하는 데 있다. ....이제마는 ...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인으로 나눴다. 더 세분화하면 수십억 체질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난치나 불치로  판명된 많은 질병도 사상체질로 접근,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다.  따라서 사상의학 체질의 규명이나, HGP의 각 염색체에 작용하는  약물의 규명은 동일 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동안 한의학의 프로파간다는, 서양의학은 쪼개고 쪼개서 유전자까지 쪼갰는데, 한의학은 인체를 전체로 보는 장점이 있다고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청사진이 신문, 방송을 장식하자 이제는 한의학은 맞춤약이라고 떠듭니다. 체질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4상 체질로는 부족했던지 얼마든지 체질을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개개인마다 다르게 약을 처방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상상만 갖고는 안되고 체질구분이나 각 체질에 맞는 약이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점쟁이 식으로 성명학적 도식표를 하나 만들어 벽에 걸어 두는 식이라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3. 2000년 7월 12일 [특별기획] ..국민드라마 <허준> 신드롬 
출처 : 씨네21
 
  김소희 영화평론가의 글입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 소제목 "동양학적 인식론으로의 회귀, 대중사회로 확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위 허준 드라마가 뉴에이지 신과학 홍보에 기여했다는 말입니다. 김평론가는 글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개인 경험 한 토막을 소개했습니다. 

  "십년 전쯤 한 서양인이 한의원 앞에서 코를 틀어쥐고 서서 이것이 무슨 냄새냐고 물었다. '동양 약재' 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의 얼굴에 감돌던 경멸의 기색, 그리고 동서양 의학 체계의 그 엄청난 차이를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했던 그날의 낭패감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게시한 "신과학 바로알기 서문"에 그런 말을 적었지만 강박사는 지금도 런던 웰컴 의학사 박물관에서 사 온 책의 고대 의학 그림을 볼 때마다  인간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고대의학은 과학이 있기 전 인간이 필사적으로 찾았던 의학이론이자 약입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보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슬픔입니다.
 
  과학적 약의 성립은 다른 과학에 비하여 비교적 늦습니다. 200년 전만 해도 동서양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100년이 지나 서양에서는 20세기로 들어와 제도적으로 과학적 의약이 정착되었고 동양에서는 아직도 옛날 의약의 잔재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뉴에이지란 과학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전통세계(또는 포스트모던 세계)를 지향하는 기운입니다. 전일론적 과학, 주관성 내지 영성의 회복이라는 말을 합니다. 뉴에이지 신과학에서 과학을 공격하는 이치를 보십시오. 쪼개고 쪼개서 인간이 얻는 것이 무엇이 있으냐? 김 평론가도 정형화된 그런 말을 합니다. 
 
 "서양 의학은 기본적으로 내과, 피부과, 비뇨기과, 외과, 안과 등 등 인체를 기계적으로 분할하는 발상에 입각해서 육체를 무한히 해부해 들어가며, 병이 들면 약품으로 세균이나 세포를 죽이고 장기를 도려낸다."

  그런데 고대의학에서 인간을 전체로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시다. 과학에서는 자동차 부속의 원리와 그 유기적 연결 기능을 파악해서 자동차 전체를 알고,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알아 고칠 수 있다고 봅니다. 인체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고대인들은 인간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영, 기, 영혼 등 물활론적, 마술적 개념을 포함시켜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을 타파시킨 것이 과학적 의학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잘 모르는 김 평론가도 <동의보감>의 색채는 아래와 같이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양 의학을 우위에 두고 정립된 오늘날의 의학 체계 속에서, <동의보감>처럼 인체는 대우주를 닮은 소우주라느니, 기를 회복시킴으로써 인체가 가지고 있는 천부의 자연 치유력을 회복시킨다느니 하는 발상은 흐리멍텅하고 황당한 사유로 간주되었다. 이 같은 신체관의 차이, 그리고 거기에 투영된 세계관, 우주관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매우 입체적인 질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뉴에이지 신과학의 주제는 우선  환원론적 과학을 공격하며 전일론적 과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인 것은 "전일론적 과학"도 분명 현재의 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신과학자에게 "그렇다면 조그만 전일론적 가설을 세워 과학으로 증명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문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하지 않고 이들은 그저 과학을 공격하며 전일론적으로 보이는 고대의학을 예찬합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주관성과 영성을 되찾아야 한다며 양자역학을 말하며 또한 ESP, PK를 증명된 듯이 말하는 것입니다. 의사(擬似)과학을 동원해서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첨단과학 운운하며 김 평론가는 동양학적 인식론적 회귀를, 다시 말해서 뉴에이지 신과학적 전망을 말합니다. 

  "다만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첨단의 과학이나 철학적 성과들이 우주와 인간, 역사를 통일적으로 보는 고대/ 동북아/ 동양적 사유틀과 어떤 면에서 맞닿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 단적인 예가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는 프락탈 이론인데, .....이 같은 인식론적 회귀가 지식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제시한 한의학 담론을 통해 대중사회에서도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전망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4. 2000년 7월 11일  [한의학] 산삼. 인삼 약효는 같다 
 출처 : 서울경제 
 
  박상영 기자의 글입니다. 이제까지 산삼이 인삼에 비교해서 가격차만큼이나 효능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속설이었으나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박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문적 입장에서 인삼과 산삼의 효능에는 차이가 없다. 유전자 분석결과도 마찬가지다. 인삼이든 산삼이든 약효차이는 없다는 것이 의사학자들의 주장이다."

  학문적 입장에서 "유전자 분석"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로 두 인삼의 유전자를 전부 규명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랬다면 우선 어떤 것을 인삼, 산삼으로 삼았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재배하는 인삼이라는 것도 전부가 동일할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유전자 분석결과 인삼과 산삼이 정확히 동일하다고 해도 그것 갖고는 정말로 약효까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란 환경적 요인에 따라 인삼과 산삼을 구성하는 성분이 정성적, 정량적으로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삼과 산삼을 구별하는 방법은 현재 인삼의 약효라고 믿는 것을 지표로 하여 과학적으로 실험해 보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박기자는 둘 사이에 약효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과학적 근거로 말하기보다는 의사(醫史)학자에 의존합니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신씨본초학, 방약합편, 신농본초경 등 여러 책의 내용을 예로 들며 산삼이라는 용어는 없다거나 또는 본래 인삼이 "산곡(山谷)에서 나는 것"이라고 되어 있으니 인삼 즉 산삼이라고 합니다. 물론 "인삼은 야생하던 것을 무분별한 채취와 수요증가에 따른 물량부족으로 재배를 하게 됐다"고 봅니다.
 
  한의학계에서는 고의학서에 인삼과 비교한 산삼의 신비한 약효가 나와있다면 분명 인삼과 산삼이 다르다고 믿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식 판단은 "신과학은 없다"에 기술한 베이컨의 "말의 치아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말 입을 벌리고 치아수를 세면 될 것을 무슨 문헌 근거로 서로 논박한 과학이 있기 전 학자의 태도를 비평한 말입니다.

 "신과학은 없다"에 인삼, 산삼 문제를 약간 언급했으나 둘 사이에 돈의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을까? 그렇다고 한 들 과학적 실험 자료가 없으면 산삼이 그렇다는 증거가 없다고 할 수 있을 뿐 확실히 반박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산삼에 무슨 획기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은 희귀성, 적당한 장소, 불로장생약 등의 고대인의 또는 고대의학의 개념과 맞물려 있다고 추측합니다. 인삼이건 산삼이건 아마도 철저히 과학적으로 규명하기보다는 그대로 놔두고 싶은 것이 한국인 또는 한의학계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한약은 필요한가?"에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5. 2000년 6월 18일 [드라마 동의보감]‘탕약에 쓸 물 제대로 써라’
 출처 : 경향신문 

  마찬가지 허준의 동의보감 드라마를 떠올리며 쓴 경향신문 강용혁 기자의 글입니다. 강기자는 "동의보감 탕액(湯液)편에는 약을 달이는 데 쓰는  물의 종류가 33가지라고 나와 있다"고 하며 허준이 물이 약효를 갖고 있다고 본 데 대해 "곽란·설사에서부터 피부병과 중풍까지 언급하고 있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에는 무리한 측면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의미가 있지 않느냐, 이것을 분석해 보려는 것이 강기자의 시도인 것 같습니다. 우선 오염된 물을 피하고 지역에 따라 다른 물의 성분이 고려되었을 것이라고 했으나, 물을 33가지로 나눈 결과와 나눈 행위를 볼 때 지나치게 봐주는 해석인 감이 듭니다. 강기자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물을 33가지씩이나 가려 쓴 것은 물을  긷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물에 포함된 기(氣)가 달라지고, 기의 차이를 질병치료에 최대한 응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좀 더 설명할 요량으로 그는 "이는 여름과 겨울의 계곡물, 찬물과 더운물의 기운 차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의학적 관점에서 더운물과  찬물은  정반대의 속성이다. 같은 화학구조이지만 인체 내에서 일으키는 반응은 정반대다. 따뜻한 물은 온기(溫氣)를 가지고 있어 냉성 질환에  약이나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한기(寒氣)가 있는 찬물을 마신다면 설사가 심해지는 등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33가지 물과 약효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한의학계에서 바이블처럼 믿는 것이지만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의사과학일 뿐입니다.
 
  강기자는 마지막으로 "33가지 물의 의의를 ‘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의사가 약 달이는 물 하나까지 33가지를  나누어 긷는다면 환자에게 쏟는 다른 노력은 오죽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정성이야 의미가 있지만 33가지 물을 이렇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요? 헛고생을 정성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허준이라는 인간상에서 배울 것이 있겠지요. 여기에 동의보감의 유효성이 첨가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할 것인지 이해되지만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33가지 물은 그저 허준시대의 한계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6. 2000년 6월 16일 [건강] 한방. 양방은 거시. 미시 차이 
 출처 : 매경 Econo
 
  윤원식 군산경희한의원 원장의 글입니다. 역시 허준의 동의보감 드라마를  상기시키는데, 이 드라마 한편으로 한의학이 그리고 한의사가 얼마나 덕입었는지 알만 합니다. 그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설명한 다음에 "결국 한·양방의 차이는 전체와  부분, 장기적(만성질환)이냐, 단기적이냐 하는 관점의 차이인데"라고 하며 이를 다시 거시적, 미시적 관점의 차이라고 합니다.
 
  윤원장은 둘 사이의 보완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그럴 듯한 말을 했는데, 한 예로 "모든 경제지표가 미시적 측면이나 거시적 측면에서 모두 양호해야 호경기가 지속되는 것처럼 우리 인체 건강도 부분과 전체가 모두 건강해야 편안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경제이론을 잘 알지 못하나 미시적, 거시적은 지표분석 방법이며 이들과 호경기가 어떻게 상관성을 갖는지는 과학적인 분석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양의학의 미시적 분석은 그렇다고 해도 소위 한의학의 거시적 분석이라는 것이 경제지표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해석인가요?
 
  그럼에도 윤원장은 마치 미시적, 거시적 지표를 보며 경제를 판단하듯 인간의 건강문제 판단에는 둘이 다 필요하며 그런 면에서 "일원적 의학체계"를 강조합니다. 한의사, 양의사 함께  한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말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때가 "환자 입장에서 좀  더 나은 치료가 시행될 수 있는 날"이라고 하는 것 같으나 그런 날은 한국의료에서 잘못된 정책  때문에 생긴 비과학적 한의학의 비중을 줄일 수 있을 때에 올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